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게 없다"…식품사막 오지마을 누비는 ‘푸드트럭
영암농협·거금도농협 2곳 운영
공산품·신선품·현금인출기 갖춰
매일 장터운영…사전주문·배달
"이젠 은행도 시장도 멀지않아"
2025년 07월 28일(월) 15:06
고흥 거금도농협(조합장 추부행)은 지난 2020년 부터 운영중인 ‘찾아가는 화목장터’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물품을 구입하고 있다. 고흥 거금도농협 제공
고령화와 교통불편, 인근에 식료품 가게가 없는 일명 ‘식품 사막’이라 불리는 전남 오지마을 주민들에게 하나로마트 푸드트럭은 ‘찾아오는 시장’이자 ‘생활 해결사’다. 생필품은 물론 신선 식재료, 공과금 납부까지 가능한 푸드트럭은 거동이 불편한 고령인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영양공급원이자 사회적 고립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농협의 푸드트럭은 매년 적자로 운영되다 보니 재정부담을 해소할 지원책이 시급한데다 농협 하나로마트의 이동식 마켓이다 보니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 제안 등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거동불편 어르신 집앞까지…‘기찬장터’ 종행무진

“몇 주째 허리가 아파 읍내를 못 나갔는데 장터가 마을까지 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24일 오전 영암군 영암읍 녹암마을회관 앞. ‘동네방네기찬장터’라 적힌 트럭이 마을 안길을 따라 들어서자 어르신들이 하나둘 마당으로 나왔다. 트럭 앞은 금세 북적였다. 누군가는 생고기를, 누군가는 생수와 화장지를, 또 누군가는 트럭 안 ATM기에 공과금을 납부했다.

영암농협(조합장 박도상)은 지난 2022년 4월부터 이동식 하나로마트 ‘기찬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휴일을 제외하고 하루 3개 마을, 주 5일 총 23개 마을을 순회하며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해당 마을은 읍·면소재지와 떨어져 슈퍼나 식품점이 전무한 오지마을 위주다.

푸드트럭 내부는 3.5톤 트럭을 개조해 만든 이동매장으로, 생수·빗자루 같은 공산품은 물론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까지 총 100여 종이 실려 있다. 트럭에 설치된 냉장고 안에는 생고기, 달걀, 유제품 등이 가득하며, 생필품은 마을 부녀회장이 각 세대로 배달해준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트럭 내 ATM기 설치다. 고령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과금 납부, 입·출금, 이체 등 금융서비스까지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젠 은행도, 시장도 멀지 않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영암농협에 따르면 기찬장터는 2024년 기준 약 5800만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차량 유지비와 인건비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수익은 없다. 박도상 조합장은 “기찬장터는 수익보다는 지역민 복지 증진을 위한 이동 서비스”라며 “농협의 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장날 기다릴 필요 없는 ‘화목장터’

같은 날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회관에도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찾아가는 화목장터’라는 문구가 적힌 트럭이 정차하자 경쾌한 결제 알람음이 마을회관을 가득 메웠다. 트럭 앞에서는 커피, 음료수, 쌀, 세제 등이 손수레에 실려 어르신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거금도농협(조합장 추부행)은 2020년부터 화목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총 35개 마을 중 슈퍼가 없거나 생활물품 접근성이 낮은 23개 마을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 10곳, 목요일 13곳을 순회한다.

화목장터 역시 3.5톤 트럭을 개조해 다양한 식료품을 실었다. 냉장고에는 생선, 냉동육류 등이 구비돼 있으며, 조미료·유제품·빵류 등 하나로마트 전용상품도 판매된다. 사전 주문도 가능해 “필요한 걸 미리 말해두면 다음 장터날 가져다준다”는 입소문도 나 있다.

트럭에는 현금인출기 설치도 검토되고 있으며, 어르신 편의를 위한 상품 확대와 운영일 확대도 계획 중이다. 추부행 조합장은 “이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손에 장바구니를 쥐어드린다는 사명감으로 장터를 열고 있다”며 “앞으로도 품목 다양화와 서비스 고도화를 통해 장터를 진화시키겠다”고 밝혔다.

2022년 1758만원을 기록한 화목장터 매출은 2024년 884만7000원으로 줄었지만, 조합 측은 “수익보다 고령화된 농촌의 삶의 질 향상이 목표”라는 입장이다.

2022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영암농협(조합장 박도상) ‘동네방네기찬장터’. 기찬장터에 현금인출기가 설치돼 있어 금융 업무도 가능하다.
●식품사막 해소 …정책 사각 여전

전남농협에 따르면 전국 농촌마을 10곳 중 7곳은 식료품점이 없다. 이른바 ‘식품사막화’ 현상이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비중이 높은 전남에서는 장을 보려면 몇 시간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다.

일본은 반경 500m 내 식료품점이 없는 곳에 사는 노인을 ‘장보기 약자’로, 미국은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반경 800m 내 식품 소매점에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을 ‘식품사막’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영암·고흥 대부분의 마을이 식품사막에 해당한다.

이동식 하나로마트는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고 고령자 삶의 편의를 높이는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식료품 접근뿐 아니라 금융·배달·상담 기능까지 갖춘 다기능 복합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푸드트럭 장터는 정작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처에서 제외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상품권 사용처는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농협이 운영하는 이동식 하나로마트는 여전히 해당되지 않는다.

전남농협 관계자는 “농협은 일반 대기업과 달리 이익을 농민에게 환원하는 협동조합”이라며 “행안부의 소비쿠폰 정책이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못한 채 경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김민균 전남농협 경제지원단 과장은 “운영비와 유지보수비, 인건비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조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