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 파도에 닳은 '검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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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기획
수천년 파도에 닳은 '검은 돌'
… 그들에겐 그냥 돌이었네
묵석 가치 몰라 어민들은 방치
하루 수백명 돌 주으러 섬 찾아
80년대 멍텅구리 배로 새우잡아
새우젓 생산 연간 6억 '부자 섬'
  • 입력 : 2014. 08.01(금) 00:00
과거 하낙월도에는 전국 최고 품질의 \'묵석\'이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알지 못한 주민들에겐 그냥 \'검은돌\'에 불과했다. 지금은 묵석을 찾기 힘들지만 섬에 돌은 여전히 많다. 건물은 물론 담까지 온통 돌로 만들어진 민박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낙월도는 상낙월도와 하낙월도로 분리된 두 개의 섬이면서 하나인 섬이다. 약 500m 정도의 좁은 수로를 끼고 두 섬은 물이 빠지면 길이 생기고, 물이 들어오면 바닷물로 뒤덮여 사라져 하나이면서 둘이었다. 1989년도에 두 섬 사이에 방조제가 놓여져 차들이 다니며 하나의 섬이 되었다. 상낙월도는 육지 쪽에 붙어있고 하낙월도는 아래쪽에 위치해 주민들은 하낙월도를 '아랫섬'이라고 부른다. 서해의 끝에 위치하기 때문에 육지 쪽에서 보면 마치 달이 섬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예전에는 일명 진달이섬 또는 진월도라 불려왔는데 이 명칭은 섬 자체가 떨어진 달로 이뤄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영광군 염산 향화도에서 출발한 배는 마지막으로 하낙월도에 닿는다. 잘 만들어진 선착장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면 입구에 정자 쉼터와 함께 마을표지석이 있다. '새우의 섬 하낙월도' 라고 새겨져 있다. 표지석 맨 위에 새겨진 새우란 글자 바로 위에 등이 굽은 새우 그림이 보는 이에게 웃음을 자아냈다.

새우잡이 '멍텅구리 배'

하낙월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새우잡이 어선인 일명 '멍텅구리 배'이다.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무동력선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백 년 세월 동안 서해안을 점령했던 이 배는 동력선이 끌어주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배다. 멍텅구리 배는 조류가 빠른 곳에 닻을 내리고 오랫동안 같은 장소에 머물며 새우를 잡는다. 거센 물살과 높은 파도에서 배를 고정시켜야 하기 때문에 큰 닻을 내린다. 배의 길이가 15m 정도인데 닻은 8m 길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큰 닻일 것이다. 새우는 스스로 물길을 헤쳐 나가며 이동하지 못하고 조류에 따라 이동한다. 이때 새우가 지나가는 길목에 이 거대한 닻을 내리고 모기장처럼 촘촘한 그물을 하루 네 번 들어 올려서 새우를 잡는다. 고된 노동이다.

50~60년 전 두 섬을 합해 멍텅구리 배가 모두 130여 척에 달했을때 낙월도는 흥청거렸다. 1980년대 후반에는 여기서 생산되는 새우젓이 연간 6억여 원으로 '부자 섬'이었다.

이 배가 조업할 당시에는 인신매매가 성행하기도 했다. 멍텅구리 배의 조업은 고되기 때문에 어부 구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인생의 쓴맛을 본 전국의 사내들이 '인생막장'으로 생각하고 절망 속에 희망을 안고 찾아왔다. 조금 과장되게 알려졌지만 종종 어리숙한 자들을 소개소를 통해 데려다가 돈도 제대로 주지 않고 일을 시키다가 발각돼 사회문제가 되곤 했다. 하낙월도의 새우잡이는 1987년 여름 대형 태풍에 KO패 당하고 말았다. 빗나간 기상 예보로 1987년 7월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 '셀마'로 이 섬의 멍텅구리 배 6척이 부서져 선원 27명이 수장을 당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정부는 안전문제와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연근해 어업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멍텅구리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현재 목포의 국립해양유물전시관과 강화도의 강화역사관 등에 멍텅구리배가 전시되어 있다.

