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동주와 지하를 거쳐 앞으로 나아가는 한국의 미학
445. 흰 그늘, 윤동주에서 김지하까지
2025년 05월 01일(목) 15:54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표지.
윤동주의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로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검의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모통이 어둠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으젓한 양처럼/ 하로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윤동주의 시 ‘흰그림자’의 전문이다. 관련한 내용은 윤동주와 고락을 같이했던 친구 정병욱이 ‘나의 아호 백영(白影)’이라는 글에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정병욱에 의하면 1942년 봄, 윤동주가 적지의 수도 동경에 건너가서 처음 쓴 작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윤동주의 첫 마음자리가 흰 그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2024년 1월19일자 본 지면에 ‘어떤 봄 기별’이라는 제목으로 광양 망덕포구의 내력과 더불어 두 분의 관계를 소개한 적이 있다. 정병욱의 글을 좀 더 인용해 둔다. “여기 나오는 ‘흰 그림자’는 말할 것도 없이 겨레를 상징한 말이다. ‘흰옷’ 입은 사람의 그림자들, 즉 ‘백의민족’의 환상을 시인 윤동주는 언제나 연연하게 사랑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호의 내력을 소개한다. “조국과 겨레는 동주만의 사랑이 아니라 내게도 애인이었고 동주를 잊지 않으려는 욕심도 곁들여서 ‘흰 그림자’라는 우리말을 한자말인 ‘백영(白影)’으로 써본 것이다(중략). 원래 그림자란 검은 것인데 흰 그림자라니 그림자가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역설적이어서 현대적인 감각을 풍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점에 주목해 나는 윤동주의 그림자와 김지하의 그늘을 견주어 살핀 바 있다. 김지하가 직조한 용어 흰그늘이 한국미학을 이해하는 데 탁월하다는 점에서였다. 그렇다면 그림자와 그늘은 어떻게 같고 다른가. 탁양현이 ‘그늘과 그림자의 사유방식(동양철학연구 제68집)’에서 밝혔듯이 ‘그늘’과 ‘그림자’는 상호 근친적 의미로 사용된다. 물론 동양철학적인 ‘볕과 그늘’, 서양철학적인 ‘빛과 그림자’의 사유방식은 함의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영(影)과 음(陰) 모두 그림자나 그늘 등의 의미를 포괄하며 같은 뜻의 글자만도 수십 개가 넘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김지하를 다시 본다’ 책 표지. 개마서원 제공
김지하의 흰 그늘

