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인이 가슴에 묻어뒀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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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인이 가슴에 묻어뒀던 이야기
조선과 일본에 살다 김시종 저
윤여일 옮김 | 돌베개 | 1만5000원
  • 입력 : 2016. 04.01(금) 00:00
지난 1월 오사카 쓰루하시에서 김시종(오른쪽) 시인과 그의 저서 \'조선과 일본에 살다\'를 번역한 윤여일 씨의 모습. 쓰루하시는 67년 전 일본에 도달한 김 시인이 처음 향한 곳이기도 하다. 오세종 제공
왜곡된 역사를 담은 교과서를 검정한 일본 정부, 한ㆍ일 위안부 합의 등 현안으로 역사 문제가 주목받는 시기다. 식민지에 살았던 젊은지식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시인 윤동주를 다룬 '동주'(감독 이준익),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일대기를 그린 '귀향'(감독 조정래)은 예상 외의 선전을 하며 '국민 정서'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일제강점기 가혹한 역사가 할퀴고 간 자리에 남겨져 여전히 괴로워하는 이가 있다. 재일조선인 김시종(86) 시인이다. 그가 8ㆍ15와 4ㆍ3을 중심으로 평생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책 '조선과 일본에 살다'는 가슴에 묻어뒀던 기억들을 담은 자서전이다.

일본의 월간지 '도서(圖書)'에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엮었다. 지난해 12월 제42회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아사히신문사가 제정한 문학상으로 탁월한 산문작품을 가려 수여된다.

<그림1왼쪽>김 시인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 태어났다. 제주 4ㆍ3사건에 휘말려 1949년 일본으로 탈출하기 전까지 소년 시절 대부분을 제주에서 보냈다. 해방 전까지는 일본의 황민화 교육이 길러낸 '제국의 소년'이었다. 한글은 한 글자도 쓸 줄 몰랐다. 군사병 학교에 지원해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했던 한 소년의 삶은 1945년 17세가 되던 그해 해방을 맞으며 변화했다.

제국의 소년에게 해방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김 시인은 "결국 그날이 왔습니다. 식민지 통치의 멍에로부터 벗어나는, 회천의 8월 15일이 왔습니다. (중략) 그런데도 나 혼자만 뭔가 그 자리와 안 어울리는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성전인 대동아전쟁을 함께 치렀으면서도 너무 무정한 것 같아서 홀로 제방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때 '고지마 다카노리'의 노래 한 구절이 무심결에 입에서 나왔습니다"라고 적었다.

'식민지 지배'라는 것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소년. 해방의 그날에도 일본어로 된 노래를 읊을 수 밖에 없던 그는 황민화 교육의 피해자였다. 일본어는 시인의 의식의 밑천이 돼 모국어나 다름 없이 뿌리 박혔다. 이후 그는 조국의 현실과 사회의식에 눈을 떠 민족의 말과 글, 문학을 왕성히 배워나갔고 새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학생운동과 남로당 활동에 투신하기도 한다. 그런 그를 다시 일본으로 떠밀어냈던 게 제주 4ㆍ3사건이다.

당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활동에 가담하고 있었던 김 시인은 1949년 5월 학살의 광풍을 피해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탈출하게 된다. 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4ㆍ3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남로당 당원으로서 참가했다는 이야기가 이를 '공산폭동'으로 규정한 미군정과 군사정권의 논리에 동원될 것을 염려한 탓이었다. 또 불법입국했다는 자백을 하는 것이 돼 남한의 군사정권으로 강제송환될 것을 두려워해서 였다.

김 시인은 4ㆍ3사건을 겪으며 "새삼스럽지만 식민지 통치라는 업의 깊이에 이를 갈았"다고 했다. 그는 "반공의 대의를 살육의 폭압으로 실증한 중심세력은 모두 식민지 통치하에서 이름을 얻고, 그 아래서 성장한 친일파 인간들이며, 그 세력을 전적으로 떠받쳐 준 것은 미국의 혁혁한 민주주의였"다고 적었다. 일본으로 탈출한 그는 북조선으로 가고자 했다. 그러나 김일성 우상화와 조총련의 북한 편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귀국선을 타지 못했다.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기에 '재일조선인'으로 남아야 했다. 재일외국인 최초의 공립학교 교사가 돼 조선어를 가르치고 시작(詩作)과 강연을 이어갔다. 김 시인은 "어디까지나 총칭으로서의 '조선'에 매여 살아가는 것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고 말한다. 재일조선인의 실존이야말로 남북대립의 벽을 넘어서는 민족융화를 향한 통일의 장이라는 것. 책의 제목인 '조선과 일본에 살다'는 두 가지 의미로 읽힌다. 조선과 일본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했으며, 그 어디에도 안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시종 시인은 1929년 부산에서 나고 제주에서 자랐다. 1948년 제주 4ㆍ3항쟁에 참여했다가 1949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이후 재일조선인으로서 민족운동과 시작(詩作)에 나섰다. 재일외국인 최초의 공립학교 교사가 돼 15년간 조선어를 가르쳤다. 재일조선인 동인지 '진달래'(1953), '카리온'(1959)를 창간하고 시집 '지평선'(1955), '일본풍토기'(1957) 등을 출간했다. 현재 일본 나라(奈良)에 살고 있다.

김정대 기자 jdkim@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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