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덕위에 참깨ㆍ양념 한점 남김없이 쓱싹
진도 꽃게
진도 대표 얼굴 '꽃게 음식'
전국 어획량 25% 이 곳서
탕ㆍ찜ㆍ게장ㆍ회ㆍ무침까지
살 한 점 남김없이 '비빔밥'
진도 대표 얼굴 '꽃게 음식'
전국 어획량 25% 이 곳서
탕ㆍ찜ㆍ게장ㆍ회ㆍ무침까지
살 한 점 남김없이 '비빔밥'
2016년 09월 02일(금) 00:00 |
![]() 양념한 꽃게.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진도에서 만큼은 아니다. 음식상 받기 전 들러봄이 마땅한 곳이 많다.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싸움에 기꺼이 목숨 바친 그분들 덕에 꽃게타령에 먹방놀음하는 것 아닌가.
울돌목 세찬 물결과 거친 소용돌이는 대첩의 그날도 다름없었을 것이다. 하루 네 번 바뀐다는 물길을 내려다보고 있자면 휘돌고 감도는 물살에 빨려들 듯 현기증이 인다. 목 건너 전승기념공원이 있는 녹진이 '가찹게'(가깝게) 느껴진다.
직선거리 300미터. 야간조명이 멋진 진도대교가 세워져 있다. 차로 지나는 다리 아래편으로 배들이 어른거린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태운 지휘선이 흉적(凶賊) 일본군의 수백 척을 가로막고 서 있다. '미신불사 상유십이(微臣不死 尙有十二)'.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아직 열 두 척이 있습니다.' 힘껏 도와줘도 시원치 않을 난리 통에 해직, 압송, 고문을 해댄 못된 나라, 못된 임금에 이순신은 왜 '멜갑시'(쓸데없이) 진지했던가. 해전 전날 밤 그는 부하들에게 말한다. '우리 여기서 다 같이 죽자'. 그리고 13대 133, 말도 안 되는 전투를 했다. 31대 0, 말도 안 되게 이겼다. 그들은 역사에 영원히 남았다. 이 가슴 뛰는 현장을 지나친대서야 꽃게가 웃을 거다.
진도타워와 강강술래 터를 들러 벽파진에 간다. 다리가 놓이기 전 천년도 넘게 주 교통로였던 곳이다. 몽골군에 항복하는 대신 강화도를 떠나온 삼별초군이 도착한 곳도 이곳이다. 이제는 한산해진 포구 뒤켠 충무공전첩비가 웅장하다. 진도군민과 전남의 유지들이 추렴해 세웠다. 국한문 혼용체의 기상 넘치는 글은 이은상이 짓고, 진도의 유명한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글씨를 새겨 비석은 예술작품이 되었다. 때가 언제였는가. 1956년. 남북으로 제금나 민족끼리 서로 죽였다. 이런 꼴 보자고 명량 지켰을까. 꼬로록 대는 '창시'(창자)를 '깡냉이'(옥수수)로도 채우지 못하던, 가랭이 찢어지던 때 주머니 탈탈 털어 비를 세운 이들이 있었다. 대의(大義)를 기억하던, 후손들도 길이 기억하게 하자던 그들이야말로 충무공의 진정한 후예였다. 잘난 고관대작들 쌈박질할 때 그들은 의로움을 기리고 있었다. 그 무렵 복원된 다산초당도 선구자들의 노력 덕이었듯.
진도읍 새 시가는 갯벌을 메운 터에 들어서 시골 읍 치고는 제법 반듯한 길이 나 있다. 읍사무소 건너편 먹자골목에는 꽃게탕 꽃게찜 꽃게살비빔밥 꽃게장 꽃게회무침 간판이 많다. 이것들이 죄다 '밥도둑'이다.
1만원 짜리 꽃게살 비빔밥은 서민형 음식이다. 1인분에 2만5000원~3만원하는 꽃게 정식이나 4~5만원 하는 꽃게탕과 꽃게찜에 비하면 그렇다. 맛은 근사한 차림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게 '껍덕'(껍질) 위에 참깨와 양념을 살포시 이고 밥상에 올라온 게의 속살은 투명하다. 찜으로 나오면 하얗던데 숙성시켜두었다가 발라낸 게살의 빛깔은 저리 은은하다. 탕 속에 들어간 게살은 진도대파와 함께 시원하고 틉틉한 국물 맛을 내느라 제 모습을 보전치 못한다. 하지만 단촐한 게살비빔밥 한 그릇에서 게의 속살은 진면모를 드러낸다. 진도돌김을 된장에 약하게 풀어서 만든 김국이 곁들여 나온다. 진도는 서해의 따뜻한 바닷물과 남해의 시원한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해초류의 맛이 참으로 실하다. 진도 읍내에만 먹을 수 있는 뜸북국도 관광객의 인기를 모은다. 톳처럼 생긴 뜸북(혹은 뜸부기)을 된장에 풀어 국을 끓인다. 갈비를 넣거나 전복을 넣은 뜸북국도 판다.
