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아담 리바인 'Lost stars'
김기호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밝히기 위한
길 잃은 별들인가요?
김기호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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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별들인가요?
2018년 05월 24일(목) 21:00 |
![]()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코스모스(Cosmos)\'. 해설을 한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Cosmos)\'에서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했다. 뉴시스 |
앞서 미국은 1977년 8월에 보이저 2호, 9월에 보이저 1호 우주선을 각각 발사했다. 목성ㆍ토성ㆍ천왕성ㆍ해왕성 등 태양계의 외곽에 위치한 거대한 행성을 탐사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현재 이 두 우주선은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공간을 여행하고 있으며, 그 도중에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외계인에게 지구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지구의 소리'라고 불리는 기록장치를 탑재하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수학공식, 지구의 자연을 담은 사진들과 거리의 소음, 아기가 태어날 때의 울음소리, 현악사중주의 소리, 로켓의 발사음, 미국 대통령의 인사말 등을 싣고 있으며 한국어 인사말 '안녕하세요' 역시 포함돼 있다.
아직까지 이 우주선들이 외계생명체와 조우했다는 소식은 없다. 그러나 우주의 수많은 별 중에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드넓은 백사장의 작은 알갱이에 불과한 우리의 메시지가 생명체가 존재하는 다른 별의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않을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에서 지구에 외계인이 '도착(arrival)'한다. 세계 열두 개 나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반구형 쉘(shell)이 떠 있다. 그렇게 떠 있기만 할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질 않는다. 인류사회 전체는 공포에 휩싸이고, 미국 정부는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 그리고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러너 분)의 도움을 요청한다.
물리학자 이안은 언어학자 루이스가 지은 책의 서문 중 '언어는 인류문명의 기반이자 연결고리이고, 갈등에 대응하는 강력한 무기다'고 말한 부분을 비판한다. "문명의 기반은 언어가 아니라 과학이지요." 외계인이 지구에 온 목적과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과학적 질문을 준비했다는 그의 말에 루이스가 반문한다. "수학문제를 던져주기 전에 그저 대화부터 해 보는 게 어떨까요?"
루이스는 소통을 시도하지만 벽에 부딪친다. 외계인들은 영어나 한국어와는 완전히 다른 표훈(表訓)문자에 가까운 체계를 보인다.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던 루이스는 돌연 입고 있던 두꺼운 방호복과 헬멧을 벗는다. 바이러스 감염 등을 우려한 동료들은 극구 만류하지만 루이스는 말한다. "대화를 위해선 먼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야한다. 이게 진짜 소통(커뮤니케이션)이지."
외계인이 '도착'한 다른 열 두 개의 지역에서도 소통이 시도된다. 중국은 중국식 게임 즉 마작(麻雀)의 기호를 통해 소통을 시도한다. 루이스는 이러한 시도에 반대하며 말한다. "게임으로 소통하면 그들은 적, 승리, 패배란 개념만 배우게 될 겁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망치를 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겠죠."
루이스의 우려는 현실화 한다. 대화가 시도되던 중 해석된 하나의 문자가 'offer weapon(무기제공)'으로 밝혀진다. 강경파들은 저들의 목적이 지구의 국가들을 분열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루이스는 'weapon'의 의미가 단순히 '도구'일수도 있음을 말하지만, 대립과 대결의 편견에 갇혀 있는 상당수 지구인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그리고 군인들은 우주선(쉘)에 폭탄을 설치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뇌 회로는 학습하는 언어의 체계에 따라 바뀌고 이는 사고체계 자체에 영향을 준다. 외계인들의 문자체계는 전후의 방향성이 없고 시간으로부터도 독립적이다. 영화 속에서 루이스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교차되는데, 그것은 과거의 시간이 아니었다. 외계인들은 미래의 시간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의 문자 체계를 이해하게 된 루이스 역시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녀는 미래에 동료인 이안과 결혼을 하고 자신의 딸은 희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날 것임을 알게 된다.
말은 문화이고 역사이면서 그 말을 쓰는 사람의 철학을 담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공경의 표현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영어권에서는 'pass away', 떠나가거나 혹은 사라진다고 보는 반면 우리는 원래 있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보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노장사상에서는 현세를 한바탕 꿈이라고 했다. 그리스인들은 죽음이 '삶의 어두운 연속'이라고 믿었다. 중국과 이집트의 권력자들은 육체가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다는 믿음에 희망을 가졌다. 이집트 피라미드나 중국의 병마용 등이 그 증거다.
