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의 ‘나눔 톡톡’>인도주의와 위대한 생명나눔
김동수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 원장
2025년 05월 20일(화) 17:45 |
![]() 김동수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 원장 |
1980년 5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로 수많은 시민이 피를 흘렸다. 도청과 가장 가까운 병원이었던 광주적십자병원은 순식간에 부상자들로 넘쳤다.
상상하건대 열 개 남짓한 응급실 병상은 금세 포화 상태가 되었고, 복도까지 부상자와 시민들로 가득 찼다. 적십자 의료진과 직원들은 열흘간 쉼 없이 시민이나 군인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헌신했다.
“혈액이 부족하다”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시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발적으로 헌혈에 나섰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팔을 걷어붙인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위대한 생명나눔이자 인도주의의 실천이었다.
이 장면은 마치 1859년 이탈리아 솔페리노 전투 현장을 연상케 한다. 마을 교회로 몰려든 부상자들을 위해 주민들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치료와 간호에 나섰고, 이것이 훗날 국제적십자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인도주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조건 없는 나눔, 사랑, 그리고 연대다.
광주에서도 그 정신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주먹밥과 헌혈로 상징되는 시민들의 인도주의 활동은 그 자체로 숭고한 역사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옛 광주적십자병원은 사적지로 지정되었음에도 오랫동안 조명을 받지 못했다. 방문객들의 발걸음은 주로 5·18민주광장에 머물렀고, 병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소년이 온다’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이 소설의 실제 배경지를 도는 ‘소년 버스’가 운행되고, 옛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한 역사 탐방길도 조성되었다. 45주년을 맞아 많은 이들이 옛 광주적십자병원을 찾아, 그날의 기억과 마주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 근무한 기억이 있는 필자도 30년 만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 순회하는 동안 선배 직원들에게서 들은 당시의 참상과 긴장감이 병원 곳곳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잊지 말아야 할 장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5·18 45주년 맞는 지금이야말로 5·18 인도주의 정신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일상 속 살아있는 역사로 만들어가야 할 때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첫째, 임시 개방에 그치지 않고 리모델링 전까지 병원 앞마당에 대형 전시 공간을 설치해 사진과 영상으로 그날을 재현하자.
둘째, ‘소년 버스’ 운행을 지속하고, 충장로 헌혈의집을 코스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병원 견학 후 헌혈의집을 찾는 시민이 많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이다. 1980년 오월, 광주시민이 보여준 나눔과 연대, 인도주의 정신을 청소년과 시민에게 계승시키기 위해 지자체, 교육청, 대학, 기업의 협력이 절실하다. 우리 혈액원도 매월 충장로 헌혈의집에서 정기강좌를 열어 그 정신을 나눌 계획이다.
5·18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나 박제된 사적지로 남아서는 안 된다. ‘소년이 온다’의 배경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교육과 견학, 나눔의 실천이 이어질 때, 그날의 인도주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