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떡거리는 우럭… 배 위서 먹는 즉석회, 그 맛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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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주의 음식디미방
펄떡거리는 우럭… 배 위서 먹는 즉석회, 그 맛이란
조헌주의 음식디미방-홍도 우럭회
  • 입력 : 2016. 09.30(금) 00:00
홍도 '선상 우럭회'.
이래서 '태산은 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이요, 하해는 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라 했던가. 태산은 흙더미 마다하지 않아 그 높이를 이루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 가리지 않아 그 깊이를 이룬다.

초가을, 씨 뿌리지 않은 이조차 덩달아 달뜬다. 날이 한결 무뎌진 햇살에 바람도 쉬면, 망망대해(茫茫大海)는 더욱 탁 트인다. 가는 물줄기 얼마나 많이 모여야 이 바다 이룰까. 깊이 모를 바다가 일렁이면 속물(俗物)의 삶이 잠시 어지럼을 탄다.



홍도를 찾아가는 고속선은 목포를 떠나 한참을 숨죽인 채 점점이 뿌려진 섬 사이를 헤집어 나간다. 다도해국립해상공원을 지나는 것이다. 옛날 유형(流刑)의 섬들로 노년층이 삶의 작은 먼지 털어내려 소풍을 간다. 한 시간쯤 뒤 흑산도에 들리고 나더니 뱃전에 부딪치는 바닷물이 요란하다. 섬이 뒤로 물러서자 배가 속도를 더한다. 물빛은 어느 새 바뀌어 있다. 목포 연안의 희뿌연 물빛이 옅은 녹색이 되나 싶더니 흑산도 부근 지나면서부터 짙푸르다.

홍도 가는 뱃길 115킬로미터는 2시간 반 항해로 끝났다. 홍도 연안여객터미널에 여행사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늘어선 풍경이 20년 전쯤 사이판 공항과 비슷하다. 그렇다. 홍도는 한국에서 으뜸인 '가고 싶은 섬'이다. 코레일 여행상품으로 홍도를 찾아온 단체 여행객이 썰물처럼 빠진다. 삼륜차 같은 데 실려 가방꾸러미가 주인을 따라 가자 터미널은 휑해진다. 식당 호객인은 필자 같은 뜨내기 여행객을 점찍고 다가온다. 이런 호객에는 응해줘도 좋다.

홍도는 265세대 585명이 사는, 둘레 20키로 남짓한 조개비만한섬이다. 하지만 모텔은 39개, 민박집이 37개, 식당은 16개가 있다. 대부분의 모텔도 평범한 백반을 숙박객에게 판다. 육지라면 평범하지 않은 상차림이다. 촌색시처럼 수수하게 차린 1만원짜리 백반에도 홍어 몇 점은 기본이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터라 더할 나위 없이 맑은 해역에서 건진 톳이나 미역을 무친 밑반찬도 입맛을 돋운다. 오징어를 미끼로 바닷가에서 잡은 게를 볶아놓은 것은 별 양념 없이도 고소하다.



홍도의 식당들은 우럭 방어 놀래미 농어 볼락 등 철따라 잡히는 싱싱한 물고기를 수족관에 넣어두고 손님 맞을 채비를 해두고 있다. 우럭 회 한 접시는 6만원. 매운탕이 곁들여지니 두 사람 먹기에는 넉넉하다. 홍도 근해에서는 양식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 이곳의 횟감은 자연산뿐이다.

물고기 맛 좀 안다는 바다낚시꾼들이 횟감으로 높게 치는 게 우럭이다. 많은 볼락 가운데 '조피볼락'을 흔히 우럭으로 부른다. 흑갈색 우럭은 우락부락한 생김새에다 무지막지한 육식성 물고기다. 멸치 빙어 등의 치어와 새우 갯지렁이 게 어패류 등을 먹어치운다. 대단한 식욕. 하지만 이런 우럭은 물론이고 놀래미 넙치(광어) 농어 방어 열기 등을 죄다 먹어치우는 인간의 식탐에야 따라오겠는가.

우럭은 연안의 암초 지대 얕은 여울에 산다. 갯바위나 포구 등에서 루어낚시로 잡으려할 때 모처럼 '히트' 해놓고도 우럭이 돌 틈으로 숨어가 버리면 허탕이다. 버팅기고 숨으며 애를 태울수록 더욱 더 간절히 손맛을 보고 싶어진다. 우럭 낚시의 매력이다.

우럭은 회를 뜰 때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40센티쯤 되는 놈은 힘이 장사다. 횟집 조리사도 칼등으로 머리통을 두드려 기절시켜놓고야 조심조심 손질한다. 몸통 여기 저기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서다. 눈썹마냥 눈 앞쪽에 한 쌍, 눈 사이에도 두 쌍, 그 뒤로 또 한 쌍의 가시가 있다. 눈 앞 가장자리를 에워싼 골격에도 아래로 뻗친 3개의 가시가 있다. 철갑선이나 고슴도치처럼 무장하고 먹잇감을 공격하는 바다의 난폭자이다. 거친 만큼 맛도 실하다.

