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살던 곳인데… 추억 놓고 떠날 생각에 아쉽죠”
들불야학 태동지 ‘시민아파트’
광천동 재개발 이주 기한 임박
새로운 거처 찾아 나선 주민들
“역사 공간 조성해 보존됐으면”
광천동 재개발 이주 기한 임박
새로운 거처 찾아 나선 주민들
“역사 공간 조성해 보존됐으면”
2024년 06월 02일(일) 18:13 |
![]() 지난달 31일 철거를 앞둔 광주 서구 광천동 광천시민아파트 입구에는 재개발로 떠나간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 박찬 기자 |
![]() 광주 서구 광천동 광천시민아파트 재개발 사업으로 이주를 앞둔 주민 소영두(70)씨가 지난달 31일 ‘가’동 앞에서 떠나간 주민들의 물건을 정리하다 아파트 전체 경치를 바라보고 있다. 정상아 기자 |
길을 걷던 중 차 한 대가 드나들 수 있는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50여년 세월의 풍파가 그대로 담긴 광천동 시민아파트가 보였다.
도시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970년 지역 최초 연립 아파트로 건립된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약한 윤상원 열사와 김영철 열사 등이 활동한 들불야학의 배움터이기도 하다.
지난달 31일 오전 찾은 시민아파트 인근은 지역 최초의 노동 야학 무대이자 5월 민중항쟁의 흔적이 살아있는 역사 공간임에도 오랜 세월 방치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민아파트 ‘가’동에서 만난 소영두(70)씨는 여느 때와 같이 이날도 재개발 사업으로 떠나간 주민들이 두고 간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고 밝힌 소씨는 1954년, 지금의 시민아파트가 자리한 곳에서 태어나 완공되기 전부터 인생 전부를 한 주거지에서 살아왔다.
방 두 칸이 전부인 10평 남짓한 좁은 집에서 가족 7식구와 함께 살아 온 소씨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촌이었던 지역이었는데 토지 소유인들에 의해 점차 개발되기 시작했다”며 “화장실도, 세탁실도 전부 공용 공간이다 보니 주민들끼리도 자주 마주쳤다. 살아가다 보면 안 맞는 부분도 많았지만, 추석이 되면 밖에 나와서 다같이 윷놀이도 하고 만든 음식도 나눴다”고 회상했다.
이제 이곳에는 소씨를 포함해 6가구만이 남아 있다. 광천동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이 추진되면서 정해진 이주 기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재개발 조합이 알린 이주 기간은 지난 1월4일부터 3일까지다.
이사를 앞두고 있는 소씨는 새로운 보금자리에 대한 기대보다 걱정이 더 앞선 모습이었다. 일평생을 시민아파트에서 살아온 그에게 이주 통보는 매정한 강요였다.
그는 “이미 생활 여건이 더 나았던 주민은 모두 전셋집을 구하거나 집을 구해 떠났다”며 “아직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경제적 여건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이주부터 하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삿짐을 옮기던 주민 김모(67)씨는 소씨를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김씨는 “외관은 허름하지만 주변 공기도 좋고 조용해 혼자 살기 좋았다”며 “월세를 내며 16년 동안 생활했는데 전입신고를 늦게 해 이사비용도 받지 못하고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원래 본가였던 대구로 이사 간다”고 말하며 급히 자리를 떴다.
![]() 지난달 31일 주민들의 발길이 끊긴 광주 서구 광천동 일대는 허름한 건물들이 방치된 채 남아 있었고, 거리 곳곳에는 이주 기간을 설명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정상아 기자 |
당초 재개발 구역에 포함돼 철거될 예정이었던 시민아파트는 지난 2021년 광주시·서구·천주교광주대교구·광천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등이 4자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고 보존 방안을 논의키로 하면서 철거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시민아파트 가, 나, 다 3개 동 중 ‘나’동을 보존해 역사공원으로 지정하고 해당 건물을 리모델링해 전시관 등으로 만든다는 틀만 잡혔을 뿐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광주 서구 관계자는 “재개발조합이 1월쯤 정비계획 변경 입안을 신청했다”며 “지난달 31일 기준 이주율은 71%다. 변경 입안은 절차에 맞춰 검토 중이며, 정비구역 이주가 마무리되면 철거도 동시에 추진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시민아파트 보존에 대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행정절차가 마무리되면 재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될 것이다”며 “광천동 재개발 구역 면적이 넓다 보니까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상아·박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