![]() 21일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이 시작됐으나 고려인동포들은 제외됐다. 사진은 광주 광산구 고려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온 고려인 모습. 이정준기자 |
22일 찾은 광주 광산구 고려인마을 주민들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제 고려인마을은 단순한 이주민 거주지를 넘어, 자발적인 치안 활동과 공동체 기여로 지역 사회를 바꿔온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주민이 치안의 주체가 되고 주민과 문화를 나누며 공존을 실현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4800여 명의 고려인 동포들이 살아간다. 과거 이 마을은 외국인 범죄 등 ‘치안 불안’ 낙인이 따라붙었지만, 이주민들은 그런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먼저 움직였다. 2020년부터 자율방범대를 꾸려 매주 야간 순찰을 돌고 있다. 경찰 외사계, 자원봉사단체, 지역주민과 함께 유흥시설 밀집 지역과 공원 등을 돌며 ‘묻지마 범죄’ 예방 활동도 벌인다. 고려인 청소년들은 러시아어 안내문 제작에 참여하며 다언어 환경에 맞춘 치안 활동에 힘을 보탰다.
이 같은 활동은 마을이 지난해 경찰청으로부터 ‘외사안전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더욱 강화됐다. 외사안전구역은 외국인 밀집 지역 중 치안 수요가 높은 곳을 지정해 집중 관리하는 제도로, 월곡동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지정 지역으로 꼽힌다.
![]() 고려인마을 노인돌봄센터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어르신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고려인마을 제공 |
이번 기록적인 폭우으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생필품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교육 분야의 노력도 두드러진다. 마을 내 대안학교 ‘새날학교’는 고려인 자녀와 중도입국 청소년들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치며 새로운 정착을 돕고 있다. 러시아어·한국어를 함께 배우는 ‘세계시민학당’과 성인 대상의 ‘배움교실’도 병행, 세대와 국적을 넘어선 상생 교육이 실현되고 있다.
광산구는 이 같은 민관 협력을 기반으로 ‘웰컴투 월곡동’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행정안전부 로컬브랜딩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 프로젝트는 △세계음식문화거리 조성 △글로벌 달빛장터 △세계시민 언어센터 운영 등을 통해 선·이주민이 함께 성장하는 마을 만들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확보한 3억원의 특별교부세는 이 기반을 구체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고려인동포들도 세금을 내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지원 등에서는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며 “뒤늦게라도 소비쿠폰 대상에 포함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은채 국제이주문화연구소 부대표는 “공존을 위한 동포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정책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며 “국적이나 혈통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역할과 기여도를 기준으로 정책 수혜 자격을 정해야 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같은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존중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준 기자 jeongjune.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