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첫 원정경기 유니폼 기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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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박물관을 만들자
"KIA 타이거즈 첫 원정경기 유니폼 기증합니다"
최해식 전남일보 객원 편집위원 동참
  • 입력 : 2014. 01.17(금) 00:00
최해식 전 해태 포수가 지난 14일 광주 운남동 한 식당에서 선수시절 입었던 해태 유니폼을 입고 은퇴 기념 글러브를 들어 보이고 있다.
해태ㆍKIA 시절 유니폼
은퇴기념 받은 글러브도

96ㆍ97년 해태 우승 당시
주전 포수로 2연패 기여

역대 포스트 시즌 사상
퇴장 1호 선수 기록도


"타이거즈의 추억이 담긴 글러브와 유니폼을 광주야구박물관에 기증하게 돼 매우 기쁩니다."

1990년대 중후반 해태왕조의 안방마님으로 한국 야구계의 '야지'로 불렸던 최해식 전남일보 객원편집위원이 본보와 KIA타이거즈가 함께 펼치고 있는 야구박물관 기증 캠페인에 동참했다. '야지'는 일본말로 야유를 뜻한다. 야구계에선 포수가 타자를 괴롭히려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것을 '야지'라고 한다.

최 위원은 지난 2001년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면서 기념으로 받은 글러브와 선수 시절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던 해태와 KIA 유니폼을 지난 14일 전남일보사에 기증했다.

최 위원은 "내가 간직하고 있던 물품이 야구박물관에 전시될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선뜻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골든글러브나 최우수선수상(MVP) 트로피는 아니어도 포수로서 자긍심을 후배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애장품을 내놓기로 했다"고 기증 배경을 설명했다.

<그림1중앙>
●최해식 기증 물품은

최 위원이 기증하는 물품은 지난 1994년 6월부터 지난 2001년까지 해태 왕조의 주전 포수로 활약하다 은퇴한 이후 받은 기념 글러브와 해태 홈 유니폼, KIA 창단 첫 해 원정 유니폼(2001년 8월10일 잠실 LG전) 등이다.

1990년 창단된 쌍방울 레이더스에 1차 1번 지명으로 프로에 데뷔한 최 위원은 쌍방울에서 별다른 활약이 없다가 1994년 6월 장채근(홍익대 감독)과 트레이드돼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야구 인생의 꽃을 피웠다. 이적 첫 해에는 12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이듬해인 1995년부터 해태 주전포수 자리를 꿰찼고, 해태의 1996년과 1997년 한국시리즈 2연패 주역이었다.

그는 포수로서는 최상급 활약을 펼쳤다.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그의 타율은 1996년 0.188, 1997년 0.250을 기록했다. 통산 타율은 0.217로 저조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공배합과 블로킹, 도루 저지 능력은 탁월했다. 1996년 그의 도루저지율은 0.414나 됐고, 통산 도루저지율은 0.340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500경기 이상 뛴 포수 가운데 8위이고, 타이거즈 역대 2위(1위는 김무종 0.341)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특히 그의 미트질과 송구 능력은 당시 리그에서도 정평이 났다. 심판들은 최해식의 미트 질을 가리켜 '볼도 스트라이크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평했을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또 포수가 미트에서 볼을 빼 2루수나 유격수에게 전달하는 송구 시간은 1.6초로 한국 프로야구 사상 가장 빨랐다는 평도 얻었다. SK의 조인성은 1.7초이고 삼성 진갑용은 2.0초다.

최해식은 2001년 해태의 마지막 시즌과 KIA 창단 첫 해까지 선수로 활약하다 어깨 퇴행성 관절염 부상으로 그해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다. 1995년부터 6시즌 동안 거의 모든 경기를 소화할 정도 무리한 경기 출장 탓에 어깨가 엉망이 돼 포수로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은퇴 기념 글러브와 유니폼은 해태와 KIA에서 8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던 모든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그의 애장품이었다.

●포스트시즌 퇴장 1호의 추억

최 위원에게 1996년 10월 2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해태와 현대의 한국시리즈 6차전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볼 판정에 항의를 하다 김호인 주심으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아 역대 포스트시즌 퇴장 1호의 불명예를 안은 것.

이날 사건은 해태가 3-2로 쫓기던 8회말 현대공격 1사 2루 이숭용의 타석때 발생했다. 해태의 3번째 투수 이대진은 볼카운트 0-1에서 한복판에 떨어지는 커브를 던졌으나 김호인 주심은 볼로 판정했다. 이에 포수 최해식은 마스크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격렬한 항의를 벌였고 주심은 곧바로 퇴장을 선언했다.

퇴장이 선언되자 해태 코칭스태프가 몰려나와 다시 항의를 했고 일부 관중들마저 운동장에 난입하는 사태가 발생, 10여분간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어 속개된 경기에서 이숭용이 볼넷으로 출루해 1사 1,2루가 됐고, 다음 타자 김경기가 병살타로 물러났다. 해태는 9회초에 2점을 달아나 5-2를 만든 후 이대진이 9회말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해태의 8번째 우승을 일궈냈다.

최해식의 퇴장이 현대로 기울던 경기 흐름을 해태 쪽으로 바꿔놓은 셈이 된 것이다.

최 위원은 "1996년 해태의 전력도 강했지만 부자구단 현대의 전력은 우리보다 월등했다. 게다가 시즌 내내 현대는 심판 덕을 많이 본 팀이었다"며 "3승2패로 앞선 상황에서 6차전을 맞았는데, 4회말 선발 이강철이 던진 공 9개를 연속 볼 판정하는 등 매회 납득할 수 없는 판정이 계속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원래 이대진은 7차전 선발 예정이었는데 투수가 바닥이 나 이날 구원 등판하게 됐다. 6차전을 지면 우승을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8회말에도 한 가운데 들어온 공이 볼 판정되자 '도대체 볼 카운트를 몇 개나 장난치는 거냐'고 따졌더니 퇴장을 선언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퇴장 후 혼자 라커룸에서 가슴을 졸이며 경기 결과를 지켜보다가 승리 소식을 듣고 한동안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기증운동 적극 당부

최 위원은 야구박물관 조성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그는 "광주를 연고로 하는 타이거즈는 10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7차례의 정규리그 우승을 한 한국 최고의 명문구단이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광주에 야구박물관이 조성돼 30여년의 타이거즈 역사와 추억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하니 설레고 기대도 크다"고 밝혔다.

그는 야구 기념물품 기증에 많은 시민들과 타이거즈맨들의 적극적인 동참도 당부했다. 최 위원은 "야구 기념물품이 자신에겐 소중한 것이겠지만, 집에 갖고 있어봐야 자신만의 추억만 될 뿐이다"며 "야구박물관에 전시되면 혼자만의 추억이 아닌 여러 사람의 추억이 되므로 기념물품 기증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ㆍ사진=최동환 기자 dhchoi@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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