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미국적 액션, 그리고 썸과 로맨스
데이비드 리치 감독 ‘스턴트맨’
2024년 05월 12일(일) 17:14
데이비드 리치 감독 ‘스턴트맨’ .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데이비드 리치 감독 ‘스턴트맨’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액션도 터지고, 사랑도 터지고, 웃음도 터진다’는 영화 ‘스턴트맨’은 1981~1986년까지 ABC에서 방송된 TV 드라마 ‘더 폴 가이(The Fall Guy; 글렌 A. 라슨 작)’가 원작이다. 우리나라에 방영되었을 적에 원제목 대신 ‘스턴트맨’이라 붙였던 타이틀이 이번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영화 스토리에는 영국의 극작가 톰 스토파드가 즐겨 사용하던 ‘액자 형식’의 ‘극 중극’ 서사방식을 적용, ‘영화 속의 영화’로 응용하였다. 톰 스토파드와 다르게 영화 속의 영화에 감독과 스턴트맨이라는 직업의식과 제작환경을 있는 그대로 반영, 영화와 영화 속 영화를 연계하는 투명틀의 액자라는 것이 신선했다.

스턴트맨 콜트(배우 라이언 고슬링)는 촬영감독 조디(배우 에밀리 블런트)와 알콩달콩 썸을 타는 중이다. 사이 좋은 연인의 모습도 잠시, 콜트는 촬영중 사고를 당하고 자신감을 잃은 채 잠수를 탄다. 주차요원으로 소일하던 콜트에게 어느날 총감독 게일(배우 한나 웨딩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다시는 촬영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생각하던 그였지만 조디가 감독으로 데뷔하는 영화 ‘메탈 스톰’의 스턴트 제의는 도저히 거절하기 힘들다.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가 보이는 시드니 바닷가 촬영현장에서 17개월 만에 뜻밖의 재회를 하게 된 조디의 입장과 달리 콜트의 스턴트 제안에는 다른 숨은 의도가 있어 고군분투하게 된다.

데이비드 리치 감독은 스턴트맨 출신이다. 영화 ‘스턴트맨’ 연출에 기울였을 그의 애정이 예상되는 이력이다. 감독의 애정 덕에, ‘007 카지노 로얄’(2006)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캐논롤(자동차를 공중에서 회전시키는 스턴트 기술)’ 기록을 18년 만에 깬 7바퀴 반 기록은 이 영화의 성과다. 그러나 애정이 과했는지 영화에는 폭발 장면이 넘쳐나고 액션으로 가득 채워져 스케일 만큼은 가히 미국적이었다. 주역과 조역을 막론한 여배우들의 파이팅 신까지 더해진 과도한 액션 속에서 액션과 버무려진 썸과 로맨스, 통통 튀는 코믹 대사가 그나마 열기를 낮춰줄 만큼이었다.

리치 감독은 수많은 영화로부터 신을 오마주했다. ‘킬 빌’(2003), ‘메멘토’(2000), ‘엣지 오브 투모로’(2014), ‘데드풀 2’(2018), ‘델마와 루이스’(1991) 등 영화계를 빛낸 작품들의 대사를 언급하거나 은유하는 장면 등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콜트가 차 안에서 울며 들었던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 그리고 조디가 가라오케에서 부르는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 역시 줄거리를 감성적으로 반영한다. 디자인 작품 중 패치워크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창출하듯 만들어진 영화라 패러디보다는 오마주에 가까운 듯하다.

영화의 행간에는 할리우드의 필름 성장에 큰 공헌을 한 숨은 그림자, 스태프들에게 애정과 헌사를 표하고 있다. 특히, 액션 영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스턴트맨들의 ‘원 테이크’ 촬영이 얼마나 중요하며 위험한지를 낱낱이(쿠키영상까지) 보여줌으로써 스턴트맨들을 위한 헌정작이 되었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대사 중에 있었다. “난 스턴트맨들이 좋아. 진짜 고생하는 건 당신들이잖아? 그런데 너희들, 상은 받나? 오스카 스턴트상? 아니, 스턴트맨들에게 주는 상은 없어.”

이 상은 앞으로도 생겨날 것 같지 않다. 영화에도 등장한 ‘딥페이크’(AI를 기반으로 한 인간 이미지 합성기술) 테크닉의 발전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 최근 드라마에 선보인 기술이다. ‘살인자ㅇ난감’에서 배우 손석구의 어린 시절을 맡은 아역배우의 얼굴에 손석구의 어린 시절 얼굴을 수집해 배우에게 입힘으로써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신기술 딥페이크는 배우들의 고유성을 위협하는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진실과 허구, 실체와 가상(이미지), 객관과 주관의 경계는 영화에서 어디까지 발전해 갈까. 스턴트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은 “잃어버린 예술”이라는 데이비드 리치 감독의 말처럼 씁쓸함이 공존하는 기술인 것이다. 5월 1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