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금석>아파트 혁명3-한국 고층아파트, 승강기 발전과 함께했다
서금석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광주시회장
2025년 07월 28일(월) 10:28
서금석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광주시회
한국의 고층아파트 성장은 승강기 발전 덕이 컸다. 승강기 이동방식과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만약 승강기가 아니었으면 고층 건물은 상상도 힘들다. 수직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그간의 승강기에서 수평 이동하는 승강기가 선을 보였다. 아직 실용화되지 못했지만 로프가 없는 자기부상 승강기도 생산되었다. 그렇다면 곡선으로 움직이는 승강기도 등장할 것이다. 당연히 승강기를 이용해, 고층아파트 우리 집 창밖에 승용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0년 전에 경험하지 못했지만, SF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 지금 경험하지 못한 일이 10년 후에는 실현될 수 있다.

건물의 고층화를 견인했던 승강기는 이미 속도의 벽을 무너트렸다. 승강기 생산업체 중, 충주에 본사를 둔 현대엘리베이터 현지 공장에 최근 250m 높이의 테스트 타워가 설치되었다. 여기에서 승강기는 분속 최대 1260m로 오르내린다. 다시 말해 250m 높이를 단 12초도 안 돼 이동할 수 있는 승강기를 시험하고 있다. 현재 서울 롯데타워의 승강기가 분속 600m이고 보면, 향후 승강기 속도 향상은 초고층 건물 출현을 미리 준비했다고 봐야 한다.

초창기 아파트 건설 붐과 함께 장착된 승강기 속도는 분속이 60m 정도였다. 그리고 나중에 90m가 되었다가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는 105m 속도를 내고 있다. 아파트 승강기 속도가 서서히 변천을 거듭하다 보니 여기에서 오랫동안 사는 사람들은 속도를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신규로 지어진 아파트에 설치된 승강기는 이제 180m가 되었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놀랍게도 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승강기 속도는 시대별 고층아파트 탄생으로 거듭 진화했다. 1970년대 강남아파트 붐, 또 1986년 아세안게임과 88올림픽 영향으로 1980년대 다시 아파트 붐이 일었다. 1990년대 초 200만호 건설과 함께 불었던 아파트 건설 바람은 한국의 아파트의 양적 변화를 가져왔다. 1997년 말 IMF 사태는 많은 건설사를 무너트렸지만, 역설적으로 IMF 극복은 1999년 이후 중소형 건설사들의 아파트 건설 도약 덕분이었다. 그 시절 중소형 건설사들은 지금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IMF 사태를 조기에 벗어난 이유는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이기도 했지만, 아파트 건설이 가져다준 고용 창출과 부동산 거래를 통한 활발한 현금 흐름에 따른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아파트 건설은 새로운 삶의 질적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아파트는 초고층화되었다. 세련된 아파트 디자인은 더 높은 마천루를 선보였다. 아파트 입구는 웅장한 조형물 형태인 대문이 들어섰다. 문주(門柱)라고 하는데, 마치 사찰 일주문(一柱門)의 현대판 같다. 우리네 전통의 마을 입구를 들어서면 동네를 알리는 ‘선돌’이 아파트에서 살아남았다. 아파트가 바라보는 천편일률적인 남향에서 벗어나 동서 방향으로 트인 것도 이때부터였다. 단지 내 조경 시설은 바깥 자연을 담기 시작했다. 이 변화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하늘 아래 마천루 아파트는 단지를 더욱 고급스럽게 다듬었다.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다보는 광경이 아름다워야 했다. 더 높이 높이 끌어 올린 승강기 공이 크다.

무거운 물건을 좀 쉽게 올리는 데 쓰였던 초창기 도르래 개발은 혁명적이었다. 가끔은 사람도 올라탔을 수도 있었겠지만,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철학자 겸 발명가 아르키메데스의 의도는 깊은 우물의 물을 길어 올릴 때 사용하고 싶었다. 그는 두레박의 원리로 도르래를 만들어 물건을 오르내리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 주었다. 주로 건축물을 짓는 데 쓰였다. 조선시대 수원 화성을 쌓는 데 사용한, 정약용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거중기도 그런 용도였다. 모두 두레박이나 도르래의 원리이다.

일설에 나폴레옹이 황후가 왕궁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애처로워 황후의 의자를 밧줄에 매달아 도르래를 이용해 위아래층을 오르내리게 했다고 한다. 당연히 안전장치는 없었기 때문에 위험했다. 밧줄을 이용한 초보적인 승강기는 이후 미국의 발명가 엘리사 그레이브 오티스에 의해 추락 방지 장치가 개발되면서 획기적인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는 1854년 뉴욕 박람회에서 이 제품을 발표했고, 3년 뒤 5층짜리 뉴욕 백화점에 이 승강 장치를 설치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승강기는 일제에 의해 조선이 병탄됐던 그해 1910년에 일본인 다쯔노 긴고(辰野金吾) 박사가 조선은행에 설치한 화폐 운반용 수압식 승강기와 요리 운반용 리프트로 알려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115년 전 일이다. 1914년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인 철도호텔에 처음으로 승객용 승강기가 설치됐다고 한다. 1941년 서울 화신백화점에 우리나라 최초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됐다.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식 바닥 난방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여기에 국내 대우건설과 우림건설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형 아파트가 수출되고 있다. 한국의 건설사들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아랍권까지 건설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한복판에 세워질 초대형 미래형 휴양도시 ‘네옴시티’ 건설에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뛰어들었다. 국내 기술집약형 아파트를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한국의 고층아파트를 견인했던 승강기도 여기에 장착되어 세계 사람들이 타고 다닐 것이다. 승강기의 진화는 멈추지 않는다. 아파트의 고층화와 다변화는 승강기와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