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담배소송
김성수 논설위원
2025년 05월 20일(화) 13:53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첫 소송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1954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한 개인 흡연자가 폐암 진단을 받고 “담배 때문에 병들었다”며 법정에 섰다. 하지만 법정은 냉정했다. 의학적 증거는 부족했고, 흡연과 질병 사이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기업의 방어 논리는 강했고, 소송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흡연은 당신의 선택”이라는 말 앞에서 피해자의 진실은 늘 뒤로 밀렸다. 그로부터 40년, 흡연자들은 번번이 졌고, 담배회사는 승소를 거듭했다.

1994년, 미시시피주가 움직였다. 처음으로 주정부가 담배로 인한 건강보험 지출액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뒤이어 49개 주 정부와 시정부, 건강보험조합이 잇따라 소송을 냈고, 마침내 1998년. 미국 46개 주는 필립모리스, R.J.레이놀드 등 메이저 담배회사들로부터 약 330조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합의를 받아냈다. ‘그들은 알고도 침묵했다’는 배심원의 판단은, 세계 공익소송사의 전환점이 됐다.

그리고 지금, 한국 법정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 피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4년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흡연 질병 치료비 533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루 한 갑, 20년 이상 담배를 피운 폐암 환자 3465명에게 지급된 건강보험 급여액이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담배회사 손을 들어줬다. 인과관계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 공단은 연세대 지선하 교수팀과 함께 13만명 이상을 10년 넘게 추적한 연구를 제출했다. 결과는 분명하다. 30년 이상 흡연자의 소세포폐암 발병률은 비흡연자 대비 54.49배. 흡연의 질병 기여도는 98.2%. 유전 요인 기여도는 고작 0.7%에 불과했다.

이제 과학은 기업을 옹호하지 않는다. 미국과 캐나다 법정이 그랬듯, 인과관계는 입증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사회 여론도 공단에 힘을 싣고 있다. 26개 암 학회, 17개 의료단체가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고, 시민 5만 명 이상이 서명 운동에 참여했다.

흡연으로 인한 진료비는 2021년 기준 연간 3조 5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흡연자가 내는 건강증진부담금은 한 갑당 841원에 불과하다. 비흡연자 역시 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 비용을 함께 떠안고 있다.

12년간 이어진 이 싸움은 단지 한 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아니다. 공공의 건강과 소비자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선언이다. 오는 5월 22일, 최종변론이 열리며 판결을 앞둔 지금, 법이 내릴 판단에 모든 시선이 쏠리고 있다.
김성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