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발언대·최안식> 역지사지(易地思之), 선진집회·시위문화의 첫걸음
최안식 북부서 경비과 경위
2023년 09월 12일(화) 16:26
최안식 경위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 하(下) 29장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태평성대에 살았던 중국 하(夏)나라의 우(禹) 임금(치수(治水)에 성공한 인물)과 주(周)나라의 후직(농업의 신으로 숭배된 인물)의 행동과 난세에 살았던 공자의 제자 안회(공자가 가장 신임했던 제자)의 행동에 대해 맹자는 이들이 모두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 서로의 처지가 바뀌었더라도 모두 같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평하였다. 이렇듯 역지사지는 자기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상대의 시각에서 헤아려 보라는 삶의 지혜를 나타낸다.

사람들은 갈등·대립이 발생하면 극단적인 상황보다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집회·시위는 여러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해 같은 목소리로 상대방에게 주장·촉구하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자 수단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떤 주장을 펼치기 위해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일부 잘못된 생각과 행동들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최근 국민 제안 홈페이를 통해 실시한 국민 참여 토론에서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찬성하는 의견이 반대보다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특히, 집회·시위 시 발생하는 소음 단속기준 강화 등에 찬성하는 의견은 12만9416건으로 반대(5만3288건)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실은 국민 참여 토론에 올라온 의견을 분석한 뒤 국민제안심사위원회 논의를 거쳐 집회·시위 소음 규제를 강화하고, 도로점거 금지를 확대하는 등의 방향으로 법령을 개정할 것을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에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집회·시위제도를 개선함으로써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경찰에서도 인식전환을 통해 주최 측에 집회·시위의 전 과정에 대한 질서와 안전유지를 자율적으로 책임지도록 하고 집회참가자의 인권과 안전을 적극적으로 보장함과 동시에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 즉 권리와 기본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

인디언 속담에 ‘누군가를 평가하려면 그 사람이 신었던 신발을 신어보라’는 말이 있다. 소통과 공감을 위해서 역지사지는 필요하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과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지만 내가 먼저 역지사지하면 상대도 역지사지 하게 될 것이며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행하는 작은 노력이 타인을 배려하고 배려받는 사회 속에 성숙한 선진집회·시위 문화가 정착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