진도의 서남쪽에 있는 어항, 서망항 부두는 요즘 꽃게잡이용 통발로 가득하다. 서망항 옆에는 여객선이 드나드는 팽목항이 있다. 열여덟에 떠난 수학여행을 스무 살이 되어서도 못 돌아오는 학생들. 노란 리본만 외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부원배(附元輩), 친일파, 친미파를 거쳐 배금(拜金派)의 세상인가. 에라, 밥이나 비비자.
꽃게 껍질에 올려진 양념 꽃게살을 숟가락으로 푼다. 당근과 야채와 김이 담긴 양푼에 넣고 비빈다.
반찬은 그다지 필요치 않다. 공장 반찬이 아닌 손맛이 깃든 몇 가지로 넉넉하다. 게살 양념 한 점 남김없이,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뚝딱 깨깟이(깨끗이) 비우게 된다. 게살비빔밥 한 그릇에 배부를 것 없을 것 같지만 든든한 속은 묘할 만큼 오래 간다.
7, 8월 꽃게 금어기가 끝나 진도는 이제 본격적인 꽃게철을 맞았다. 영덕대게는 크나 어딘지 싱겁다. 일본 홋카이도의 대게나 러시아산도 양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 있다. 서망항 어시장에 펄펄 기어오르는 게를 보면서 제대로 된 맛을 느낀다. 꽃게에는 머리 좋아진다는 키토산, 시력을 좋게 해주는 타우린, 치매예방에 좋다는 오메가3 지방산 등 영양소가 듬뿍 담겨 있다.
진도의 들에는 대파가 많다. 따순 데라 겨울에도 잘 큰다. 향이 짙다. 진도 꽃게탕에 빠지면 안 된다. 파 잎을 꺾으면 나오는 끈적끈적한 액체, 알긴산이 타 지방 것보다 많다. 장 운동을 촉진해 소화를 돕고 동맥경화를 막아준다. 또한 위벽을 보호해주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것이다. 삼겹살이나 파닭 먹을 때 대파겉절이를 곁들이는 이유다. 국을 끓일 때에도 진도대파를 넣으면 가라앉지 않고 그대로 떠 있어 모양새가 좋다.
4-5만원하는 꽃게탕 중간짜리에는 보통 1㎏, 세 마리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3명 먹기에 충분하다. 진도의 대파로 국물을 낸 꽃게탕이라 맛이 더욱 쌈박한 것 같다. 400년 전통의 진도 토속주인 붉은 빛깔의 홍주, 해풍을 맞고 자란 울금을 넣어 빚은 막걸리 한 잔을 반주로 곁들이면 더욱 좋다.
진도는 꽃게 말고 개로도 유명하다. 천연기념물 53호 진돗개. 의신면 백구마을에는 대전에서 진도까지 300㎞를 7개월 걸려 찾아온 충견, 백구의 무덤이 있다. 손녀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백구를 어쩔 수 없이 판 할머니. 5년 정든 할머니를 그리다 탈출을 감행하고 마침내 진도대교를 건너고 산길을 달려 주인 품에 안긴 백구.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이들의 동상 앞에서니 가슴이 뭉클하다.
돌아서다 그만 못 볼 것을 보았다. 불콰한 낯빛으로 보양탕 집을 나오며 흐뭇해하는 대한민국 중년 남성 대표. 백구마을을 상징하는 개 캐릭터는 보양탕집 간판에도 있다. 진돗개의 충직함을 이렇게도 갚는가. 저자를 '차두'(보자기)에 넣고 어디 안 보이는데 가서 팼으면 싶다. 먹잣 것 천진디 먼 짓이냐며. 그게 안되니 차라리 '구녁'(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9월 2일 금요일부터 일요일인 4일까지 명량대첩축제가 진도의 녹진 충무공전승공원과 해남우수영 일대에서 열린다. 가을바람 속에 역사와 맛을 즐기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여행에는 후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