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유시인 정태춘, 1996년 '가요 사전심의제' 폐지 이끌어
국소남의 통기타는 영원하다 ● 노스텔지어 7080 Ⅶ
1990년ㆍ 1993년 무단발매 '저항'
헌법재판소, 60년만에 폐지 결정
사랑과평화, 70년대 록밴드 전설
1990년ㆍ 1993년 무단발매 '저항'
헌법재판소, 60년만에 폐지 결정
사랑과평화, 70년대 록밴드 전설
2017년 12월 06일(수)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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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이 딱 한 장 남았다. 12월이다. 겨울이다. 마당이 있고 담장이 있는 여느 집에라도 가볼라 치면 색 바랜 가을낙엽들이 겨울바람에 쫓긴 듯 바람에 쓸려 담벼락 밑에 종횡으로 줄지어 숨을 죽인다. 안마당을 겨울에 내어주고 색은 바래고 잎은 말라 구부러져 그 곱던 주홍, 빨강색의 곱던 색들을 다 잃어버린 채, 담장 밑 한켠에서 숨죽이고 있는 꼴이라니….
(17) 1978년 사랑과 평화 1집 (한동안 뜸했었지)
●펑크록밴드 전설 '사랑과 평화'
한국 펑크록밴드의 전설인 사랑과 평화를 말할 때 따라 다니는 수식어다. 70년대 후반 외국 음악에서나 들어 봄직한 펑키리듬을 도입해서 발표했던 노래 '한동안 뜸했었지' 이 곡은 리듬의 과감성도 화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연주 실력에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최이철을 비롯해 키보드의 이근수, 드럼의 김태홍, 보컬의 김명곤, 베이스의 이남이. 프로 연주자들의 보기 드문 결합은 수퍼 밴드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당시 최고의 실력자가 아니면 서기 힘든 미8군 무대에서도 최상위 등급인 스페셜 AA로 분류됐을 정도다. 1집 앨범 '한동안 뜸했었지'는 가수이자 DJ 이장희가 프로듀싱을 맡았고 당시 한국에서 생각하기 힘든 펑크 장르를 소화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사 내용 중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 대겠지' 쩌렁쩌렁한 하이톤으로 '대겠지'의 보컬 부분은 일품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랑과 평화의 1집 앨범은 지금까지도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최고 레벨의 음반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장미'를 비롯해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 등이 히트돼 전설적 그룹임을 증명해 보였다. 2017년 올해로 팀 발족 40주년이 됐고 그간 9집의 앨범이 나왔지만 커다란 반응을 보이지 못해 안타깝다.
(18)1978년 정태춘 1집(시인의 마을)
●진정한 싱어 송라이터ㆍ음유시인
1978년 11월 5일. 정태춘의 첫 정규앨범으로 한국적인 포크스타일이 대중적으로 잘 표현된 앨범이다. 이 노래의 성공으로 이듬해 1979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신인 가수상과 TBC방송 가요대상 작사부문을 수상했다.
1954년생으로 경기 평택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 5학년 때 큰 매형을 통해 기타를 접했고 평택중 시절 밴드부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서울음대 진학을 목표로 재수하던 시절 수차례 가출, 전국을 떠돌았다. 1975년 전투경찰로 입대, 1978년 제대하고 1집 앨범을 발표한다.
●가요 사전 심의제 폐지 이뤄내
1978년 6월19일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에서 개작결정 조치를 받는다. 당시 심의에서는 '오리지널 시의 확인을 위해 심의 보류'라며 이 노래가 특정시를 노래화한 것이라며 원작 시를 찾았다. 하지만 이는 온전히 정태춘의 작품이었다. 결국 확인 결과 '시작과 연결 없는 대중가요 가사로는 방황, 불건전한 요소가 짙어 부적절하다고 사료되므로 전면 개작 요망함'이란 처분을 받았다. 가사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는 '푸른하늘 구름 흘러가며'로 '텅빈 가슴'은 '부푼 가슴'으로 '더운 열기의 세찬 바람'은 '맑은 줄기 산들바람'으로 바꿨다.
그때는 그랬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1984년 지구레코드사에서 정태춘ㆍ박은옥 4집 취입 당시 이곡을 다시 부를 때는 원곡이 수정 없이 심의를 통과했다. 그는 특유의 시적 가사, 읊조리는 창법, 토속적이고 한국적 정서, 방황과 유랑의 메타포 등 정태춘 만의 음악의 중요한 원형이 있었다.
이 앨범(1집)에는 군 시절에 썼다는 '시인과 마을'과 '사랑하고 싶소' '서해에서'를 비롯 1978년에 곡을 쓴 '촛불' 등이 동반 히트 했다. 국악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목포의 노래'도 일품의 노래들이다. 이때 히트 곡들은 현재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정태춘의 대표곡이다.
그는 가요 사전심의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저항했다. 법의 제도적 잘못 됨과 맞서 싸웠다. 1990년 7집 '아! 대한민국' 1993년 8집 '장마, 종로에서'를 무단 발매하기에 이른다. 결국 1996년 6월 7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사전심의제가 60년 만에 폐지된다. 정태춘의 공로가 크다. 그를 대신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사 하거나 노래 하는 가수 모두가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정태춘 만세다.
