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목마와 숙녀' 박인희, 문학적 낭만 '인기 폭발'
국소남의 통기타-노스텔지어 7080 Ⅳ
DJ서 가수ㆍ작가 왕성한 활동
그리운 사람끼리ㆍ방랑자…
낭송음반 포엠송으로 전성기
2017년 10월 25일(수) 00:00
한대수 1집(1974년). 사진학 전공한 탓에 자신의 자화상을 찍어 앨범에 게재했다.
아! 가을이다. 어쩌다 가을 들녘에라도 나가 황금벌판에 기울어 가는 저녁노을을 보면 가슴속에 남아있는 고독의 모서리쯤 서성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물동에 떨어진 버들잎 보고 물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지…' 가곡의 한구절이 생각난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추억 1975

1975년 12월 초, 금남로에 위치한 관광호텔에서 주간(낮 시간) 통기타 무대에서의 일이다. 어느 잘 생긴 중년신사 한 분이 날 찾아와 만나자고 했다. 낯선 중년신사는 여수 제7비료공장의 한국인 기술 전무였다. 공사중이던 제7비료공장에 미국인 기술자와 노무자들이 상당수 파견돼 근무하고 있었따. 미국인 가족들과 합세해 성탄 이브 파티를 갖게 됐는데 연주인으로 날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수시내 유성회관 클럽 술좌석에서 필자의 어릴적 친구인 김곤(색소폰 연주자)이 "광주에 팝과 통기타를 잘하는 친구가 있다"며 필자와 연결해 줬다.

●연주인생 가장 비싼 개런티 받아

문제는 출연료(개런티)였다. 당시 관광호텔 낮 시간대 통기타 무대와 저녁 나이트클럽에서 받는 개런티(월급)가 6만5000원이었다. 대뜸, 10만원은 받아야겠다고 운을 떼버렸다. 그분 대답에서 난 그 순간 입을 다물어지지 않았음은 물론 숨이 멈춰버리는 듯 했다.

서울에서 초청돼 오는 가수들이 30만원씩에 계약됐다며 동일 조건으로 지급해 주겠다는게 아닌가. 당시 초청 멤버들이 패티김, 윤복희, 현미, 한명숙, 김홍탁을 위주로 한 후일 히식스 멤버들이었다. 거기엔 윤항기도 포함됐고 국내 최고의 뮤지션, 가수들이 즐비했다. 당시 직장인들의 월급이 세금정산 후 1만5000원이었다. 5급 공무원은 쌀 2가마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환율은 75년 1월 1달러당 485원으로 30만원은 620달러의 거금이었다.

12월 24일 오후 5시에 도착해 또한번 놀랐다. 그들(미국인)의 자유분방함과 호화스러운 파티에 경악했다. 저녁 식사가 제공됐는데 내 생전 처음으로 피자를 맛보았고, 뷔페를 즐겼다. 행사 전 극장, 체육시설, 휘트니스 센터, 볼링을 난생 처음 경험했다. 3, 4, 5 스텝을 배우고 어프로치에서 핀을 향해 볼을 던졌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행사가 시작되고 대기실에서 국내 최고 가수들과 함께 커피도 마시고 담소한 뒤 무대에 올랐다. 밤11시 즈음 홀 분위기는 미국영화에서나 봤던 모습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봤던 장면 문화적 충격

부부들이 플로어에 나와 춤을 추는데 여인들의 옷차림이 놀라게 했다. 뒷 어깨에서 엉덩이까지 흠뿍 패인 이브닝 롱드레스에 하나같이 모두가 앞가슴 쪽엔 노 브라였다. 나는 슬로우곡인 크리스마스 캐럴 '화이트 크리스마스' '실버 벨'과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포스터의 '스와니 강','Cotton fields' '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를 불렀다. 앵콜을 외쳐대며 박수가 터지고 팁으로 달러가 한없이 날아왔다. 300불이 넘는 거금이었다. 새벽 2시가 되고서야 파티가 끝났다. 그 순간 나는 1970년 크리스마스 이브인 월남에서 위문공연을 떠올렸다. 마이클 잭슨(잭슨 파이브)과 글렌 캠벨, 앤 마가렛의 노래 부르는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파티장을 나오니 넓은 잔디위 가로등불이 애처로이 빛을 발하고 밤하늘 별들은 잔디위 쌓인 눈위에 비추고 있었다. 그 파티를 계기로 며칠 뒤 송년파티에 또 초대돼 노래를 불렀다. 잊을 수없는 크리스마스 이브. 이젠 모두가 추억이다.

