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심봉사… 눈 뜨고 있어도 진실 볼 수 없는 세상"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 심청
2017년 01월 13일(금) 00:00
홍성담 작가의 '세월호' 시리즈 작품 중 하나. 홍성담 작가 제공
심학규가 나온다. 머리에는 다 떨어진 갓을 쓰고 등에는 괴나리봇짐을 짊어졌겠다. 앞을 못 보니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거린다. 황성 맹인잔치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올라 온 길이다. 젊은 황봉사와 뺑파는 상경하던 중 줄행랑을 쳐버렸다. 눈물 짜고 콧물 짜는 신파적 장면이 끝난 종반 부분이다. 심황후는 남경장사 상인들에게 공양미 삼백석에 몸이 팔렸던 심청이다. 용왕은 그 뜻을 갸륵히 여겨 심청을 환생시킨다. 이내 송나라 천자의 황후가 된다. 아비가 눈을 떴는지 몰라 전국의 모든 봉사들을 불러 모으는 맹인잔치를 연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도 없고 과거와 현재의 경계도 없다. 설화적 장치이니 굳이 탓할 것은 없다. 결론은 이때까지 눈을 뜨지 못했던 심봉사가 심황후를 만나 눈을 뜨게 된다는 것. 물론 잔치에 참여한 모든 맹인들이 여기저기 눈을 뜨기 시작한다. 슬픈 이야기지만 슬프지 않다. 눈 먼 세상을 극복하고 광명세상이 되었다는 해피엔딩이다. 창자들에 따라 질펀한 농담들이 오가고 사투리들이 돌출하며 연행 상황에 따른 즉흥전개(ad-lib)가 진행된다. 하지만 전체 이야기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심청의 환생이 그것이다.


단막 창극으로 연행된 옛이야기 심청

심청전 중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잘라내 노래극으로 꾸민 것을 단막 창극이라 한다. 곽씨부인 유언막, 심청 밥 빌러 가는 막, 뺑파 막, 주막 막, 인당수 막, 황후 막 등 창자들, 연출가들에 따라 다양한 막이 만들어져왔다. 여기 열거한 것은 그 중 대표적인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스토리지만 전개 양상에 따라 울고 웃고 한다. 거의 대부분은 심봉사와 뺑파가 벌이는 코믹한 장면들이다. 비극을 희극으로 바꾼 소리극이다.

심청전만 여기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지정 문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다시래기'도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심청의 환생이 애기 낳는 장면으로 전환될 뿐이다. 증거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당달봉사 역할을 가장 잘하는 이는 진도의 강준섭 옹이다. 아마도 세계 연극사에서 이만한 봉사역을 한 이가 있을까싶을 정도다. 그의 연기는 종횡무진이다. 다시래기의 당달 봉사역 뿐만이 아니다. 단막 창극 심청전의 봉사역할은 그의 최고 장기다. 강준섭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일련의 극적 연행들이 피카레스크(Picaresque) 구성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에는 항상 당달봉사로 대변되는 눈먼 세상이 있고 심청 혹은 새로 태어나는 아기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상이 있다.

연화에서 렌화, 로터스에서 렌카로 돌아 온 심청

일찍이 황석영은 그의 소설 '심청'에서 연화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동아시아 여인네의 핍박사를 그려냈다. 바로 심청 이야기다. 한 여자의 일생을 통해 근대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19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를 그려낸 것. 심청이야기가 유교 이데올로기에 순종해야 했던 가부장 중심의 세계를 그렸다면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 생환된 심청은 동아시아의 매춘 오디세이아라 할 수 있다. 심청전 속의 청은 연꽃이라는 비유를 통해 환생한다. 송천자의 황후가 되어 아비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이 줄거리다. 대부분의 단막 창극은 이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다. 황석영은 소설을 통해 여인의 수난에 집중한다. 청은 난징의 팔순 첸대인에게 몸종으로 팔려간다. 남경장사에게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원본 설화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난징에서 진장으로, 진장에서 타이완의 지룽으로, 지룽에서 싱가폴로, 싱가폴에서 류큐로, 류큐에서 나가사키를 거쳐 한반도로 돌아오는 과정이 애절하다. 물론 류큐 왕국의 왕비가 되기도 하지만 사쯔마번의 류큐 복속으로 기구한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 소설을 통해 내가 주목했던 것은 심청의 죽음이 아니라 환생 혹은 재생이라는 코드였다. 연꽃으로 대변되는 재생의 은유(metaphor)를 대부분의 이야기 속에 구조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심청은 연꽃을 은유하는 재생 코드