윤동주가 민족과 자아의 순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차용했던 흰 그림자 이후 4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시인 김지하에 의해 흰 그늘이라는 개념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지난해 칼럼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기왕의 글에서 나는 흰 그늘의 두 출처를 말했다. 고향 목포에서 어린 나이에 경험한 바닷가의 시신 목격이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이를 삼국유사의 주몽 탄생 설화에 오버랩시킨 것은 사회적 경험 혹은 민족적 경험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흰 그늘을 생명이라는 화두에 덮어써 말할 때는, 교도소에서 바라본 풀 한 포기 이야기를 대표적으로 거론한다. 서울교도소 쇠창살과 시멘트 받침 사이에서 자라난 개가죽나무 풀, 김지하는 이 풀을 보고 울음이 터져 나와 이유도 모르고 울었다고 했다. 여기서 ‘생명’이라는 울림 혹은 환청 같은 한마디를 접하고 훗날 대표적인 키워드로 내세운 것이 ‘흰 그늘’이고 ‘생명’이라는 화두다.” 이미 여러 차례 소개했기에 주절주절 리뷰하지는 않겠지만 김지하의 흰 그늘은 사형수로서의 투옥과 고문 죽음의 공포를 체험한 뒤 형성된 사상이자 철학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억압, 폭력, 죽음의 경계를 넘은 자만이 볼 수 있는 빛의 반대편이자 오히려 빛의 본질이라고나 할까. 장차 눈 밝은 평자들이 심화시키겠지만 한국 민중미학의 법고창신을 이룬 대표적 개념 중의 하나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를 삭힘의 미학 즉 허튼미(散美)로 풀어낸 바 있다. 2022년 8월19일자 본 지면에 소개한 내용을 짧게 가져와 본다. “판소리에서 말하는 ‘그늘’이란 호명은 ‘삼국유사’의 ‘해그늘’을 상속하는 미학적 실체라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판소리에서 말하는 그늘의 본래 의미는 ‘한(恨)’이다. 하지만 ‘한’에 마냥 갇혀 있지 않다. 예컨대 ‘큰 나무 그늘’이라 함은 부정적 언술이 아니다. 시선의 배경에는 작열하는 땡볕이 있고 근경에는 그 햇빛의 직설을 피해 해그늘로 숨어든 은유 혹은 환유들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가객이라야 ‘울창한 그늘’이 발견된다는 언설이 왜 나왔겠는가? 꾀꼬리같이 맑은 노래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도 목이 쉰듯한 혹은 성대 결절의 탁한 소리에 무릎을 탁치며 ‘옳거니 바로 저 소리야!’라고 하는 소리의 세계, 이것이 판소리의 그늘이다.” 이런 점에서 윤동주의 ‘흰’과 ‘그림자’ 김지하의 ‘흰’과 ‘그늘’은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르다. 김지하의 직조는 삼국유사 주몽설화의 햇빛(日光)과 해그늘(日影)에 연원을 두고 유년 시절 고향 목포 바닷가에 떠밀려 왔던 시신이 들어 올리던(섬망 같은) ‘흰 손’이라는 강렬한 체험을 거쳐 구체화 되었다. 무엇보다 필명 김지하라는 작명 자체가 흰 그늘의 출처라고 할 만큼 친연성이 높다. 지하가 그늘이었기에 김지하가 흰 그늘이 된 것이다. ‘김지하 1주기 심포지엄’ 토론문에서 내가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를 거론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돌아서 눈 감으면 강물이어라/ 한 줄기 바람 되어 거리에 서면~” 기회가 되면 조용필에게 여쭤볼 요량이지만, 나는 생시의 김지하와 조용필이 흰 손과 흰 그늘로 교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거듭 상고하는 것은 한국 미학의 정체를 거론하는 이론 예컨대 원효의 무애론에서 야나기무네요시의 한의 미학까지 혹은 현대문화평론가들의 미학 이론에 이르기까지 손에 꼽는 개념 중에서 이제는 김지하의 흰 그늘이 자리 잡을 때가 되었다는 점이다. 김지하가 내신 그 길을 좇아 오르는 것이 한국 미학의 꼴을 제대로 다듬는 일이고 한국철학이 나아가아야 할 길이다.



남도인문학팁

동주의 ‘흰 그림자’에서 지하의 ‘흰 그늘’로

오는 5월8일 김지하 시인 추모 3주기를 맞아 문예전문잡지 ‘쿨투라’와 문학인들이 함께하는 작은 문화행사가 열린다. 이미 출판된 ‘김지하를 다시 본다’(개마서원) 출판기념회를 겸하게 된다. 흰 그늘을 화두 삼아 그이의 직조를 사숙(私淑)했던 것은 한국 미학의 전망에 늘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늘’이라는 용어가 판소리의 이면을 함축하는 의미로 사용된 개념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그림자보다는 그늘이 정서적, 윤리적 함축이 빼어나다. 그림자는 나와 분리된 외형, 자아의 이면인 데 비해 그늘은 내가 포괄되는 내면적 공간이랄 수 있다. 즉 그림자가 나로부터 생기는 ‘타자화된 이면’이라면 그늘은 내가 들어가 사유하는 ‘나의 내면의 공간’이다. 그림자에 비해 그늘이 음양론적이며 동양 철학적이다. 동주의 흰 그림자는 민족과 자아의 윤리적 순결성을 지키려는 시인의 서정적 고뇌이며 ‘흰 것’은 빛과 이상을 상징했다. 지하의 흰그늘은 죽음과 절망의 바닥에서 피어난 존재론적 반성이며 ‘흰 것’은 침묵과 어둠을 내포한 극한의 생명성을 가리킨다. 한국 미학사를 상고컨대 동주의 흰 그림자에서 지하의 흰 그늘로 진화한 것이다. 그렇기에 김지하는 흰 그늘을 통해 생명철학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내 사숙의 항로가 동주와 지하를 거쳐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흰 그늘의 내력이 이러하니 어찌 북풍한설 비바람이라고 망설이겠는가. 애오라지 한국 미학의 다음 항구를 향해 포월(匍越)의 돛을 올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