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이 있어 행복하다
2017년 10월 19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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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0만 이상 도시에서 1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해발 1000m 이상의 산은 전 세계에서 무등산이 유일하다. 이런 산을, 국립공원을 지척에 둔 운좋은 지역민은 광주시민 밖에 없다. 예부터 무등산을 '어머니 산'이라 불러왔다. 80년 5월의 시말을 묵묵히 지켜봤을 무등산이 언젠가 진실을 증언해줄 것을 굳게 믿으며 시민들은 참담한 세월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광주시민들에게 무등산은 위안이자 믿음, 희망의 증표였고 지금도 그렇다. 무등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많지만 그 중 이 산이 품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는 축제, 행사 프로그램으로 부활해 화수분 같은 영감을 제공해주고 있다.
무등산 자락인 광주 동구 운림동에 자리한 '광주전통문화관'의 활동 역시 무등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매년 10월 한 달간 펼쳐지는 '무등울림축제'와 이른 봄~늦가을까지 누정가사문화권에서 열리는 '풍류남도 나들이'는 무등산의 가치를 모아놓은 특화 프로그램들이다.
지난 10월 7일부터 열리고 있는 무등울림축제는 '무등산자락에서 펼쳐지는 전통문화예술대잔치'를 테마로 전통국악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열리고 있다. 전통문화관 개관 이래 최다 관객이 참여한 올해 개막식에는 평소 접하기 힘든 남사당패의 줄타기 공연과 궁중음악, 궁중혼례를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매일 다양한 공연과 다도, 한복, 공예, 민속놀이, 택견 체험 등을 무료로 진행해 방문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남도전통 고추장, 된장, 김치 담그기 등 전통 먹거리 체험도 참여 열기가 높다. 자연과 함께 하는 편백숲 힐링 음악회와 숲속 놀이터는 고단한 삶 속에서 강퍅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어루만져 주고 있다.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은 매주 토ㆍ일요일 펼쳐지는 전국국악대제전이다. 각 부문별로 자체적으로 치러지던 국악경연을 지난해부터 '무등울림'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한데 묶었다. 판소리, 민요, 가야금병창, 전통무용, 타악 등 5개 부문 경연이 매주 열린다. 전국국악대제전은 미래 국악인과 예능인의 등용문으로 이름값을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민과 함께 축제를 만들어 간다는 점 역시 무등울림의 또다른 미덕이다. 지역으로 이뤄진 축제추진위원들과 마을 사람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축제의 성공에 힘을 보태고 있다.
무등산 인근 광주시 북구 충효동~담양군 남면 일대를 흔히 '누정ㆍ가사문화권'이라 부른다. 언제부턴가 산수 수려한 이곳에 크고 작은 누정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고려 말을 기점으로 아름다운 누정과 자연을 자양분 삼아 '가사문학'이 싹트고 열매를 맺으며 시가문학을 풍요롭게 했다. 무등산이 품고 있는 국내 유일, 차별화된 문화유산을 활용해보자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시작된 행사가 '풍류남도나들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2시 참가한다면 누구나 이서, 송순, 정철 같은 '풍류처사'가 될 수 있을터다.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은 곳인 '식영정'에서는 격주로 '식영인문학당'이 열린다.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 '식영정 사선(四仙)'의 삶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전문가의 재미난 해설을 곁들여 만나볼 수 있다. 식영정 아래 빈터에서는 '식영풍류도원'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준비된 선비복을 차려입고 가사의 한 대목을 직접 써보거나 부용당의 다례와 서하당의 서화체험도 할 수있다. 사촌 김윤제가 송강을 비롯한 제자들을 길러냈던 환벽당에서는 과거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가르쳤다는 '추구집'을 교재 삼아 전문가의 기초한문과 예절교육을 연다. 올해부터 취가정도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취가정은 임진왜란 당시 호남의병장으로 전공을 세웠으나 정적들의 모함으로 29세 짧은 생을 마감한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고향 충효동에 있다. 술취한 충장공이 석호 권필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자 권필이 이를 바탕으로 쓴 시가 '취시가(醉詩歌)'이다. 충장공의 애국충절과 억울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가 바로 '취가정'이다. 장군복을 입고 장검을 휘둘러보거나 목칼을 써 봄으로써 충장공의 영욕을 경험해보는 '나는 김덕령이다!'는 체험프로그램으로 인기다. 매년 마을 주민들이 화전놀이 때 만들어 먹던 꽃지짐도 방문객들의 구미를 당긴다. 매주 열리는 '누정문화기행단', 매달 보름 가까운 토요일 밤 열리는 명품국악무대 '풍류달빛공연'과 10월 말 '누정문화제' 역시 오래 기억될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
오랜세월 상처받은 사람들을 너른 품으로 안고 다독여주는, 속깊은 얘기를 들려주는 어머니 같은 산 무등산, 그래서 우리는 이 산이 더없이 소중하고 고맙다.
박태명
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