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
오병희의 남도미술산
남도 예술가들이 사랑한 명산 무등산
우리나라 예술의 뿌리 남도
무등산의 정신과 감성 담아
2017년 09월 01일(금) 00:00
허백련. 단풍만리도(미상)
예향 남도는 한국미술사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많은 예술인들이 출생하고 활동한 지역이자 우리나라 예술의 뿌리가 되는 고장이다. 무등산은 광주의 동쪽, 담양, 화순에 걸쳐 솟아있는 남도의 진산이며 신산(神山)이다.

산세가 유순하고 사방 어느 곳에서 보아도 둥그스름한 모습이 후덕한 느낌을 주는 산이며 토산으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으며 봄에는 진달래, 여름에는 산나리, 가을에는 단풍과 산등성이 억새, 겨울에는 나뭇가지에 피어난 빙화(氷花), 설화(雪花)가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이러한 무등산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한 예술가로는 남도를 예향으로 만든 한국화의 허백련과 서양화의 오지호가 있다.

그리고 무등산 산자락 아래에 터를 잡고 무등산을 그린 화가들은 김영태, 장찬홍, 황영성, 오승윤, 강연균, 우제길 등이다. 그리고 광주에 살면서 무등산을 그린 화가로는 강용운, 배동신, 김형수, 박행보, 김준호, 문장호, 이강하, 조규일, 박상섭, 최영훈 등이다.



● 무등산을 통해 담은 세상의 본질

허백련은 전통 남종화 기법에 무등산에 느낀 감성을 작품에 도입한 남도남종화를 만들었다. 이러한 남도남종화를 그린 이유에 대해 "내게는 날카롭고 딱딱한 골필보다 흠뻑한 중묵이 마음에 들거든. 아마 무등산에 사니까 필법도 무등산 같이 두리뭉실하게 달라진 것인지도 몰라"라고 언급했다.

즉 허백련은 어머니와 같은 포근한 느낌이 나는 무등산의 모습을 작품에 적용하여 둥글둥글하고 편안한 산과 강을 그렸다.

이러한 허백련의 무등산에서 나온 둥글고 포근한 느낌이 나는 남종화는 허백련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었으며 남도 남종화의 화풍이 된다. 즉 허백련에게 배운 남도 한국화가들은 동양적 사유인 깨끗하고 청담한 정신에 남도의 아담한 자연에 느낀 깨끗한 마음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작품을 그렸다.

남도 화단을 형성한 허백련이 무등산을 사랑해서 산이 품고 있는 세상의 본질과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남도의 한국화가는 무등산을 통해 맑은 정신과 예술가의 감성을 담았다.

목재 허행면(1906~1966)은 1956년부터 무등산 자락에 있는 광주 학동 지봉 정상호의 집에서 화실을 제공받고 적취산장(積翠山莊)이라는 호를 쓰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허행면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은 작가로서 표현의 자유이며, 전통만을 고수한 형식화한 화풍은 가능성이 무한한 남도인의 정서를 새롭게 일깨워주지 못하고 오히려 눈을 멀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사실에 기반을 둔 작품을 그렸다. '무등산 춘설헌'(1960년대)은 채색으로 허백련이 머물던 춘설헌 주위를 그린 사경산수이다. 오른쪽 상단에 춘설헌을 그리고 그 아래 힘차게 돌아가는 물레방아, 방앗간, 무등산의 바위, 대숲 등을 묘사했다.

무등산 계곡물이 흐르고 가볍게 흔들리는 대나무 사이에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통해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이러한 무등산의 청량한 계곡과 바람은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깨끗하게 한다.

아산 조방원(1926~2014)은 무등산 묵노헌에 살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조방원은 '그림은 선(禪)과 통하고 마음이 곧 그림이다'고 생각을 가지고 마음에서 느낀 본질을 그림에 담아냈다.

특히 무등산 묵노헌에 거주하면서 느낀 불교적 성찰과 깨달음의 정신을 담아 작품을 그렸다. 조방원의 누추한 집은 자신의 청빈한 삶을 뜻하며 나무와 바위, 하늘은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있는 은자를 표상한다.

그리고 자연 속에 녹아있는 도인은 선(禪)적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며 무등산에 살고 있는 조방원 자신이었을 것이다.

김옥진(1927~2017)의 '천고의 무등산'(2006)은 스승인 허백련이 30여년간 몸담아 왔던 무등산 춘설헌을 중심에 두고 무등산을 지도처럼 한 화면에 담은 작품이다.

허백련이 머물면서 제자를 가르친 무등산은 남도 남종화의 뿌리이자 영혼이 깃든 산으로 김옥진 역시 무등산에서 8년 동안 허백련에게 그림을 배웠다.

작품은 한 장의 지도를 보는 것처럼 멀리 무등산 입석대, 서석대 등이 나타나며 무등산 아래 증심사가 있다. 그리고 무등산 계곡물을 따라 춘설헌, 그 아래 물레방아가 있으며 계곡을 연결하는 다리들이 있다. 김옥진이 예술적 고향인 춘설헌과 스승인 허백련에 관한 생각과 마음을 담아 그린 작품이다.

이와 같이 허백련은 무등산에서 얻은 마음과 정취를 바탕으로 남도 남종화의 기법과 표현 방식을 만들었다.

무등산에서 허백련에게 수학한 허행면, 김옥진, 박행보, 문장호 등의 제자들은 남도의 산의 정취를 기반으로 감성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사경산수를 그렸다. 그리고 무등산을 사랑하고 인연을 맺은 조방원, 김형수 등의 한국화가들은 작가의 개성을 살린 한국화를 그렸다.

남도 한국화는 실경의 감각적인 사경산수에 문기(文氣)와 세상의 이치를 함께 담아낸 마음을 그린 작품이다.



