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 대가 최인선, 고향 광주서 대규모 개인전
내달 25일까지 GIST 오룡아트홀
'회화의 고백' 주제로 27점 전시
대작 중심…추상회화 정수 선봬
'생명력' 가득, 압도적 경험 선사
미니멀부터 다채로운 색면까지
2025년 06월 08일(일) 17:14
최인선 개인전 ‘회화의 고백’이 열리고 있는 광주과학기술원(GIST) 오룡아트홀 전경. GIST 제공
“회화는 생각의 어부가 돼 사고의 조각을 건져 올리는 일이다. 이번 전시는 거짓 없이 화폭 앞에 진실하고자 했던 모든 생각의 서사이자 표현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최인선 작가가 고향 광주에서 15년 만에 개인전을 갖는 데 대해 이같은 감회를 밝혔다. 다음달 25일까지 광주과학기술원(GIST) 오룡아트홀에서 열리는 최인선 개인전 ‘회화의 고백’에서는 200호 크기의 대형 추상회화 작품들을 중심으로 총 27점이 전시돼 관람객에게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최 작가는 광주에서 태어나 인성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현재는 홍익대학교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호남 출신이 홍익대 회화과 교수 자리를 맡은 건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진 고 김환기 화백이 1960년대 재직한 이후 그가 처음이다.

정용화 GIST 부총장의 제안으로 성사된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고향이 주는 따스한 기운 속에서 회화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마음껏 펼친다.

역동적인 스펙트럼을 지닌 그의 작품 세계는 ‘생명력’을 바탕으로, 늘 새로운 것을 향한 시도와 이전과는 다른 차이를 만들어 내는 창작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생성한다.

이번 초대전에는 최 작가의 1990년대 말 무채색을 중심으로 한 미니멀 회화의 맥을 잇는 한편, 그 위에 새롭게 구축된 추상 회화의 확장된 가능성이 중심에 선다.

최인선 작가가 대형 회화 작품을 작업하는 모습.
그의 작품은 사고, 감정, 감각, 직관 등 인간 정신의 다양한 기제가 하나의 화면에 응축된 결과물이다. 생각이 예술이 되고, 회화가 그의 몸이 되어 버린 일상에서, 치열한 작가주의 정신으로 드러난 작품들을 통해 우리 안에 잠재한 존재의 심오한 무게를 성찰하게 만든다.

특히 그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은 미술관 2층에 전시된 붉은 나뭇잎을 그린 소품은 이러한 철학을 다시금 일깨워준 에피소드가 담겼다. “완성된 줄 알았던 그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흰 평붓의 짧은 터치로 그 바람을 캔버스에 안착시켰다. 회화는 늘 그림 밖의 세계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회화를 단순한 형상 표현이 아닌, ‘사고를 조각하는 행위’로 정의하며, 회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본질적 질문에 천착한다. 가시적인 세계를 넘어서 비가시적 세계와의 관계를 해석하는 작업인 셈이다.

화폭에 대형 추상화를 그릴 때 온도, 습도, 바람 등 환경 전체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어떤 사조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이러한 태도는 작업의 자유로움과 독자성에서 드러난다. “그림이 되지 않게 그려 그림임을 증명하는 엉뚱하고 어색한 행위 속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나로부터 새것을 만들어내려 합니다.” 최 작가는 예술가로서의 진실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캔버스 앞에 숨김없고 거짓 없는 오롯한 자기표현만이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집념이다.

최인선 작가.
최 작가는 1990년대 초 대한민국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한국일보 청년작가 초대전에서 연이어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미니멀 추상 작업으로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킨 작가의 ‘겨울에 생산된 흰색’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며 한국 미니멀 아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작가의 작업은 무채색 중심의 미니멀 추상에서 벗어나 ‘색면의 시대’를 거쳐, 다채로운 색채와 현대적 큐비즘의 면모를 보이는 ‘미술관실내’ 시리즈로 확장됐다.

그의 작품은 뉴욕 소더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낙찰되며 국제적 인지도를 얻게 된다. 강렬한 필획의 컬러풀한 색채와 형상을 통해 격정적인 작업을 선보이며, 마치 작가로서의 한계를 실험하듯 열정적인 창작의 세계를 펼쳐 가고 있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활동 외에도 2018년 사단법인 인카네이션 문화예술재단을 설립, 매년 청년작가 7명 내외를 선정해 예술상을 수여하고 예술장학금 및 창작지원금(1명당 1000만원)을 후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17억원의 사재를 들여 어린이·노약자 의료비에도 기여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펼쳐 왔다.

또한 강원도 춘천 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는 장애 작가들을 위한 정기 워크숍을 운영해 예술을 통한 사회적 기여를 실천하고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다음달 25일까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으며, 다음달 4일에는 작가와의 만남 행사도 예정돼 있다. 전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전화(062-715-2622)로 문의하면 된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