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굴려 사는 세상보다 몸 놀려 사는 세상 꿈꾼다
5. 생태ㆍ교육공동체 운동 윤구병
변산공동체 '농부 철학자'
국립대 교수직 접고
전북 부안 귀농
변산공동체 '농부 철학자'
국립대 교수직 접고
전북 부안 귀농
2017년 05월 01일(월)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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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할 것은 반드시 있고
없어야 할 것은 없는 세상을
철학, 인문학, 자연학, 한문…
이런 것 가르치다 그만두고
이젠 땀흘려 일하는 법 가르쳐
돈 끼어들면 경쟁규칙 망가져
스스로 앞가림도 해야 하지만
여럿이 돕고 사는 힘 길러야
사랑이 가장 소중한 가치
>>> 194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맏형 이름이 '일병'인데, 아홉 번째 막내로 태어나 '구병'이 되었다. 6ㆍ25 전쟁으로 형 일곱을 잃었다.
>>>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뿌리깊은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1981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가 됐다. 1989년에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를 만들어 공동 대표를 맡았다.
>>> 1983년 이오덕 선생의 권유로 대학 선생으로는 처음으로 '한국글쓰기연구회(지금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이 됐다. 1988년 어린이에게 줄 좋은 책을 출판하려고 '보리 기획(지금 보리출판사)'을 만들었다.
>>> 1995년 변산에 자리를 잡아 변산공동체학교를 꾸리고, 1996년 대학 교수를 그만두고서 농사꾼으로 살기 시작했다. 2002년 농사일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작은책'의 편집 책임을 맡아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자주 올라와야 하는 신세가 됐다.
>>> 2016년 '철학을 다시 쓴다'가 '우수교양도서'(문체부)로 뽑혔다. '잡초는 없다', '실험 학교 이야기', '모래알의 사랑', '철학을 다시 쓴다', '내 생애 첫 우리말', '윤구병 일기' 등이 저서로 있다. '달팽이 과학동화', '개똥이 그림책', '심심해서 그랬어'를 비롯해 세밀화 도감들을 기획하고 펴내 우리나라 어린이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보리 국어사전'을 기획해 국어사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 현재 살아온 세월이 행복하고 고마웠다고 돌아보고 있다. 이제는 잘 죽을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김기중 기자
"'변산공동체 뒷방 늙은이'입니다. 현재는 아무 직함이 없어요. 굳이 말한다면 전 변산공동체 대표 및 교장입니다."
변산공동체가 둥지를 틀고 있는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서 만난 '농부 철학자' 윤구병(75) 선생의 첫 마디다.
변산공동체는 윤 선생이 15년간 몸 담았던 국립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군으로 들어와 농사를 지으며 일군 생태공동체이다. 대안학교를 만들어 교육공동체에서 살아온 지 이제 22년이다. 현재 변산공동체학교의 책임은 김희정(48) 교장ㆍ대표가 맡고 있다. 김 교장은 윤 선생의 대학 제자로 1995년 공동체 창립멤버다.
윤 선생은 "변산공동체가 있고 변산공동체학교가 공동체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변산공동체는 처음부터 정식 이름이 변산공동체학교였다"고 설명했다.
공동체에서는 '살려고 배우고 살리려고 가르치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그는 "한 세대 만큼은 지나야 '공동체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아직 10년이 남았다"고 했다.
철학자인 그는 '있음'과 '없음'으로 세상을 설명했다. 그는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없어야 할 것이 없으면 좋은 세상이고, 없을 것이 있고 있을 것이 없으면 나쁜 세상이다. 있을 것만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사회는 그대로 지속돼야 하지만, 있을 것은 없고 없을 것이 있는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를 지칭하는 전직 대학교수, 철학자 , 농사꾼 , 작가, 출판사 대표 중에서 "특히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져 자연 속의 삶이 가능한 농사꾼으로 불러주는게 좋아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고 웃었다.
이어 "경쟁사회를 즐겁게 살기위해서는 '연대'가 중요하며, 이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생각은 '사랑'이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변산공동체 학교를 이끌고 계시는 수장이신데.
