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정비에 또 무너진 석곡천… 290억 날렸다
지난달 집중호우에 제방50m 붕괴
2009년 붕괴 후 전면 개·보수 불구
유속 등 하천 환경특성 무시 시공
“하천 옹벽·빗물 수용 범위 재검토”
8월 콘크리트 옹벽 보강 작업 진행
2023년 07월 03일(월) 18:42
광주지역에 시간당 최대 50㎜의 폭우가 내린 지난달 28일 광주 북구 건설과 직원들이 북구 석곡동 석곡천에서 유실된 제방을 복구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지난달 28일 내린 폭우에 붕괴한 석곡천 제방이 과거에도 무너져 수백억 원을 들여 재정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해·안전 예방을 위한 전면 개·보수에도 처참히 붕괴한 제방에 전문가들은 유속·침식 등 하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실 정비였다고 꼬집었다.

● 주민들 “폭우 취약지 항상 불안감”

“빗물에 강물이 조금만 불어도 어찌나 사납게 흐르던지…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항상 무서웠어요.”

최근 광주 북구 석곡동 석곡천 인근에서 만난 서모(70)씨는 붕괴한 하천 제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제방에서 불과 100여 m 떨어진 곳에서 논농사를 짓는 농부로, 십 수년 째 이곳을 통행로로 이용했다. 몹시 익숙한 곳임에도 서씨는 이제 제방길을 걷기가 두렵다. 최근 폭우로 제방 일부가 유실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집중호우가 쏟아진 가운데 석곡천 제방 50m가량이 무너졌다. 농사를 짓던 한 주민이 이날 오전 5시30분께 자신의 논을 살피러 갔다 제방 일부가 붕괴한 것을 확인하고 석곡동 주민센터에 신고했다. 비상 소집된 동 직원과 북구 관계자 등은 하천 수위가 급격히 올라 범람·정전 등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 인근 월산·죽곡마을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다행히 비가 그치면서 실제 대피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광주에는 전날부터 약 274㎜의 비가 쏟아졌다.

마을 주민들은 이번 제방 붕괴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같은 사례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서씨는 “과거에도 이번 사고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발생 지점도 바로 근처다. 당시 붕괴 사고가 있고 얼마 뒤 석곡천 일대가 전면 재정비됐다”며 “한참 걸려 하천 공사가 마무리됐음에도 이후 비만 오면 제방 블록이 떨어져 나가는 등 여전히 ‘불안불안’ 했다. 특히 2020년 집중호우 때 그게 심했다”고 회고했다.

죽곡마을 주민 문찬식(75)씨도 같은 의견을 냈다.

문씨는 “석곡천 제방이 무너진 건 올해가 세 번째다. 불과 3년 전에는 몇몇 구조물이 범람한 강물에 파손되거나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며 “석곡천은 예부터 비가 오면 범람이 잦고 물살이 거셌다. 특히 이번 붕괴 장소는 크게 굴곡진 탓에 강줄기가 그대로 부딪혀 주민들도 항상 ‘노심초사'하는 곳이었다. 언젠가 사달이 한 번 날 것 같았다”고 전했다.
지난 1일 찾은 광주 북구 석곡동 석곡천 제방 붕괴 현장에는 흙이 담긴 톤백들로 임시 복구가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폭우 시 불어난 강물이 하천 보(동그라미)를 지나면서 강해진 수압으로 제방을 가격해 지반을 약하게 만들었다고 봤다. 정성현 기자
● “하천 특성 고려하지 않은 시공“

실제 지난 2009년 집중호우로 석곡천 주변 제방이 5m가량 붕괴하는 사고가 있었다. 지난달 28일 무너진 제방에서 약 50m 거리였다. 이후 광주시는 지방 하천 재해 예방·안전 확보를 위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석곡천 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했다. 북구 화암동에서 운정동까지 7.1㎞ 구간을 정비하는 데 약 290억4800만원(국비·시비 6:4)을 들였다.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정비했음에도 왜 붕괴 사고가 재발했을까. 전문가들은 ‘유속·침식 등 하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시공’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종천 동강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하천 정비 중 붕괴 지점 인근에 보가 설치되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 평소에는 강물이 간헐적으로 흘러 별문제가 없지만, 비 온 뒤에는 보를 통과한 강물의 유속이 빨라진다. 결국 강하게 흐르는 강물이 굴곡진 단면을 계속 치면서 하천 침식(유수에 의해 하천 바닥 등의 모래가 유실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곳은 흙벽 위에 방수포나 호안 블록을 덧대는 일반적인 보강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특히 강물이 굴곡진 단면과 부딪히는 지점에는 유속 감속 장치 등을 설치했어야 했다. 사고 지점만 보면 과거 하천 정비가 정교하지 못했다고 보인다”고 전했다.

송창영 광주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제방을 건설할 때 목표 설정이라는 게 있다. 보통 하천은 30년~50년 빈도의 폭우를 버틸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석곡천 또한 마찬가지”라며 “그러나 극심한 기후변화 등으로 이제 100년 빈도의 비가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말은 곧, 앞으로 내릴 집중호우 등에 당국의 대비가 충분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광주 지역 전체의 문제다. 자연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지역 내 하천을 대상으로 옹벽의 기초·빗물 수용 범위 등을 재검토·재보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북구 건설과 관계자는 “이번 붕괴 사고는 빗물로 강해진 물살이 꺾인 제방 지점의 호안 블록을 계속 유실시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이튿날 톤백과 골재들을 활용해 임시 복구를 마무리했다”며 “2009년 환경 개선 사업 후 이번 사고 이전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해당 지점이 호우 취약지라는 것을 확인한 만큼, 광주시에 예산을 요청해 이르면 8월께 콘크리트 옹벽 등으로 보강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찾은 광주 북구 석곡동 석곡천 제방 붕괴 현장에는 흙이 담긴 톤백들로 임시 복구가 이뤄졌다. 임시 제방 밑에는 무너진 제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성현 기자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