기독교는 죽음 뒤의 영생을 약속함으로써 그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려 애썼다. 프로이트 이후 인류는 스스로의 심리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여전히 조바심을 내고, 불안해하고, 무기력을 느끼고, 여전히 모든 문제를 홀로 떠안고 있는 듯한 외로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루이스는 불완전성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한 순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받아들인다.
"우리 삶에 어떤 순간이 올 것인지 알면서도 난 모든 걸 껴안았어.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반길 거야."
루이스는 이안이 그의 곁을 떠날 것을 알았지만 이안을 사랑했고, 딸 한나가 태어나는 순간 감동하고 감사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사랑한다. 앞서 외계인들이 말한 'weapon'은 무기가 아니라 선물의 의미였다.
마이클 카힐 감독의 2011년 작 '어나더 어스(Another Earth)'의 상상은 한층 파격적이다. 17세 소녀 로다(브리트 말링 분)는 수재인데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MIT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은 날, 축하연에서 술을 마신 후 운전대를 잡는다. 라디오에서는 지구와 똑같은 형태의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로다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운전을 하고,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차를 들이받는다. 작곡가이자 예일대 교수인 존 버로스의 아내와 어린 아들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존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4년형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벌을 받고 출소한 로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존을 찾아간다. 차마 사실을 밝히지 못한 로다는 자신을 청소부로 소개하고 주기적으로 그를 찾아가 집안일을 돕는다. 폐인의 삶을 살던 존은 로다의 배려에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앞서 발견된 지구와 똑같은 형태의 행성은 마치 깨진 거울처럼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온 행성이었다. 그곳에는 지구와 완전히 동일한 사람들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로다는 '어나더 어스(또다른 지구)'라고 명명된 이 행성여행의 프로젝트에 선발이 된다. 자신의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존에게 그간 숨겨왔던 진실을 밝히고, 존은 충격을 받으며 분노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심지어 그의 삶을 망가뜨리게 되는 운명도 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 속 로다처럼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후회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내야 한다. 우주의 어느 다른 행성에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무슨 얘기를 해 줄 수 있을까. '또 다른 나'가 '지금의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과연 그는 행복할까? 다른 행성의 내가 아니라도 우리는 매일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나는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니체는 물었다. "당신이 살아온 그대로 내가 살아간다면 당신은 나를 칭찬하겠는가?"
미국의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가 큰 화제를 모으며 천만관객을 돌파했다.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역시 만만치 않다.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몇몇 슈퍼히어로들이 지구를 때려 부수는 것 말고도 우리는 할 얘기가 많다"고 비꼬았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서부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유행도 곧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마블이 십여 년에 걸쳐 완성한 그들만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한 상상력과 추진력은 경이롭다. 이번 영화는 마블의 슈퍼히어로에 심드렁했던 많은 영화 팬들마저도 박수를 보낼 만큼 촘촘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마블의 우주는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이 제작한 전설적 다큐멘터리 '코스모스(Cosmos)'의 다중우주론을 따른다. 우리가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우주의 크기를 예측할 순 없다. 가늠조차 어려운 138억년 우주의 역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관측 가능한 '우주의 지평선'너머의 빛은 아직 지구에 도착조차 하지 않았다.
관측 가능한 우주 속의 무수한 세계는 수많은 우주로 이뤄진 무한한 바다의 작은 거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주 위의 또 다른 우주, 그것이 '다중우주론'이다. 영화 '어벤저스' 속 광활한 우주에는 지구 외에 수많은 행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하고, 그 속에서 시공을 오가는 히어로와 빌런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칼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앞서 언급한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마블의 또다른 영화 '앤트맨(Antman)'은, 나노단위보다 작아진 인간에게 시공은 무의미함을 경고한다. 더 작아질 필요도 없이, 광활한 우주 전체에서 지구의 크기는 나노 단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 위에 살고 있는 우리 각자의 존재의 크기는 상상조차 어렵다. 그래서 바쁘단 핑계를 대던 법륜스님에게 주지스님은 그렇게 호통을 쳤는지 모르겠다.
"이 놈아,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바쁘긴 뭘 바뻐?"
노래 'Lost stars'는 미국의 밴드 마룬파이브의 보컬인 아담 리바인이 청춘의 사랑과 꿈을 그린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불렀다.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우리는 어둠에 빛을 밝히기 위한 길 잃은 별들인가요?)/who are we(우리는 누구일까요?)/Just a speck of dust within the galaxy(그저 우주 속 작은 먼지에 불과한 걸까요?)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문화평론가 김기호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