△변산공동체는 처음부터 정식이름이 변산공동체학교였다. 변산공동체는 생산 공동체이면서 대안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 공동체이다. 학교는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살려고 배우고 살리려고 가르치는 곳'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람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서로 도와서 사는 힘을 길러주는 것, 그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만 해결이 되면 나머지는 전부 곁가지이다. 나는 시대에 따라서 혹은 지역에 따라서 이뤄지는 교육들은 곁가지이고,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고, 서로 도와줄 수 있는 이 두 가지 힘만 길러주면 교육의 목표는 완성된다고 본다.
-변산공동체학교를 만든 직접적 계기는.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여기에 들어왔다. 15년간 재직했던 대학은 안정적이었고 철학 교수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형식적이고 의무적이었던 가르침과 배움에 회의를 느낀 끝에 1994년 학교를 떠나 변산공동체를 꾸렸다. 그리고 변산 공동체를 내가 만들었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동체라는 건 어떤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 이상이 서로 살면서 일구어나가는 것이 공동체이다. 다만 나는 먼저 들어왔을 뿐이다.
-변산공동체학교의 규모 및 생활은.
△1995년에 터를 닦기 시작했고 1998년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솥밥을 먹는 가족들은 장기손님과 학생들이 유동적이어서 항상 들쭉날쭉하다. 대략 20여 가구에 총 40~50명 정도 된다. 공동체의 일원이었다가 주변에 독립해 살고 있는 사람까지 더하면 100명이 넘는다.
변산공동체학교는 대안학교로 소규모의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산 살림, 들 살림, 바다 살림을 연구할 수 있는 2년제 '기초살림대학'도 설립을 추진 중이다. 현재 기준 학생수는 유초등 3명, 중학생 4명, 고등학생 15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학생은 남자 80%, 여자 20%정도이다.
학교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남녀 기숙사가 따로 있으며, 학비 및 기숙사비는 없다. 비인가 대안학교다 보니 사회에서 학력으로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 다만 졸업장은 준다. 중등이나 고등 학력을 인정받고 싶으면 일 년에 두 번 있는 검정고시를 보면 된다. 이곳에서 대학을 가려고 하는 학생들은 1년 동안 재수를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자율성에 바탕을 두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인지 재수를 하면 원하는 대학을 바로 입학한다.
-변산공동체학교에서는 무엇을 주로 가르치나요.
△주로 가르치는 것은 몸으로 살아가는 법, 농사짓고 사는 법을 가르친다고 볼 수 있다. 수업은 참 많다. 내가 처음 수업을 했을 때는 철학, 인문학, 자연학, 한문 이런 것들이 있었다. 지금은 도자기, 택견, 역사, 세계사, 풍물, 산처럼 물처럼, 연극, 미술, 과학, 노래 부르기, 짚풀공예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에서 아이들이 선택해서 배운다. 오전에는 수업하고 오후에는 농사일을 거든다. 바쁜 농사철에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밭에서, 논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일을 해야 한다. 지금은 강낭콩 심기, 땅콩 모종내기, 풋마늘 뽑기, 볍씨파종, 모판내기, 고구마 부직포 벗기기 등 봄철 농사활동으로 바쁘다.
농사는 철저히 유기농 방식으로만 짓고 있다. 화학비료와 살충제, 제초제 등의 농약과 비닐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항생제로 키운 가축의 배설물로 만든 퇴비도 쓰지 않는다. 현재 1300여 평의 논과 9000여 평의 밭을 일구고 있다. 논과 밭에서는 100여 종의 작물을 심어 거두고, 산과 들에서 나는 100여 종의 약이 되는 식물들을 채취해서 효소도 담그고 있다. 공동 명의의 땅에 농사를 지어서 생산물로 자급자족하고 판매 수익금은 필요한 만큼 나눠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 운영은 잘 되고 있는지요.
△처음 귀농하면 한 5년 동안은 앞가림을 못하고 쉽지 않다. 그런데 5년 정도 지나면 관행농이든 유기농이든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공동체의 성패를 말하기엔 이르다는 생각한다. 한 공동체가 안착하려면 적어도 30년 이상, 한 세대는 걸린다고 본다. 우리 삶도 그렇지만 공동체가 지속되려면 과거ㆍ현재ㆍ미래가 어우러져서 삶의 흐름을 이룬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이 모여 살아야 온전히 공동체가 되는데, 현재 다 흩어져 버렸으니 그게 다시 모이려면 적어도 한 세대가 걸릴 것이다.