(10) 1973년 양희은(3집)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행복의 나라

양희은의 대표음반은 '아침이슬'이 실린 71년 음반이다. 하지만 대중적 흥행 면에서 보면 이 3집을 빼놓을 수 없다. 70년초 중, 고, 대학생들이 통기타를 배우기라도 할라치면 가장 먼저 배워야 했고 연습했던 노래가 '이루어 질 수없는 사랑'이다. 한대수가 작곡하고 불렀던 '행복의 나라', 여성 싱어송 라이터인 방의경이 작곡한 '불나무' 등이 큰 인기를 얻었다. 자켓 사진을 보면 아직 풋내기 시절의 양희은이다. 옛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 사옥 밑에 위치한 한마당 한옥 대문의 낙서가 빼곡히 써져 있고 그걸 쓴 어린애들은 지금쯤엔 50언저리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되었겠다.

양희은 1, 2집이 김민기의 페르소나(분신)로서 양희은이었다면 3집은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들을 자신 특유의 음색으로 소화해 그녀의 매력을 더해준다. '이루어 질 수없는 사랑'은 워낙 유명한 곡이지만 그 외 다른 곡들도 수준급의 노래들이다. 고은의 시를 가사로 쓴 '작은 배', 서유석 곡 '하늘'은 후일 정평이 났던 수준급 곡들이다. 한국의 록과 포크로 상징되던 신중현과 양희은이 협업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시도와 실험은 크게 평가할 만하다. '이루어 질 수없는 사랑'은 한때 '왜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느냐, 너무 비관적이다'는 황당한 이유로 한동안 금지곡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71년 1집, 72년 2집은 한국 포크의 명반으로 대접 받는다. '아침이슬', '백구', '작은 연못', '새벽길', '서울로 가는 길'은 시대를 초월한 포크의 명반임이 틀림없다. 제3집에는 '이루어 질 수없는 사랑'이 있어 명반 중의 명반으로 꼽는다. 그 외 '작은 배', '불나무', '행복의 나라', '하늘', '나도 몰래', '가난한 마음' 등이 실려 있다.

(11) 1974년 박인희 1집 '모닥불' '목마와 숙녀'

박인희. 그녀의 매력은 문학적 낭만이다. 인생과 사랑을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하는 듯 한 그의 노래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좀처럼 빛이 바래지 않는다. 76년까지 여섯 장의 앨범과 한편의 시낭송 음반을 발표, '얼굴'과 '한잔의 술을 마시고…'로 시작되는 '목마와 숙녀'는 유명하다. 그녀는 DJ와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71년 동아방송 '3시의 다이얼'로 시작, DJ로 인기를 누렸고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 등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가수로 활동했던 기억이 아련할 정도로 DJ로서 오랫동안 대중과 만났다. 박인희는 우리나라 최초 혼성 듀오인 뜨와에 므와 (불어로 너와나)로 70년에 출발. 숙명여대 재학 중 데뷔했고 72년에 결혼, 그 후 이필원과 박인희는 각각 솔로로 독립하기에 이른다. 듀오 1집에서는 이필원의 창작곡 '약속', 박인희가 부른 '세월이 가면'이 , 2집에서 '그리운 사람끼리', 3집 '추억' 등이 큰 인기를 얻는다. 솔로로 독립한 그녀의 1집 타이틀 곡 '모닥불'이 빅 히트, 후속타로 '하얀 조가비', '방랑자(외국 곡)', '봄이 오는 길', '얼굴' 등 주옥과도 같은 레퍼토리가 인기를 얻는다.

그녀의 가치있고 특유의 보이스 컬러인 서정성의 카리스마로 청중을 사로 잡는다. 또한 '목마와 숙녀' '얼굴' 의 낭송 음반은 '포엠 송'이라는 단어까지 유행시켰다. 화려한 전성기를 맞기도 했던 그녀가 가수 활동을 접고, 시나 가사를 쓰는 일에 몰두, 한때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방송국 국장으로 근무했다. '모닥불' 외 '목마와 숙녀' '내 사랑아' '몰래 몰래' '세월아' '나의 소망(Top of the world)' '들길' '알로하오에(Aloha oe)' '섬집 아기' '봄이 오는 길' '돌밥' 등이 수록됐다.