(19) 1979년 조동진1집 행복한 사람
●서슬퍼런 시절 '행복한 사람' 노래
억눌린 역사 터져 나온 분노, 매운 칼바람에도 함성소리 드높았던 동트는 새벽벌. 시월이 오면 핏발선 가슴마다 살아오는 십일육. 동지여 전진하자 깨치고 나가자. 뜨거운 가슴으로 빛나는 내일로!! (부산대 제2도서관 10.16 기념비)
필자가 부산대 제2도서관 앞에 세워진 10.16 기념비의 글을 먼저 소개하는 것은 1979년 국내의 어두웠던 시대적 상황을 얘기하고자 함이다. 1979년 부마항쟁을 기리는 기념비문의 내용이다. 부산에 게엄령이 마산에 위수령이 선포되던 1980년 광주 5ㆍ18항쟁 단초가 된 사건이다. 1년 전 1978년에 박정희가 9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1978년 유신 2기가 출범했다.
1979년 10월16일 부마항쟁 뒤 10일 후, 10월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박정희가 살해된다.
그 해 율산그룹 해체사건에 이어 12ㆍ12사건(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에 빌미가 돼 전두환이 등장했다. 그 세력을 앞세워 정부를 장악한다.
외국에서는 1979년 1월1일 미국과 중국이 수교의 물꼬를 트고 시험관 아기가 처음으로 탄생하는 등, 최초의 공산권(폴란드) 교황(바오로 2세)이 등극했다. 그 서슬 퍼렇던 시절에 가수 조동진은 통기타로 '행복한 사람'을 불렀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아직도 남은 별 찾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두눈이 있으니/외로운가요 당신은 외로운가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그마음 있으니'
조동진은 울고 있어도, 외로워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노래했다.
● 작은 배 타고 떠난 조동진
방광암으로 조동진은 2017년 8월28일 이 세상과 이별했다. 1967년 미8군 무대에서 재즈 록 밴드 쉐그린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로 데뷔, 자신의 이름을 딴 조동진으로 앨범을 발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79년 발표한 조동진(1집)은 인생은 그렇게 시간이라는 강물을 따라 저 멀리 떠나가는 조각배 같은 것이라고 읊조리며 우리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1980년부터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대부 조동진은 저항적 이미지보다 삶을 관조하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세상과 교감한 음유시인이었다. 그의 노래는 마치 계절의 낭만과 자연의 향내가 그윽한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김민기, 한대수에게 필적할 만한 음악적인 역량에도 금지의 흔적에 무게를 부여하는 우리 음악계의 특이한 현실은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인색했다. 80년대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시대를 이끌었던 그는 일관된 음악적 삶을 산 흔치 않는 거장급 아티스트였다.
그가 노래한 '작은 배'에서 '작은 배로는 떠날 수 없네.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라고 읊었다. 작은 배. 얼마나 작았길래. 그의 음반에는 '겨울비' '긴긴 다리 위에 저녁해 걸릴 때면' '바람 부는 길' '작은 배' '불꽃' 등 수록돼 있다.
(20) 1979년 송골매 1집 '세상모르고 살았노라ㆍ세상만사'
1978년 TBC 해변 가요제에서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로 인기상을, MBC 대학가요제에서 '탈춤'으로 은상을 받은 활주로가 팀을 재정비 한 뒤 1집 음반을 내놓는다. 활주로(항공대학 밴드)는 송골매의 원년 팀명이다.
●국내 록뮤직 대중화 이끈 록 밴드
송골매는 모체였던 그룹 활주로로 출발, 1979년 1집 발매 후 총 9매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1980년대 한국 록 음악의 대중화를 선도했던 전무후무한 록 밴드다.
미끈한 일렉 기타와 육중한 드럼세트, 무대 전면에 두 명의 트윈 보컬을 선보이는 열정적인 라이브 무대. 1980년대 한국 락 밴드의 대명사이기도 한 송골매는 이렇게 기억된다.
신중현, 산울림과 함께 당당히 대한민국의 락 음악의 대표적 밴드로 꼽히는 송골매는 1979년 배철수(드럼ㆍ보컬), 이봉환(키보드ㆍ보컬), 지덕엽(기타), 이용수(베이스)를 주축으로 결성됐다.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세상만사'가 수록된 1집 앨범을 내놓는다.
1집 음반 수록곡 중 '세상만사'는 블루스에 기반한 하드록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중 딥 퍼플의 그림자가 커 보이는 오르간의 광범위한 활용, 노랫말에서 민속적인 소재의 형상화는 당시 다수의 캠퍼스 그룹 사운드들이 공유했던 특징을 보인다. '세상만사'는 그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블랙 테트라' 구창모와 김정선이 송골매에 합류한 1981년. 이후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모두 다 사랑하리' 등으로 국내 최고 인기 밴드로 군림했다.
● 흰머리와 콧수염 배철수, 방송 DJ로 맹활약
MBC FM '배철수의 음악 캠프(매일 오후 6시~8시)' 프로그램은 1990년 3월19일부터 2009년 5월25일 7000회 기록을 세웠다. 최장수 Pop 전문 DJ로 성장했고 최장수 시그널 기록을 세웠다. KBS TV 프로그램 '배철수의 콘써트 '70ㆍ80' 역시 2004년 11월6일(매주 토요일 밤 11시 30분~)부터 2009년 2월20일 200회를 돌파,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본지 칼럼 '통기타는 영원하다'는 총 36편이 게재됐습니다. 이 중 제30편~36편 속에 실은 '노스텔지어 7080 국내음반 베스트20'은 1970년대까지만 게재합니다. 추후 '1980년대 베스트 음반20'을 이어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