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ㆍ근심은 잠시 내려놓으시게
송태갑의 정원이야기 - 선암사
아치 무지개 닮은 승선교
독특한 모양 연못 삼인당
꽃, 숲, 차향기 흠뻑 취해
2017년 05월 05일(금) 00:00
승선교(보물400호)와 강선루 풍경
우리나라 사찰들이 대개 그렇듯 선암사(仙巖寺)도 입구에서 사찰 경내에 이르는 거리가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걷는 길이 지루하다는 뜻은 아니다. 길옆을 흐르는 청아한 계곡물소리와 조계산의 울창한 숲 향기, 여기저기서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소리 등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숲길이 있어 산책의 묘미를 더해준다. 생생한 자연에 취해 한참을 걷다보면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엄청난 보물을 만나게 된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걸려 있는 아치형 다리, 승선교(昇仙橋)를 두고 하는 말이다. 승선교를 보는 순간, 다리(橋)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승선교는 일정한 크기의 돌을 배열한 아치(Arch)형 디자인으로 무지개를 닮았다하여 홍교 혹은 홍예교라고 부른다.

승선교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조심스럽게 다리 아래 계곡물 가까운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거기서 홍교를 올려다보는 순간 다시금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홍교의 반원이 물에 반영하여 보름달 같은 원이 완성되고 그 원 안으로 계곡 옆에 서 있는 누정 강선루(降仙樓)가 한눈에 들어오며 마침내 멋진 그림이 완성된다. 이것만 보아도 이미 선암사에 온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다리에서 조금 떨어져 다시 홍교를 올려보라. 이번에 강선루가 마치 다리 위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선(神仙)이 내려오다'라는 의미를 지닌 강선루처럼 신선인들 이런 광경을 두고 어찌 참을 수 있었겠는가.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삼인당( 기념물 제46호)이라 불리는 타원형 연못이다. 연못이 있다는 것은 주위에 물이 있다는 것이고 물을 가두어두고 이용한다는 것은 물의 흐름을 중시하고 있다는 증거다.

커다란 알(卵) 모양의 연못은 그 안에 둥근 섬모양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삼법인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삼인당은 길이와 너비 2.2:1의 비례를 갖고 있으며 연못 안에 길이 11미터 너비 7미터의 둥근 섬이 있다. 그 형태는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방지원도 연못 양식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오로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9월에 노랑어리연과 꽃무릇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면 마치 곱게 수놓은 한 폭의 자수(刺繡)를 보는 듯 아름답다.

선암사는 한마디로 지붕 없는 박물관이자 보물창고다. 국가지정문화재가 무려 16개로 대부분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삼층석탑(보물395), 승선교(보물400), 삼층석탑내발견유물(보물955), 대각국사의천진영(보물1044), 대각암부도(보물1117), 북부도(보물1184), 동부도(보물1185), 대웅전(보물1311), 석가모니불괘불탱및부속유물일괄(보물1419), 선각국사도선진영(보물1506), 서부도암감로왕도(보물1553), 33조사도[보물1554],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 동종(1657보물1558), 동종(1700보물1561), 선암사소장가사ㆍ탁의(중요민속자료244) 등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지방문화재도 즐비하다. 금동향로(지방유형20), 전도선국사직인통(지방유형21), 팔상전(지방유형60), 중수비(지방유형92), 일주문(지방유형96), 원통전(지방유형169), 금동관음보살좌상(지방유형262), 삼인당(지방기념물46), 불조전, 마애여래입상(지방문화재자료157), 각황전(지방문화재자료177), 측간(지방문화재자료214) 등이 있다.