(12) 1974년 한대수 '멀고 먼 길(1집)' 물 좀 주소ㆍ하루아침

'하루아침 눈을 뜨니 기분이 이상해서/시간은 열한시반/아- 피곤하구나/ 소주나 한잔 마시고/소주나 두잔 마시고/소주나 석잔 마시고 일어났다/ 할 말도 하나 없이 갈 데도 없어서/뒤에 있는 언덕을 아! 올라가면서/소리를 한번 지르고 노래를 한번 부르니/옆에 있는 나무가 사라지더라/배는 조금 고프고 눈은 본 것 없어서/광복동에 들어가, 아! 국수나 한 그릇 마시고/빠 문 앞에 기대어 치마 구경하다가/하품 네 번 하고서 집으로 왔다/방문을 열고 보니 반겨주는 개미 셋/안녕하세요. 한사장?/그간 오랜만이요하고/인사를 하네/소주나 한잔 마시고/소주나 두잔 마시고/소주나 석잔 마시고/잠을 잤다' (한대수 노래ㆍ하루아침)

● 핍박의 아이콘 한대수 '능지처참'

한대수의 1집 타이틀 멀고 먼 길 중에서 그의 노래 '하루아침'이란 노래 가사 한편을 먼저 소개했다. 가사에서 보듯 흔히 듣고 보는 그런 가사가 아니다. 시대적 또는 자신의 맘속에 묻혀 있는 과거를 가감없이 써 내려간 가사다. 과연 그 시대에 이런 가사를 대중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고민했을까. 정말 암울했던 시대에 숨쉬고 살아갔던 그다. 머리카락 길이, 치마 길이까지 걱정해주던 나라. 장발은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을 밀어댔던 시절. 유신정권의 긴급조치라는 것이 모든 것들의 입을 막아버리던, 독재자의 헌법을 반대해도, 비방해서도 안 되는, 그걸 어기면 군사법정으로 끌려가던 시절. 말은 산업화였지만 밑바닥엔 농사꾼들의 땀과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친일파들이 경제 주체가 되고 가요계에선 수많은 곡들이 불온의 딱지를 달고 방송금지, 판매금지 됐고 대학 캠퍼스엔 장갑차가 사법 살인으로 불리던 인혁당과 민청학련 조작사건 등 그들과 동조해 살던 사람들은 아직도 부끄럼 없이 살고 있다.

1968년 오랜 미국생활에서 돌아 온 한대수. 모양새는 가관(장발ㆍ부츠 등)이었지만 신중현, 김민기처럼 그도 유신정권의 마녀사냥감으로 사지가 절단 당했다. 그의 2집 고무신의 마스터 테잎이 강제 회수 파괴되었고 자신의 분신이던 1, 2집의 능지처참은 그야말로 형언키 어려운 그의 정신적 사망을 의미케 했다. 핍박의 아이콘. 뮤지션 한대수는 그 후 유신정권하의 숨막힘으로 다시 미국으로 내 몰리게 된다. 음악적 도피가 된 셈이다.



●'흠흠신서'의 교훈을 아는가

조선시대 22년간 유배생활 중에 쓴 조선 최고의 법률서 정약용의 흠흠신서에서 '들끓는 파리 떼를 죽이지 마라. 모두가 백성들의 영혼이다'라고 썼다. 술에 취해 할 일 없는 주정뱅이의 독백처럼 들리는 한대수의 '하루아침'의 가삿말

'술이나 한잔, 술이나 두잔, 술이나 석 잔을 마시며 내 뱉는 하찮은 소릴 들었는가/가진 자여, 누리는 자여. 들었으면, 아니 들었다면 그의 영혼을 더는 죽이지 마라' 그가 한말 '소리를 한번 지르고 노래를 한번 부르니/옆에 있는 나무가 사라지더라' '바람과 나'에선 '무명무실 무감한 님/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라고 외쳐 대더라. '한대수 1집 멀고 먼 길엔 '물 좀 주소''하룻밤' '바람과 나' '잘 가세' '옥이의 슬픔' '행복의 나라' '인상' '사랑인지' 등이 수록돼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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