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 에세이·오소후>백남준의 비디오 샹드리에 4 그리고 X
오소후 광주문인협회 외국문학분과장·예술명인1호
2024년 02월 15일(목) 14:32 |
오소후 광주문인협회 분과장 |
백남준의 어록처럼 미디어 매개체로 공생하는 시대의 사람들이 반드시 만나야 할 ‘세상에 없던 예술’이기 때문이다. 천재라는 말로 뭉뚱그려가지고 될까. 혼을 던지고 몸을 바친 20세기 작가의 치열함, 그리고 열정, 더불어 보여주는 희망메시지까지. 그의 노력 덕분에 안심하고 낙관한다. 그가 뇌졸중으로 아파하던 시기에 안심시키며 낙관했던 제4전시실 ‘안심낙관’ 예술 치유 작품을 보며 잠시 나의 걱정과 번뇌를 내려 놓아본다 (1999). 무엇부터 얘기를 시작해야될까. 백남준의 유목민 생활은 말을 타고 세계를 방랑하는 게 아니고 미디어를 타고 각처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관심사를 함께 느껴본 것이다.(From Horse to Christo)
작품은 백남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초록 명상과 빨간 열정과 파란 희망으로 연대한 세상은 ‘굿모닝 오웰’ 최초 위성쇼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1984년 오웰의 ‘ 미디어와 기술에 잠식 당할거라는’ 소설의 메시지를 희망으로 바꾸어 준 것이다. 오웰의 디스토피아는 백남준의 유토피아로 반전되었다. 비디오아트라는 예술장르가 생겨나고 꿈을 꾸게 했다. 제1전시실(블루부다)에서 백남준은 30분 앉아 있기를 부탁한다. 동서양의 조우(1996)를 명상하는 동안 침묵이 아닌 작은 소리들, 우주가 끊임없이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고 일깨운다. 작년 (2023) 담양 해동촌문화행사로 홍신자 명상무용가는 백남준 100주년 오마주(존경)를 솔로 무대 퍼포먼스로 보여주었다. 영성과 평생 저장된 내공이 표현되는 무대였다. 백남준과 홍신자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예술의 혁신자 선각자들이기에 나도 또한 무엇인가 들끓는 열정으로 경계를 뛰어넘는 예술인을 지향하고 있지 않는가.
과학기술의 노예가 되지 않고 철학과 사상의 짝과 랑데뷰를 꿈꾸던 백남준이 걸었던 길은 Free Life를 보여준다. 반려견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을 끌고 가는 장면, 그리고 TV브라와 첼로 TV등은 보는 이의 귀와 눈을 지배하고 말았다. 뮤지션 루이치 사카모토는 뉴욕을 상징하는 재즈풍 음악을 헌정한다. 세상의 화합을 꿈꾸던 백남준에게 존경을 바치는 곡이다.
그의 아내 시게코는 말한다. 텔레비젼은 백남준에게 에스페란토어(세계공용어)라고, 또한 백남준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특별한 언어를 집어내어 쓰기 때문에 ‘백남준어’라고 한다고 전한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도 큰소리 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웃는 백남준. 동·서양이 결코 만날 수 없다고 쓴 키플링에게도 이념의 장을 넘어 전 지구적 축제로 만든 묘한 연대감을 선물했던 것이다. 우리는 예술가로서 미래를 사유하고 도전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가야한다고 백남준의 예술품을 보여준다.
쉰베르크 음악(1945)에 깊이 빠졌고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 ‘플라토닉 연습곡’, ‘머리를 위한 선’, ‘걸음을 위한 선’, ‘오페라 섹스트로닉’은 영감을 주고받을 만큼 영향력을 지녔다. 요노 요코는 말했다. “나에게 남준은 사막에서 발견한 물과 같았다” 라고. 김수경은 ‘새로운 어떤 것을 원하고 실현하려 할 때 지금도 나는 백남준의 시 로봇 오페라 를 생각한다. 카라얀은 너무 지겹고 마리아 칼라스의 벨칸토는 너무 시끄러워 그래서 나는 로봇 오페라를 사랑해 로봇 오페라…’라고 적었다.
전자매체로 공생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노마디즘 인류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타고 세상을 누비고 있다. 오늘은 백남준을 빠져들게 한 쉔베르크 음악을 감상한다. ‘사랑의 10,000 마일’ 백남준 전시회를 광주미디어아트 플랫폼에서 관람하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