-흙과 농사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는데.
△시골은 평화의 땅이다. 농사는 서로 죽고 죽여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서로 살리는 길을 찾는다. 아이들이 그걸 꼭 배워야 한다. 도시에서는 서로 돕는 마음가짐보다는 경쟁을 부추겨서 경쟁하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몸 놀리고 손발 놀려야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에 필요한 것을 마련할 수 있는데, 머리만 굴리도록 만들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 제 앞가림도 해야 하지만 여럿이 도우면서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데 도시에서만 살면 그걸 익히기가 어렵다. 바로 농사에 답이 있는 이유다.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사는 길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
-경쟁사회에서 즐겁게 사는 방법은 .
△아이들은 놀면서 굉장히 즐거워한다. 스스로 놀이 규칙을 만들고 나름대로 경쟁을 한다. 그것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뺏는 놈은 잘 살고 빼앗긴 놈은 못사는 그런 경쟁이 아니다. 자기가 경쟁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남들에게 피해를 미치는 경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사이에 들어서 실제로는 그 경쟁의 규칙을 망가뜨리고 있다. 사람이 어울려 살면서 경쟁하는 길도 찾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히 있다. 바로 연대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내버려 두면 자기들끼리 연대를 한다. 그리고 선생님과 학부모들도 연대를 통해 살 길을 찾으면 된다.
-바람직한 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 없을 것을 걷어 내고 있을 것만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요지이다.
즉 그것이 실제로 '있느냐' '없느냐', 혹은 '있으면 얼마나 있고', '없으면 얼마나 없는가'를 꼼꼼하게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구분은 부질없는 것이다.'있을 것', 또 '있어야 할 것'인 자유, 평등, 평화, 우애, 협동, 공정, 사랑 등이 넘치는 사회는 좋은 사회이다.'없을 것', '없어야 할 '억압, 전쟁, 착취, 불평등, 부정, 이기심, 탐욕, 증오심 같은 것이 들끓는 사회는 나쁜 사회이다. 제가 하는 일들이 '없을 것은 있고, 있을 것은 없는' 사회를 '있을 것은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세상으로 만드는 데 닿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은 세상이란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 삶과 공동체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나는 바람둥이라서 사랑 밖에 모른다. (웃음)사랑이라 표현하고 싶다. 우리는 지난 날에 기대서 사는데, 많은 겪은 것들이 모여 생각을 이룬다. 현재는 생각에 기대서 사는 일이 많다. 그렇지만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은 사실 미래, 자식들 세대하고 연결이 돼야 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우리의 꿈, 생각을 사랑이라고 바꿔서 번역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생각이다. 이 세상에서 사랑이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본다.
-공동체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하면 긴장이 된다. 무슨 종교에서 '믿어라', '해라' 하는 말은 안 통한다. '해라'가 아니라 '하자'도 통하지 않는다. 마음 놓고 사는 것이 좋지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면 당장에 부담이 되는 셈이다. 불교에도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마음을 놓으십시오'라는 뜻이다. 누구든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그러니까 모두 '마음을 놓으세요'.
-변산공동체를 후원하고 재정적으로도 지원하고 있는 보리출판사의 대표를 맡고 있으신데.
△1988년에 세워진 보리출판사에서 30년 동안 출판한 책은 300종 남짓이다. 파주출판단지에 입주해 있는 대형 출판사는 한 해에만 500종 이상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진짜 게으른 출판사이다. 보리는 '나무 한 그루 베어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자',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자'가 출판의 원칙이다. 수익성은 다소 없지만 다른 출판사가 내기 힘든 책, 그 빈 공간을 메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교육서와 자연 친화적인 세밀화도감, 그리고 아동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다소 미련한 짓을 하는 우리들을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미련한 독자들이 있어서 아직까지도 유지가 되고 있다.
보리는'저녁이 있는 삶'을 진짜 만들어보자며 '아침 9시 출근-오후 4시 퇴근'의 6시간 근무, 즉 주 30시간 근무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은 일터에서만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자기가 사는 집, 지역 사회로 동라가 이웃과 함께 살면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글=김기중 기자 kjkim@jnilbo.com
사진=김양배 기자 ybkim@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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