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 된다, 긍정적이고 싶다,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특별기획
된다, 된다, 긍정적이고 싶다,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길 이야기] 남도 이순신길 백의종군로
  • 입력 : 2015. 01.09(금) 00:00
아스라이 구례읍을 뒤로 하고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해가 바뀌면서 어느 때보다 긍정적인 시각이 절실해진다. 이순신 장군이 떠오르는 이유다. 장군은 매사 긍정적이었다. 평소 기쁘다, 다행이다, 해낼 수 있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난중일기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 상황이 녹록치 않았지만 장군은 긍정적인 면을 먼저 봤다.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떠올렸다. 죽기로 싸우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도 같은 의미다.

이루려고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추진하면 이룰 수 있다는 뜻일 게다. 새해를 맞은 우리 모두가 되새겨봐야 할 말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찾아간다. 구례 산동에서 시작되는 남도 이순신길 백의종군로다.

<그림1중앙>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은 1597년 4월1일 시작됐다. 왕명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초를 겪고 의금부에 투옥됐다가 구명운동에 힘입어 백의종군을 명받은 직후였다. 아무런 직위도 없이 평범한 군인으로 전쟁에 참가해서 공을 세우라는 형벌이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의금부에서 풀려나 초계(경남 합천)에 있던 도원수 권율의 진영으로 찾아가는 노정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받기 전까지 4개월 여 동안 걸었던 길이다. 길은 한양에서 충청, 전북을 거쳐 전남땅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전라선 철도의 흐름과 상당부분 궤를 같이 한다.

이순신은 남원에서 밤재를 넘어 구례땅을 밟았다. 마을주민들이 열렬히 환영을 했다.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사람들이 모여 일군 계척마을이었다. 첫 번째 산수유나무로 알려진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가 있는 곳이다. 지금은 옛 성터가 재현돼 있어 그날의 함성을 되새겨볼 수 있다.

길은 여기서 산동면 소재지로 이어진다. 봄이면 노란 산수유 꽃망울로 꽃대궐을 이룬 산기슭이다. 집에서 산수유 열매를 말리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마을 풍경도 시간이 비켜선 것처럼 소박하고 정겹다. 지리산 만복대와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산줄기도 우람하다.

산수유마을에서 시작된 서시천을 따라 뉘엿뉘엿 걸으면 운흥정과 만난다. 개울가의 바위벽에 걸쳐진 정자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바위벽을 휘감아 돈다. 오래 전, 지역의 선비들이 돈을 내서 세운 정자다. 옛 사람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다. 구만저수지에 들어선 지리산 수상레저타운은 스산하다. 추운 날씨 탓에 수상스키도, 오리보트도 움직이지 않는다. 젖소를 놓아기르던 치즈랜드도 적막하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천변길이다.

길은 우리밀 체험관을 지나 서시천 제방을 따라간다. 봄이면 벚꽃으로, 여름이면 원추리로 꽃물결을 이루는 둔치다. 나비와 매미, 풀벌레 소리 요란하던 둔치도 호젓하다. 물오리와 이름 모를 철새들만 물 위에서 노닐고 있다.

백의종군하며 걸었던 이순신의 체취는 구례읍에서 제대로 만난다. 백의종군 기간 난중일기에 자주 언급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손인필이다. 구례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무찌르는데 공을 세운 관군지휘관이었다. 백의종군에 처한 이순신을 밤재까지 달려와서 맞이한 사람이 그였다. 백의종군 끝에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이 구례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도 그였다.

당시 이순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환대하고 도왔던 손인필의 비각이 구례읍내에 있다. 공설운동장에서 구례읍사무소로 가는 길목, 구례읍 봉북리 도로변이다. 지금은 비각만 덩그러니 서 있다. 하지만 최근 시작된 공원 조성사업이 마무리되면 근사한 공원으로 변모하게 된다.

손인필 비각에서 가까운 구례읍사무소는 당시 구례현청이 있던 자리다. 이순신 장군이 구례에 있을 때 자주 머물던 곳이었다. 읍사무소 앞에 500년 넘게 산 팽나무 고목이 의연하게 서 있다. 장군이 드나들던 그때 그 시절을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했던 나무다. 현청 앞에 있던 명협정도 사료를 토대로 지난달 복원됐다. 이순신 장군이 여기에 자주 들러 머물면서 당시 체찰사였던 이원익과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생각을 나눴던 공간이다.

구례읍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 쪽으로 가면 강변에서 용호정과 만난다. '절명시'로 널리 알려진 매천 황현의 제자들이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다. 지역의 유림들이 울분을 달래면서 문학으로 항일하던 거점 역할도 했다. 용호정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도 이순신 장군이 순천부로 오가면서 건너다녔다. 난중일기에는 잔수강으로 적혀 있다. 긴 강줄기를 따라 구간마다 이름을 달리한 섬진강의 또 다른 명칭이다. 잔수강은 구례와 순천 황전 사이 강을 가리킨다. 이 강변에 놓인 나무 데크와 둔치를 따라가면 옛집 운조루로 연결된다.

토지면 송정리에 있는 석주관도 의미가 깊다.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의사와 의병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석주관 앞에 당시 순절한 왕득인 등 일곱 의사와 구례현감 이원춘의 무덤이 있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을 반갑게 맞아주고 온갖 편의를 다 제공한 데서 머물지 않고 나라를 위한 전쟁에도 앞장서 싸워 목숨까지도 내놓은 그들이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ㆍ전남도 대변인실


가는길

호남고속국도 곡성 나들목에서 곡성읍을 거쳐 고달면소재지에서 우회전, 고산터널을 넘어가면 구례 산동으로 연결된다. 산동에서 남원 방면으로 19번 국도를 타면 조금 가면 계척마을 입구에 닿는다.

먹을곳

산채정식은 혜림회관(783-3898)과 동산민박식당(783-1108)이, 버섯비빔밥은 할매된장국집(783-6931)이 으뜸이다. 흑염소탕은 은행나무집(781-6006), 닭?오리고기는 당골식당(783-1689), 갈비는 한옥갈비(782-3537), 멧돼지고기는 지리산멧돼지관광농원(783-7474)이 맛있다. 사찰음식은 초가원(781-2222)에서 맛볼 수 있다. 다슬기수제비는 부부식당(782-9113), 중화요리는 왕성식당(782-2106)을 추천한다.

묵을곳

지리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펜션이 여러 군데 있다. 언덕위의 하얀집(783-1330), 지리산심마니펜션(783-5179), 산수림산장(781-1331)이 깔끔하다. 지리산프린스펜션(782-0740)과 지리산산사랑파크(783-6090)도 괜찮다. 지리산가족호텔(783-8100)과 송원리조트(780-8000), 한화리조트 지리산(782-2171)도 있다.

가볼곳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문수사 등 지리산이 품은 절집이 많다. 암자가 절벽 위에 아찔하게 걸려있는 오산 사성암도 멋스럽다. ‘타인능해(他人能解)’를 써놓은 뒤주로 어려운 이웃을 보살핀 옛집 운조루는 토지면 오미리에 있다. 섬진강에 사는 민물고기를 다 볼 수 있는 섬진강어류생태관도 있다. 문의는 구례군 종합관광안내소 061-780-2450.
특별기획 최신기사 TOP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