황석영이 고안했던 연화(蓮花)는 바로 연꽃이다. 왜 연꽃을 열다섯 소녀의 이름으로 삼았을까? 연꽃이 재생의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렌화는 연꽃을 중국식 발음으로 읽은 것뿐이다. 로터스와 렌카도 마찬가지다. 원본 스토리는 어떠한가? 심학규는 봉사다. 세상이 밝은지 어두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당달봉사역의 강준섭에 의하면 낮은 훤하니 흰색깔인 줄 알고 밤은 깜깜하니 검은색인 줄 알 뿐이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졌다가 환생하는 구조 이전에 심학규가 눈 먼 봉사라는 점이 일종의 재생에 대한 복선이다. 설화에서는 익히 구조화되어 있는 이 복선을 통해 심학규가 눈을 뜨고 심청이 환생하는 결과가 전개된다. 설화나 단막 창극은 왜 눈 먼 봉사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고자 했을까? 혹은 환생하는 심청을 주인공 삼고자 했을까? 모두 재생코드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점들도 있다. 단막극에서는 독설과 해학을 통해 재생구조를 완결시키는 반면 황석영의 소설에서는 청을 정액받이로 전락시켜 이 코드를 완성해간다. 전자는 해피엔딩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못하다. 여기서 이 둘의 상관을 논할 필요는 없다. 심청 자체가 연꽃으로 대변되는 재생코드라는 점만 언급해둔다. 불교 중심의 종교적 창으로 보면 이를 그린 그림들 모두 재생이나 환생 코드다. 설화적 창으로 보면 이를 그린 민화나 서양화 모두 심청의 은유다.

세월호를 읽어낼 코드들에 대하여

불과 며칠 전이다. 천 번의 해가 뜨고 지던 날 맹골도 해협에는 거센 바람이 불었다. 천 번의 달이 뜨고 지던 날 물결은 성난 파도들을 만들어 냈다. 들고나는 물길은 그 배를 더하였으니 이천이요 왕복의 수를 헤아리니 사천이다. 시베리아로부터 날아 온 새들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갔다 오기를 세 번이나 했다. 동중국해로부터 발해만을 돌아 나오는 어류들 또한 오간 것이 세 번이다. 백골이라도 남아있는지 알 수 없는 아홉 구의 영령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만하라고 한다. 지겹다고 한다. 그럴 수 있을까? 새들도 오가며 어류들도 오고가는 이 길을 이들은 왜 못 오는지 누가 얘기해주었나? 누가 책임을 졌나? 우리는 시방 당달봉사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가 심청전의 심봉사요 다시래기의 당달봉사다. 눈을 뜨고 있어도 진실을 볼 수 없는 세상 말이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연꽃으로 환생했던 심청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다. 여러 버전의 설화로 또 단막창극으로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심청의 코드를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다. 황석영의 버전대로 해도 좋다. 돌아올 수만 있다면. 해가 떴다지니 바람이 인다. 달이 또 그러하니 파도가 인다. 심청은 연꽃 타고 돌아와 눈먼 봉사들의 세상을 밝혀주었다. 황석영은 심청을 인당수에 빠트리지 아니하고 우리 곁으로 데리고 와주었다. 답은 하나다. 우리 스스로 심청이 되어 연꽃 타고 재생하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눈 먼 자들의 한반도를 밝혀줄 수 있음을.



남도 인문학 TIP

창극의 발생

춘향전, 심청전 등 판소리를 극화시킨 것이 창극이다. 한국민속문학사전에서는 창극에 대한 정의를 판소리를 바탕으로 1900년대 초에 형성된 음악극 양식이라고 한다. 창극은 배우가 대사와 행동을 통해 인물을 표현하는 연극이다. 그 대사의 상당 부분이 판소리에 기반한 창으로 이뤄진 음악극 양식이다. 1900년대 초 나주(지금의 광주 광산)사람 김창환과 무안 사람 강용환에 의해 판소리 분창 형식의 창극이 시도됐다. 흔히 강용환을 창극의 시조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 있다. 형성될 당시에는 신연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 및 신파극, 러시아의 공연 등을 참고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파극은 일본의 가부키를 구파극이라 부른데서 이와 변별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다. 창극도 구연극, 구파극 등으로 불렀다. 외래음악 및 음악극들이 보다 활발해진 1920년대는 노래하는 연극이라는 뜻에서 가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전통연희의 중요성과 우수성, 개별성 등에 대한 자각이 생겼고 이에 따라 창극이라는 호명이 생기게 되었다.

강준섭 옹의 단막 창극과 심청전

춘향전이나 심청전은 창극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레파토리였는데, 중요한 대목을 잘라서 단막극 형식으로 공연한 것을 단막 창극이라 한다. 진도 다시래기 기능 보유자 강준섭 옹이 연행하는 단막창극은 거의 80여종에 이른다. 현행되는 것은 20여종 남짓인데 이중에서 심청전을 잘라 만든 단막창극이 공연 빈도수가 높다. 황후막은 본문에 간단하게 소개했으므로 곽씨 부인 유언막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심청전 중에서 곽씨가 죽고 상여 나가는 대목이다. 단막 창극에 진도 특유의 상여소리와 흥타령 등을 가미한 복합 단막창극이라 할 수 있다. 도창과 심봉사, 곽씨부인, 귀덕이네 및 동장, 주민들을 등장시킨다. 곽씨부인 유언 장면부터 시작한다. 심봉사가 약을 지으러 밖으로 나간다. 약 이름이 개미 쓸개에다 방구 풍풍탕, 벼락탕 등이다. 코믹극임을 알 수 있다. 귀덕이네가 등장하여 약탕을 엎어 깨고 대신 오줌을 넣는다. 기왕의 심청전에 해학적이고 오락적인 코믹 장면들을 질펀한 진도사투리로 삽입했다. 매우 장엄하거나 극도로 슬픈 장면인데도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단막극으로 소화해낸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