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밤 공연ㆍ카페서 동고동락… 아! 그 기쁜 젊은날
국소남의 통기타는 영원하다 44. 광주 통기타 전성시대 Ⅴ
충장로 1가 에피소드 카페
별밤 가족 모이는 '아지트'
20대 초ㆍ중반 시절 우분트
충장로 1가 에피소드 카페
별밤 가족 모이는 '아지트'
20대 초ㆍ중반 시절 우분트
2018년 04월 03일(화) 21:00 |
![]() 그룹 \'5번줄밴드\' 기현수, 이미랑, 한종면(왼쪽부터ㆍ2016) |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말로 '누군가에게 긍정적 기대를 하게 되면 그 대상은 긍정적으로 행동하거나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의미다.
1983년 충장로 1가 뉴욕제과점 옆 건물 1층에 '에피소드'란 카페가 문을 연다. 광주 MBC 별밤 명예회원인 박동찬 아나운서의 후배 은희중씨가 예쁜 커피숍 하나를 오픈했다. 별밤 담당 PD 김승재 PD와 박동찬 아나운서의 친화력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부턴가 '에피소드'가 별밤의 아지트가 돼가고 있었다. 으례 점심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무슨 할 말들이 그리도 많았을까. 매일같이 삼삼오오, 칠칠팔팔…. 흔히 말하는 죽치고 있는 시간이 한두 시간이 아니었다. 가끔 날을 새는 날도 허다했다.
김승재 PD, 박동찬 아나운서, 별밤 가족 강용욱ㆍ임인식ㆍ박병남ㆍ(고)김경찬ㆍ오영묵ㆍ김철진ㆍ박희진ㆍ오미란ㆍ(고)최은홍ㆍ최우남ㆍ기현수ㆍ이상학ㆍ김진기ㆍ최귀현 등이 그들이다. 당시 이장순은 서울에, 필자는 직장생활 중에 간혹 들렀다.
저녁 시간이면 근처 당구장(故 김경찬 운영)에서 게임을 하기도 하고 에피소드 바로 옆 건물 '1가집'이란 소주 집엔 별밤지기 원조 소수옥의 단골술집이 있어 얼굴을 마주칠 때도 있었다.
그랬다!. 그 때의 별밤 멤버들은 20대초에서 20대 중반 젊은 피들이었다. 젊어서 좋은 이유가 따로 있으랴. 그저 만나면 음악 이야기, 악기 이야기, 속 터지고 분한 이야기들이 매일처럼 쏟아져 나오고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 들이며 우정과 사랑의 꽃을 피웠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보이지 않게 크게 작용되고 젊음의 꿈들이 바다처럼 커져 있었다. 멤버 간 '커플'도 생겨났으니까.
'에피소드'에 가득한 '우분트'
'내가 너를 위하면 너는 나 때문에 행복하고, 너 때문에 나는 두 배로 행복해진다.' 우분트(Ubuntu)란 단어의 새김 말이다. 그렇다. 좋은시절은 느끼지 못하고 흘러간다. 많은 만남의 시간 속에서 청춘들은 노래하고 춤을 추며 포옹하고 서로를 체감하며 온기를 느낀다. 이곳 광주의 통기타 그룹 별밤 가족들은 한 형제요, 남매요, 가족이었다. 눈을 감으면 아련하기만 한 충장로 1가 '에피소드'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곳 '에피소드'엔 우분트가 가득했다. 3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음악을 멀리하고 있는 지금의 몇몇 우리들의 마음속엔 별밤의 사랑과 우정이 가슴을 찢고 들어선다. 형제, 자매들아 그땐 그랬지?
사람사는 세상,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1980초ㆍ중반
사람 사는 세상. 어느 때 건 시끄럽지 않고 요동치지 않았던 세월이 있었던가. 1980년대 초ㆍ중반 국내와 지구촌은 단 한시도 평화스러운 때가 없었다. 1982년 통금해제, 실명거래제 파문,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일본교과서 왜곡 파문, 이철희ㆍ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7111억), 김대중 석방 후 도미 치료, 권투선수 김득구 사망. 1983년 KAL747점보기 피격(269명 사망), 아웅산(버마) 암살 폭발사건 (서상준 부총리 외 17명 공식수행원 사망), 미ㆍ소 핵협상 결렬, 베이루트 폭탄테러, 미 그라나다 침공, 교복 자율화 실시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사건들이 국내, 지구촌 곳곳에서 터졌다. 1987년 6월 항쟁과 6ㆍ29선언까지 광주 5ㆍ18내란(당시 표현)으로 유혈집권한 제5공화국 군사정권시대였다.
광주 통기타 젊음의 피로 샘을 파다 1982~
그 시절. 빛고을 광주엔 포크(통기타)의 새 물결이 샘을 파기 시작했다. 지난호(제 43회)에 소개된 1982~1983년에 별밤에 등용된 기현수, 김백현, 최은홍, 김순희를 비롯, 12명에 이어 1984년 이상학, 김종민, 김진기, 최귀현, 최선영,1985년 왕미자, 최인종, 성낙조, 한평연, 정정래, 황규석, 김금자, 최정미, 박정선, 박남희, 정영희, 고경애, 김선화, 1986년 한종면, 구제술, 국순철, 이미랑 (22명) 등 만 25세 미만 젊은 노래꾼들이 별밤을 노크했다. 이들 중 입담 좋은 이상학ㆍ정정래 같은 개그맨도 있었다.