첫 번째 칼잡이는 말없이 우럭 앞에 정좌한다. 머리를 정리하고 뼈 사이로 칼을 불쑥 밀어 넣어 단숨에 양분한다. 껍질만 남기고 횟감을 떠내 물기를 짠 뒤 옆으로 밀친다. 두 번째 칼잡이는 쓱싹쓱싹 투박하게 두툼하게 툭툭 회를 썰어 접시 가득 올린다.

나는 왜 고추냉이를 좋아할까. 콧등이 찡해져 눈물 찔끔 나올 만큼 듬뿍 바른다. 상추에 올려 생마늘 풋고추를 얹고 한가득 입에 넣는다. 홍도의 해넘이를 못 보는 아쉬움에 소주 잔이 바쁘다. 노을에 붉게 타는 붉은 섬이 홍도(紅島)인데, 다음에 차분히 오리라. 우럭은 한국의 중남부 연안과 일본 큐슈와 홋카이도 지역에 사는데 가을과 겨울에 남쪽으로 회귀해 월동한다. 흑산도와 홍도, 제주도 일대에 우럭을 찾는 조사(釣師)가 그래서 많다.

경치 자랑하는 곳에는 흔히 8경, 10경 하는데 홍도는 33경이라 한다. 어른 요금 2만5천원의 유람선을 타고 2시간 반에 걸쳐 섬을 돌면 홍도는 100경으로도 모자란다. 뾰쪽 튀어나오고, 솟구쳐 오르고, 아슬아슬 얹히고, 매끈하고, 갈라지고, 뚫리고, 쌓이고. 홍도의 바위는 온갖 형상의 조각품이 되었다. 절벽의 틈은 차일처럼 잎을 펼친 해송(海松)으로 빼곡하다. 홍도는 커다란 분재 전시장이다. 수억 년 물결 소리가 스민 바위의 맨살, 그 속삭임을 느끼고 싶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근질거린다. 솜씨 좋은 자일 파트너를 앞세우고 절벽에 붙어 홍도와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한갓 젊은 날 암벽등반의 추억으로 그칠 뿐이지만.



유람선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선상(船上) 회'. 일주가 끝나갈 무렵 유람선으로 작은 배가 다가온다. 배에 실린 플라스틱 함지에서 우럭, 방어가 펄떡인다. 칼잡이 2인에 호객인과 수금원, 네 사람의 호흡이 척척이다. "여기요, 네 사람. 우럭 한 접시 주세요." "녜에~, 여그 가요잉. 초장, 소주에다 3만 몇천원인디라" "젓가락 두 개만 더 주십시오" "으짜쓰까, 돈 빠쳐부럿당께" 바다 위로 떨어진 지폐가 낚시 뜰채에 담긴다. 여행객은 맛을 건지고 섬사람은 돈을 건진다. 시끌벅적해지니 사진 찍던 이들이 스마트폰을 접고 슬금슬금 회판으로 모여든다. 종이 잔에 소주 가득, 초장 뚝뚝 흐르는 우럭 회를 나무젓가락으로 집는다. 맛은 새삼 물어볼 것 없다. 맛의 8할쯤이 분위기 아니던가. 생판 모르는 동승객의 침 넘어가는 소리 외면 못하고 술잔과 젓가락이 오간다. 같은 배를 탔다는 거다. 흔들리는 뱃전에서 오가는 한 잔 소주만으로도 함께 즐겁다.

2200년 전쯤 중국은 7개 나라가 천하 통일을 놓고 다투던 전국시대(戰國時代). 야망을 품은 책사(策士)들은 유력한 천하통일 후보를 좇아 국경을 넘나들었다. 초(楚)나라 지략가 이사(李斯)는 진(秦)나라로 가 왕의 신임을 얻는다. 기득권 세력인 왕족과 대신들은 이꼴을 보지 못해 '외국 출신 고위 관료'를 겨냥한 축객령(逐客令)을 만든다. 추방을 앞둔 이사, 현란한 글로 왕을 구워 잡쉈다. 글머리에 소개한 ‘하해불택세류’란 문구가 등장하는 글이다. 격동의 때일수록 온갖 재목이 필요하다는 걸 그토록 짧고 야무지고 당당하고 똑부러지게 비유할 수 있다니. '과연, 맞는 말이로다'. 진나라 왕은 추방령 즉각 취소, 덤으로 이사를 승상(丞相. 총리 격)으로 전격 발탁. 이 소식에 인재들이 모여들고 진나라는 20년 뒤 천하통일을 이룬다. 진시황과 이사에 얽힌 이야기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보듬어 안는 것. 그것은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는 무도(無道)함과 다르다. 대동(大同)의 팔을 넓게 펼친 것이다. 흔들리는 유람선 위 우럭 회에 소주 잔 앞에서 청승맞은 대동타령일까만.

맛은 발품 따라 온다. 여행의 즐거움은 속도와 짐 무게에 반비례한다. 가벼운 차림으로 남도의 섬으로 떠나는 배를 타보자. 남도의 맛이 한결 더 은근하고 깊고 푸르게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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