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출신 69세 한영석씨, 20년 투병 끝 생명 나눔 실천
밝은 미소로 힘든 병마와 싸워내
폐장 기증으로 또 다른 생명 살려
폐장 기증으로 또 다른 생명 살려
2025년 07월 13일(일) 15:01 |
![]() 기증자 한영석 씨.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연합뉴스 |
13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한영석(69)씨는 지난달 8일, 평소처럼 교회 예배를 마친 뒤 귀가하던 중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도착 당시 이미 뇌압이 높아 기본적인 검사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의료진은 회복이 불가능한 뇌사 상태임을 설명했고, 가족들은 깊은 고민 끝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고인의 폐는 다음 날인 10일,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던 환자에게 이식돼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됐다.
한씨의 선택은 단순한 의료적 행위를 넘어 생명의 가치를 나누는 숭고한 결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955년 전남 해남에서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한 씨는 음악, 영화, 테니스 등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즐기던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두 아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영화관과 피자가게를 함께 다니는 다정한 아버지였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신장 기능 저하로 인해 40대 후반부터 투석 치료를 시작했지만, 그는 힘든 투병 속에서도 늘 밝은 얼굴로 병원을 찾았다.
한 간호사는 “웬만한 투석 환자들은 힘들어서 말수도 적은데, 한씨는 늘 활기차게 인사하고 주변을 격려했다. 그런 긍정적인 태도는 정말 드물다”고 회상했다.
한씨의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지만 결국 함께 가지 못한 것이 너무 마음에 남는다”며 “아버지처럼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한편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한 씨의 장기기증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다시 일깨워주는 상징적 사례”라며 “고인의 뜻이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신장 투석이라는 고된 여정을 웃음으로 견뎌낸 한씨. 그의 마지막 결정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이 됐고, 남은 이들에게는 따뜻한 용기와 위로가 됐다.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