절 입구에 다다르면 속세와 불계의 영역을 구분하는 일주문이 보인다. 이 일주문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건조물로 조선시대 일주문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주문은 9개의 돌계단을 앞에 두고 있으며 지붕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맛배지붕으로 여느 사찰과 다른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을 통과하면 대웅전이 보이는데 단청이 화려하지 않아 단아한 느낌을 준다. 대신 안쪽 공포구조에는 연꽃 봉우리 장식을 하고 있어 조선후기의 정교하고 세련된 장식수법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또 대웅전 바로 앞에 있는 쌍삼층석탑은 통리신라 때 세워진 것으로 좌우로 3층 석탑 2기가 위치하고 있다. 높이는 4.7m이며 몸돌받침이 호혐과 각형으로 독특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외에도 마치 여느 시가지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다양한 건축물과 조형물 구경을 마치고 나면 이제 정원에 식재된 다양한 정원수를 본격적으로 감상할 차례다.

아마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많은 종류의 수종이 식재되어 있는 사찰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야말로 정원을 중시한 사찰이다.

먼저 사찰 좌측에 마치 용오름을 하고 있는 듯 절묘하게 누워있는 소나무가 있다. 바로 와송(臥松)이다. 600년 세월을 견디기 버거워서일까 아니면 산전수전 다 겪은 나머지 겸손해진 탓일까 아주 낮은 자세로 지면에 가지를 늘어뜨린 채 잔뜩 웅크리고 있다.

선암사에 있는 또 하나의 명물은 매실나무다. 일명 선암매라고 부른다. 원통전 담장 옆에 자라고 있는 토종매실나무로 이 나무 역시 600살이 넘었다. 나무 키는 8m, 뿌리둘레가 1.2m, 수관은 13m로 생육상태가 좋고 골고루 퍼진 가지들에서 피는 유난히 짙은 핑크색의 꽃과 매혹적인 향기로 유명하다.

선암사에서는 돌 하나, 나무하나, 물줄기 하나까지도 다 신비스럽기만 하다. 지은 지 30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재래식 화장실(지방문화재 자료 214호)도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니 더 이상 말문이 막힌다. 이 측간은 정호승의 '선암사'라는 시에도 등장한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에서는 사람들이나 세상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욕심이나 근심 따위는 잠시나마 내려놓게 된다. 꽃, 숲, 차 향기에 흠뻑 취하게 되고, 물, 바람, 새소리, 그리고 오래된 풍경이 서로를 포용하며 일궈낸 조화로운 아름다움 덕분이 아닐까.

송태갑 광주전남연구원 문화관광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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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정취 간직한 천년고찰
국내 유수 사찰과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등록 신청
오는 9월 현지 실사 후 내년 회의서 등재여부 결정

태고의 정취와 천년고찰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고 있는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조계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선암사사적기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가 비로암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1)에 중창하였고, 영조 때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24) 해붕이 다시 중창했다.

6ㆍ25전쟁으로 소실돼 지금은 20여동의 당우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모두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ㆍ교종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으로도 유명하다.

900여 년 전 대각국사 의천이 중국천태의 교법을 전수받아 천태종을 개창했고, 임제선풍의 승풍을 지켜온 청정도량이자 천년고찰로써 태고종의 본산이기도하다.

우리나라 사찰 중 문화재가 가장 많은 사찰이며 천년고찰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흔하지 않은 사찰이다.

중요문화재로는 3층석탑(보물 제395호)과 승선교(보물 제400호), 대각국사진영(보물 제1044호), 대각암부도(보물 제1117호), 북부도(보물 제1184호) 등이 있다. 그리고 선암사 일원은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의 가치를 세계인들과 공유하고자 해남 두륜산 대흥사 등 국내 유수의 사찰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신청한 상태다.

문화재청은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한국 전통산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2011년 4월 국가브랜드위원회가 한국의 전통산사의 가치를 주목하면서 추진됐다.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사찰 1000여 개를 대상으로 현지실사를 거쳐 2012년 6월 순천 선암사를 비롯한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해남 대흥사, 안동 봉정사, 영주 부석사, 양산 통도사 등 7개 사찰을 '한국 전통산사'로 지정했다.

이후 '한국 전통산사'는 2013년 12월 1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금년 9월 현지실사를 거쳐 2018년 여름에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