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65>각기 다른 사유와 존재가 직조된 풍경들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2025년 06월 08일(일) 17:29 |
![]() 강서경 작 ‘그랜드마더 타워’. 이선 제공 |
특히 한국의 전통적 개념과 서사적 요소를 현대적 시점으로 재해석하여, ‘개인’과 ‘공동체’, ‘사회적 관계’에 대한 성찰을 지속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동양화를 전공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그는 교육자이자 작자로서 제자들과 동료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
‘작가는 어떻게 되어 지고,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가?’에 대한 질문을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전통미와 현대미를 잘 조화한 독자적인 기법으로 세계에서 주목받으며, 다양한 장르 작업의 확장적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남겼다. 작품을 이루는 주된 소재는 전통 돗자리인 화문석. 경기 강화도를 수시로 오가며 장인들과 함께 화문석에 색을 입히고 엮었다. 고인은 일상과 신체, 기억, 한국적 전통양식에 기반해 시공간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대표작 ‘그랜드마더 타워(Grandmother Tower)’는 가족 서사를 바탕으로 전통과 공동체 정신을 현대적 미감으로 직조해 낸 작품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조선시대의 정간보(井間譜) 기호를 해석해 낸 ‘정井’, 춘앵무의 춤사위를 공간적 구조로 변환한 ‘자리’, 음성과 시간을 시각적 모티프로 변형한 ‘모라’ 등의 연작을 통해, 고유한 회화와 설치적 조형 세계를 선보였다.
![]() 강서경 작 ‘그랜드마더 타워’. 이선 제공 |
작가는 할머니와 보낸 시간들을 떠올렸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풍경을 나의 작품으로 엮어 남기고 싶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늘 작가에게 “현재를 잘 살고, 멋지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고, 할머니가 베풀어주신 사랑과 많은 이야기들을 혼신을 담아 ‘그랜드마더 타워’ 작품으로 구현했다. 2018년부터 ‘그랜드마더 타워’에 토우를 달아 ‘토우(tow)는 의지’라고 표현하며 토우를 부착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랜드마더 타워’가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연로하신 할머니의 보행기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 시작한 것으로 어느 날 할머니가 계단을 오를 때 발가락을 다치는 것을 보고 만들게 되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로 안 넘어지는 하나의 구조물을 이어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구축하는 시공간에 대한 시각적 논리의 원형으로 기능하기도 하는 본 연작은 작가가 할머니의 초상을 조각으로 구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사랑했던 존재(할머니의 말년의 모습)를 표현한 것으로 혼자서는 바로 설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 가는 연약한 존재와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했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금속 골조와 실, 가죽 등을 이용해 조각으로 연결하여 나타냈던 것이다. 작가는 인간의 연약함 속 강인함을 기리듯 가느다란 골조 위에 색색의 실을 촘촘히 감았고, 그렇게 서로를 의지해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해 나간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의 관계에 기대어 힘겨운 삶을 유지해 나가는 우리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을 닮았다.
작가는 무언가에 기대어 구부정할지언정 무너지지 않고 버티게 해주는 힘의 근원에 매료되어 그 힘의 축을 찾아 가냘픈 뼈대들을 조심스럽게 쌓아 올렸다.
![]() 강서경 작 ‘버들 북 꾀꼬리’. 이선 제공 |
![]() 강서경 작 ‘산-가을’. 이선 제공 |
![]() 강서경 작 ‘산-여름’. 이선 제공 |
작가는 그렇게 전시 제목의 은유처럼 봄날의 병마로부터 자유로운 꾀꼬리가 되어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혼자서만은 살아갈 수 없으며, 궁극에는 관계 맺음으로 귀결되는 인간의 삶을 사유하면서 가느다란 골조 위에 색색의 실을 촘촘히 감아, 인간의 연약함 속 강인함을 기리듯 반복적이고도 수행적 손길이 담긴 작품들을 남겼다.
불온전한 세상에서 각기 다른 사유와 존재가 불균형과 갈등을 끊임없이 조율하며 온전한 서로를 이뤄가는 풍경을 바랐던 섬세하고도 따뜻한 강서경 작가의 시선과 손길이 몹시 그리워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