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세대' 절망의 시점은 어디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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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세대' 절망의 시점은 어디였나
한국현대사 열한가지 질문
박세길 저 | 원더박스 | 1만5000원
  • 입력 : 2015. 06.25(목) 00:00
요즘 청년세대를 '삼포세대'라 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암울한 현실을 일컫는 표현이다. 실업자와 신용불량자가 넘쳐나는 '실신세대'라고도 한다. 지난해 기준 15~29세 청년 교용률이 40% 수준에 그치고, 취업자들조차 절대 다수가 비정규직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청년층 일자리 150만개가 사라졌다. 20~30대 청년들의 고통이 2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청년 취업난을 마치 당연한 현상인 양 여기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돌아보자. 오늘날 청년들이 겪는 고통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도 채 안되는 사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한 자랑스런 역사는 어쩌다 청년들의 목을 조이는 사회, 연이은 보수 정부로 귀결됐을까. 저자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고 해방 이후의 역사를 필요에 따라 순서를 정하거나 재조합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극적인 반전과 역설의 의미를 풀어간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은 철저히 현재의 문제의식과 필요성에 발을 딛고 우리 사회를 형성한 현대사의 근원과 핵심을 되짚어보는 독특한 역사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영국 사학자 E. H. 카의 말을 적용한다면, 이 책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지나온 과거와 나누는 '호기심 가득한 대화'이다.

이 책은 형식은 일반 역사서와 많이 다르다. 한국 현대사를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 가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통사는 아니다. 오늘의 곤혹스러운 현실을 낳은 근원인 1990년대와 외환위기 전후의 상황부터 조망하기 시작한다. 이를 돌파할 지혜를 얻기 위해 분단과 산업화, 민주화의 경험과 교훈을 돌아본 뒤, 21세기에 들어와서 펼쳐진 역사를 들여다보며 새로운 희망의 싹을 찾는 구성이다.

서두에 언급한 문제의식이자 이 책의 첫 주제이기도 한 '청년 잔혹사'의 출발은 평온하고 젊고 자신감 넘치는 국가였던 한국을 뒤흔든 외환위기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외환위기로 강제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서 기성세대 노동자들과 기업들 사이에 일종의 묵시적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일자리 문제를 시발점으로 젊은 세대를 옥죄는 갖가지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지난 20년 동안 연거푸 발생했다. 저자는 이를 '4대 대란'이라고 한다. 취업대란(1997~), 벤처대란(1999~), 카드대란(2000~), 부동산대란(2003~)이다. 모두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일들이지만 특히 청년층에 타격이 컸다.

사회의 물적 토대인 경제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도 이 책의 강점 중 하나이다. 저자는 여섯번째 질문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역은 누구인가?", 여덟번째 질문 "글로벌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 몰락의 신호탄인가?", 열번째 질문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등의 장을 경제에 할애하고 있다.

1970~80년대 '추격 전략'과 최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에 이어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이 주식자산 2위에 오를 정도로 급성장한 화장품 회사들의 성공 요인을 먼저 비교한다. 창조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및 국가 품격과 문화, 이미지 전반이 경제의 직ㆍ간접적인 경쟁 요소가 된 '창조 경제'의 차이점이 눈에 들어온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과거 한국 경제의 요인과 현재의 경제 환경 및 재도약의 가능성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이 책은 격변기 한국 사회의 한복판을 헤쳐온 한 지식인 또는 활동가의 내면 고백이기도 하다. 저자는 본문 곳곳에서 본인이 과거 지녔던 제한적 관점이나 도그마까지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의 타산지석으로 남겼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열한 가지 질문은 민주화 물결로 격동한 1981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한국의 대표적 진보 인사의 한 사람으로 생활해 온 저자 자신의 질문이다. 이 시대 청년들과 진솔하게 나누고 싶은 대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한편 저자 박세길은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90년대 전반까지는 노동자와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현대사 교양활동에 매진했다.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시리즈는 그 과정에서 나온 저작으로, 현대사를 진보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정리한 1990년대 대학생 필독서로 꼽혔다.

주정화 기자 jhjoo@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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