난초와 같은 기현수 등장 1982
1959년 장성 진원 태생(본명 기효산). 이 세상엔 여러 장르의 음악이 있다. 하지만 기현수 그는 복음성가 가수로 길을 택한 지 오래다. 독실한 크리스천에 한때 '빵떡모자 집사'라는 닉네임이 그럴듯하게 들렸던 가수다. 그의 여리고 굵지 않은 톤에는 무언가 숨겨져 있는 듯했다. 음색(칼라)엔 애잔함과 비장함, 슬픈 영혼을 달래기라도 하듯 음악적 서정성이 짙게 깔린 목소리를 가진 가수였다.
필자가 본 그의 첫인상은 이랬다. 어릴 적 권투(복싱)를 했던 탓일까. 음악인으로서 길을 택하진 않을 성 싶었다. 1982년 통기타를 매고 방송국에 찾아 온 청년. 그의 모습은 여리고 앳돼 보였다.
작지만 야무진 체격과 또렷한 두 눈, 잘 정돈된 발성 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장기까지 변변한 음악적 수업을 받지 못했지만 타고 난 음악성과 끈질긴 노력의 결과일까. 광주의 노래하는 후배 중 가장 클래시컬한 발성으로 노래를 하는 가수가 기현수라고 기꺼이 말해 줄 수 있다.
1984년 대학시절, 노래 단짝을 이룬 최우남과 MBC 대학가요제(제8회))에서 소리모아의 박문옥의 가삿말과 곡인 '마지막 잎새'로 동상을 차지한다.
이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던가. 한 운영주의 업소에서 12년을 노래했다. 1988년도 황금동 '베네치아'라는 피자와 양식을 전문으로 하는 업소에서, 금남로 무등빌딩 '스카이 로사'에서 2000년까지 무대에 섰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실력이 겸비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가수가 하루에 업소에서 한 타임(30분)을 노래할 때, 대략 7~8곡을 연주해야 하는 것이 정설이다. 한 달로 치면 250곡을 연주했다는 계산이다. 12년이면 3000곡을 연주한 셈이다. 대단한 일이다.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최소한 이곳 광주에서 만큼은 말이다.
국소남과 10여 년간 듀엣 파트너로
필자가 미국 이민에서 돌아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들꽃마을 사람들'이라는 노래하는 봉사단체에서 봉사무대와 연주회에서 듀엣으로 노래했다. 전국교화시설(교도소ㆍ소년원) 17군데를 돌며 3개월간 고생한 사례와 어려운 이웃을 찾아 노래와 연주로 때로는 교회, 병원, 경로당 등 많은 곳을 찾아 봉사했다. 그는 지난 2016년 별밤가족인 한종면 ,이미랑과 셋이 '5번줄'이라는 그룹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기현수. 그는 포크를 잘하는 싱어 송 라이터로서 뿐 아니라 기독교적 믿음의 사역자로 복음을 전파하는 복음 전도사로 활동이 더 기대된다. 믿음, 소망, 사랑이 그에게 항상 함께 하기를 기도해 본다.
● 기현수 프로필
ㆍ1984년 MBC 대학가요제 동상 (마지막 잎새) ㆍ광주 MBC 별밤가족 ㆍ노래패 '꼬두메' ㆍ호남신학대학교 실용음악과 강사 역임 ㆍ전남대 평생교육원 강사 역임
ㆍ보성 복내 전인치유센터 치유 음악사
ㆍCBS 광주방송, 극동방송 게스트 ㆍ'5번줄' 밴드 대표 ㆍ광주교대 음악교육과 출강
(음반)
ㆍ가스펠 1집 '늘' 발표 (2000년)
ㆍ가스펠 2집 '그 얼굴 바라볼수록' 발표 (2003년) ㆍ가스펠 3집 '아버지 품에서 부르는 노래' 발표 (2008년) ㆍ기현수 The Poem Sketch '작정' (2017년)
ㆍ'둘이서 찬양을'(국소남ㆍ기현수) 찬송가집 (2008년)
(공연)
ㆍ가스펠 1집 출반기념 콘서트 (드맹 아트홀ㆍ2002년 6월) ㆍ가스펠 1집 발표 콘서트 (문예회관 소극장ㆍ2003년 9월) ㆍ기현수 치유 콘서트 (문예회관 소극장ㆍ2004년 11월) ㆍ암 환우를 위한 치유콘서트 (문예회관 소극장ㆍ2006년 11월) ㆍ광주문예회관 초청 화요 예술무대 기현수 퓨전 콘서트 ㆍ'꽃들에게 희망을'(문예회관 소극장ㆍ2011년 9월)
ㆍ2012년 2월 미국 고어 헤드 초청 순회공연(뉴욕ㆍ뉴저지ㆍ워싱턴ㆍ필라델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