아름다운 돌 '묵석'의 명산지
<그림1중앙>
하낙월도에서 멍텅구리 배의 새우잡이 다음으로 유명한 것은 수석인 '묵석(墨石)'이다. 이 섬은 전국에서 이름난 묵석의 명산지로 알려졌다. 석질이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강해서 묵석 애호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1970년대 초반에 수석 붐이 일어나 이곳 하낙월도를 요란하게 했다. 수천년 동안 서해의 높은 파도에 시달린 검은 돌들이 무수히 널려 있었는데 그걸 줍겠다고 전국에서 하루에도 수 백명이 몰려들었다.

낙월도 사람들은 묵석에 대한 개념이 없을 정도로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도회지 사람들이 채취를 하는 것을 도와주고 방치했다. 찾아오는 친구나 친척들에게 선물로 묵석을 한 두개 나누어 줄뿐 팔아서 이익을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바닷가에 널려 있는 수많은 묵석은 그냥 바닷가의 검은돌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낙월도 사람들은 묵석에 대해 무지했었고, 멍텅구리 배에서 새우를 잡아 풍족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묵석의 가치를 몰랐던 것 같다.

이제 낙월도 사람들은 묵석을 좋아하고 채취에도 관심이 많지만 예전처럼 묵석을 찾을 수 없다. 만약 낙월도에서 수석을 찾는 이들이 있다면, 바닷가에 가지 말고 동네 돌아다니며 화단이나 돌담에 있는 묵석을 찾는 편이 빠를 것이라고 어느 주민이 귀뜸한다. 동네 안엔 온통 돌로 만들어진 집이 있다. 어느 민박집인데 개집도 돌로 만들어졌고 슈퍼도 돌로 만들어진 집이다. 온통 돌천국이다.

물 때 따라 드러나는 '풀등'
<그림2중앙>
낙월도 바다에는 100㏊에 이르는 거대한 모래 등이 물 때를 따라서 드러났다 감추었다를 반복한다. 낙월도 사람들은 주로 풀등이라 부른다. 주로 여름철에 소형선박을 이용해서 가야한다. 이 풀등은 한 때 지주식 김양식을 했던 흔적이 보인다. 오래 전에 김발은 철거됐지만 그때 세웠던 나무 말뚝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풀등은 낙월도 사람들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맛이 많이 난다고 하여 '맛등' 이라고도 불리는데 주변 수산시장에서 맛은 귀한 몸값을 받아낸다. 낙월도 사람들은 멍텅구리 배의 새우잡이가 사양길에 접어들자 물때를 맞추어 '맛등'으로 나간다. 하루벌이로는 큰 수입이 된다. 이곳에서 잡히는 죽합(일명:대맛)은 타지의 것보다 크기가 크며 입맛을 땡기는 맛이 일품이어서 외지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른 종류의 조개들은 별로 없는데 이곳에 조개 종패를 뿌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런 장소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곳으로 학생들의 현장학습장으로 좋다. 물이 빠지고 들어올때 물놀이를 하면 에버랜드의 캐리비안보다도 더 재미있는 곳이 될 것이다. 맛등이 육지처럼 드러나는 횟수는 연간 500회 정도이다. 여름휴가 때 이 맛등에 가려면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사리 때를 맞쳐서 가야 된다. 사리 때 약 5시간 맛등이 신기루처럼 드러난다. 하낙월도 해수욕장에서 여름 피서를 즐기면서 물이 빠진 갯벌에서 머드팩도 가능하다.

이재언 섬 전문 시민기자ㆍ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하낙월도

영광군 낙월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0.86㎢, 해안선 길이 5㎞, 24가구 40명(2014년 기준)이다. 상낙월도 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상낙월도와 연도제(500m)로 연결되어 있다.

하낙월도 가는 길

영광군 염산면 향화도에서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1일 3회 운항된다. 약 1시간2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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