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어야할 벽, 지역패권주의
아주 낯선 상식 김욱 저 | 개마고원 | 1만5000원
2015년 12월 10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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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는 이상한 금기가 있다. 공개적으로 지역의 이익과 발전을 이야기하는 행위는 '격'이 떨어지는 일로 본다. 지역문제를 제기하는 정치인은 지역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구태의연한 정치인이 된다. 하지만 막상 투표를 해보면 표는 지역별로 확연히 갈린다. 지역은 선거에서 가장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지만, 공론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지역주의는 분명히 있지만 모두들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지역 감정', '호남 차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것의 진짜 이름은 '영남패권주의'라고 한다.
한국 정치의 특수한 양상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낸 저자 김욱(사진)씨. 광주 출신인 그가 최근 신간 '아주 낯선 상식: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를 펴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한 가지 던진다. '호남은 개혁에 걸림돌인가?'. 투항적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하면 호남이라는 지역 관념은 사라져야 할 우리 정치의 병폐다. 그들에게 지역관념이란 영남패권주의든 호남의 반영남패권주의든 구별할 필요도 이유도 없으며, 공평하게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반개혁적 장애물이다.
그들은 하루 빨리 우리 정치가 지역 관념이 아닌 계층ㆍ계급 관념에 의해 좌우되기를 원할 뿐이다. 그것만이 유권자가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한 마디로 자신들을 개혁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일수록 호남이라는 지역 관념이 없는 개혁, 즉 '호남 없는 개혁'을 원한다.
저자는 지역 모순에 대한 인식 없이 개혁을 추구하는 정치세력(대표적으로 친노와 진보진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동시에 왜 지역모순에 대한 인식이 개혁에도 필요한 지에 대한 강력한 설득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치 둘이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여긴다면 지역 모순의 해결도, 개혁도, 나가아 진보도 모두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책이 '지역'이라는 익숙하지만 지금으로선 늘 낯설 수밖에 없는 틀로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이유다.
저자는 영남패권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80년 광주학살부터라고 보고 있다.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영남 출신이 중심이 된 신군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사람들을 살육했고, 그들이 세운 정권은 호남인들을 차별ㆍ배제하며 권력을 공고히 해왔다고 설명한다.
호남은 1980년 이후 줄곧 뚜렷한 반영남패권주의 투표를 해왔다. 투표 경향은 명백히 그들을 계승하는 정당들(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집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정치ㆍ경제ㆍ문화적으로 학대받아 온 호남 사람들이 이런 학대를 자행한 정당에 집단적으로 반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호남 이외의 민주세력은 군부독재에는 반대했지만, 이를 영남패권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구장창 김대중만 지지하는 호남의 지역주의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2000년대에는 영남 유권자로부터 표를 받기 위해서는 호남색을 지워야 한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사실 호남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특별히 더 진보적이라서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호남인들은 여태껏 호남을 소외시키고, 차별하고, 심지어 학살까지 한 정당에 반대하는 것이다. 유독 똘똘 뭉쳐서 반새누리당 몰표를 행사하는 것은 그들이 지역모순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정당이 영남패권의 해소와 호남의 복권에는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친노가 호남의 몰표만 요구할 뿐 호남의 지향을 대표하려 하지 않듯이 진보적인 사람들은 지역차별을 이야기한다 해도 보편적인 지역 차별을 다뤄야 한다"며 "특정 지역만의 차별을 문제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이제는 투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호남과 영남 친노, 다른 진보개혁 세력들의 이해 관계가 너무 달라 하나로 힘을 합치는 일이 이제 불가능하다면 각자의 몫을 인정하면서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주정화 기자 jhjo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