● 남도서양화 1세대 작가가 본 무등산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그림을 배운 후 돌아 온 제1세대 남도서양화가들은 오지호, 임직순, 윤재우, 배동신, 강용운, 양수아 등이 있다. 이들은 무등산 등 남도 자연을 보고 느낀 감정과 감흥을 화폭에 담았다. 오지호는 1948년 8월 혼탁한 서울화단을 등지고 광주에 정착하였으며 이후 무등산의 별, 무등산의 산신령 등 무등산 호칭이 붙여진다. '추경'은 오지호가 광주의 초옥으로 이사 오던 해인 1953년 가을에 무등산 산자락을 그린 작품이다.

무등산 줄기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마을과 가을의 신선한 햇빛아래 펼쳐진 밭과 나무들을 통해 한국의 자연을 우리의 색으로 그린 오지호의 1950년대 대표작이다.

오지호 이후 남도 서양화단의 기틀은 임직순이 1961년 조선대학교 문리대학 3대 미술 학과장 겸 대학원 미술학과 2대 주임교수로 부임하면서 확립된다.

임직순은 아름다운 남도에 살았기 때문에 풍경화를 많이 그렸으며 무등산을 사랑해 "시간이 바뀔 때마다 무등산은 변화무쌍한 그림의 소재가 되었으며 무등산은 내 산이다"고 말했다. 임직순의 무등산은 마을이나 광주, 광주를 품고 있는 무등산, 그 위에 하늘을 그렸다.

무등산을 통해 인간, 자연, 하늘이 함께 조화를 이룬 형상을 표현하였으며 밝고 따뜻한 노랑, 주황, 붉은 갈색 등 감성적인 색으로 생명감을 나타냈다. 배동신은 1950년대 말 이후 광주광역시 양림동 구 광주MBC 근처 언덕에서 무등산을 30년 넘게 그려 무등산의 화가로 불려졌다.

배동신의 무등산은 화가의 격정적인 마음의 눈으로 본 산의 다양한 모습을 자유로운 필치로 표현하였다. 무등산을 표현하는 방식은 색의 번짐과 겹침 등 다양한 채색 기법과 무등산을 바라보는 조형의식이 결합된 표현주의적이다.

남도가 배출한 우리나라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선구자 강용운과 양수아는 무등산을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강용운은 무등산을 추상으로 그렸으며 양수아는 무등산에 관해 느낀 감성을 구체적인 형상을 갖춘 감성적인 색으로 나타냈다.

'무등의 기'(1983)는 유화로 수채화를 보는 듯한 담백한 화면으로 그린 작품으로 무등산에 흐르는 근원적인 기(氣)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즉 강용운은 무등산에 있지만 보이지 않은 본질을 색과 형태로 표현했으며 그 안에 조화와 평화를 담은 정신, 인간 보편의 가치를 표현하였다.

양수아의 무등산은 자연에 동화된 작가의 마음을 감정과 감흥을 담아 그렸다. '무등산'(1967)은 낮은 곳에서 무등산을 올려다보는 구도로 밝고 맑은 녹색으로 무등산을 표현했다. 화면 상단의 하늘과 구름이 무등산과 함께 어울려져 있으며 무등산의 녹청색의 농도에 의해 원근감이 나타난다.



● 무등산을 통해 시대를 이야기 한 예술가

무등산은 광주를 상징하는 영산(靈山)이다. 민중미술을 그린 대표적인 남도 작가 손장섭, 광주민주화운동에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이강하는 무등산을 통해 역사와 우리 민족의 염원을 나타냈다. 손장섭은 1979년 '현실과 발언'이 창립되자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민족미술협의회의 초대 대표를 지낸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손장섭의 '광주의 어머니'(1981)는 우리 강산이 화면 상단에 있으며 광주를 둘러쌓고 있다. 그리고 화면 중앙에 광주를 지키고 상징하는 무등산이 거칠고 황망하게 서 있으며 우리 강산은 광주의 어머니의 절규로 기울어져 있다.

손장섭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지닌 우리나라의 커다란 슬픔과 시대의 모순을 무등산으로 표현하였으며 어머니의 절규로 시대의 아픔을 담아냈다.

이강하는 무등산 정상 근경의 고산일대의 낮은 식물과 꽃을 그린 작품을 많이 그렸다. 이러한 무등산을 주제로 한 작품은 하늘과 땅과 인간을 상징하는 여인들이 나타나며 무등산은 천지인(天地人)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향이다.

이강하의 작품에 나타나는 하늘에 누워있는 여인은 하늘, 땅에 서 있는 여인은 인간, 대지에 누워있는 여인은 땅을 상징하며 대지, 인간, 하늘을 이어주는 단청길이 나타난다. 밝은 청색의 하늘과 구름이 상서로운 빛으로 빛나고 있으며 녹색의 꽃과 풀은 대지의 생명감을 드러낸다. 누워 있는 젊은 여인은 생명력 있는 대지이며 태평소를 든 여인은 인간으로 무등산에서 밝아 오는 희망의 빛이 비추는 이상향을 향한다.

남도의 명산 무등산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어 많은 작가들이 무등산을 소재로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그렸다. 오지호, 배동신, 임직순, 강용운, 양수아 등 1세대 남도 서양화가들과 해방 후 미술을 전공한 2세대 서양화가들은 작가의 개성을 살린 독창적인 무등산 작품을 제작했다.

그리고 광주를 상징하는 무등산은 1980년 5.18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을 표상하는 산으로 표현되었으며 시민군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전개한 이강하에게 무등산은 광주의 아픔을 넘어 선 빛을 담은 이상향이었다.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사ㆍ미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