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팝음악 그 누구도 그들에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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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소남의 통기타 이야기
비틀즈, 팝음악 그 누구도 그들에 자유로울 수 없다
국소남의 통기타는 영원하다 - 그룹 '비틀즈' 上
50년대 아마추어 밴드로 출발… 독일서 무명 생활
초창기 공연 리버풀 케번클럽 英 최고 관광 명소로
미국 상륙 인기몰이… 빌보드 차트 1~5위까지 석권
  • 입력 : 2016. 10.06(목) 00:00
그룹 '비틀즈'는 1964년 미국에 상륙해 2월9일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다. 이 쇼는 7000만명이 넘게 시청해 시청률은 60%가 넘었다. 사진은 비틀즈와 애드 설리번(가운데)의 모습. 뉴시스
●위대한 전설 '비틀즈(BEATLES)'

비틀즈. 어떻게 이들을 표현할까. 어떻게 말을 해야 이들의 위대함을 올바르게 표현했다 할 수 있을까.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인류 음악사의 맨 꼭대기에 서 있어야 할 존재가 바로 그룹 비틀즈다.

1960년~1962년 4월 '실버 비틀즈'로 활동을 시작, 1970년 4월 공식 해체선언을 할 때까지 약 8년동안 그들이 남긴 음악적인 문화유산은 너무나도 엄청나다.

●거함 출항, 데뷔싱글 'Love me do' 발매

두말 할 것도 없이 비틀즈는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이다. 팝음악에 관한 한 어느 한 사람들도 비틀즈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꾸었던 거함 비틀즈가 닻을 올린지도 어느덧 56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다. 비틀즈와 관련해서 기억해야 할 날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1962년 10월 5일은 비틀즈의 역사적인 데뷔싱글인 'Love me do'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날이다.

그해 9월 11일 영국의 애비로드에 있는 EMI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 역사적인 데뷔 싱글이 이날 시중에 판매되면서 현대 팝 음악사의 절반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함 비틀즈가 드디어 출항의 닻을 올린 것이다.

●네번째 그룹 명 '비틀즈' 탄생

1950년대 존 레넌이 이끌던 아마추어 밴드. '쿼리맨(The Quarry Man)'으로부터 시작된 비틀즈는 그 후 이름을 'Johnney&Moon Dogs' 'The Moon shiners' 'Long John & The Silver Beatles'로 바꾸면서 1960년대초 독일의 함부르크로 건너가 혹독한 무명의 시련기를 보냈다. 영국으로 돌아와 리버풀의 케번클럽에 고정출연하면서 그룹으로서의 싹을 틔우기 시작하게 된다.

●명 프로듀서ㆍ매니저 만나 성공시대

당시 리버풀의 대형 음반가게 주인이었던, 후일 비틀즈의 매니저로 활약하게 되는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명 프로듀서 조지 마틴을 만나게 되면서 성공의 시대를 준비하게 된다.

그 사이 드러머였던 페이터 베스트를 링고 스타로 바꾸면서 그룹 이름도 실버를 떼고 비틀즈로 공식 활동하게 된다.

프로듀싱과 매니지먼트의 귀재로 알려졌던 두 사람을 좌우에 포진시킨 비틀즈는 1년여의 준비끝에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질주하게 되는데, 그 첫 출발점이 바로 첫 싱글앨범인 'Love me do'였다.

여담이지만 당시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비틀즈의 인기를 과장하기 위해 한동안 우리 가요계에서도 횡행했던 이른바 음반 사재기 전법을 구사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Love me do'는 그들답지 않게 영국에서는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진 못했다. 뒤늦게 미국에 소개되어 이윽고 1964년 5월 20일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하게 된다.

●영원한 고향 리버풀 '케번클럽'

영국의 리버풀은 지금은 많이 쇠락한 도시다. 한때 최대의 항구도시로 번성했던 리버풀은 이제 군데군데 폐허처럼 흉흉하고 도시 전체가 썰렁하기만 하지만, 그런 리버풀에서도 붐비는 장소가 있다. 리버풀을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거쳐야하는 필수코스인 비틀즈 박물관과 비틀즈가 초창기에 공연했던 케번클럽이다.

어쨌던 리버풀은 비틀즈의 영원한 고향이다.

1963년 8월3일 비틀즈가 이 케번클럽에서 자신들의 마지막 공연을 펼쳤는데, 정확히 그들의 294번째 공연이었다고….

케번 클럽은 무명시절 비틀즈가 연주했던 곳. 즉 요람과도 같은 곳이어서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영국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된 행운의 클럽이기도 하다.

●미국 상륙 '영국의 침략' 시작

거함 비틀즈의 위용에 영국이 숨을 죽일 무렵, 그들은 대서양을 건넌다.

1964년 2월1일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가 정상을 차지하자 급하게 일정을 바꿔 미국행을 계획하게 된다. 드디어 1964년 2월 7일 마침내 뉴욕 케네디공항을 밟게 된 것이다.

2월 9일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 미국시장 공략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7000만명이 넘게 이 쇼를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고, 시청률이 60%를 넘어서게 됐다. 이어 미국 순회공연으로 매니아들을 몰고다니며 미국이 그들 이름 아래 숨을 죽이고 있다며 타임지가 표지에 그들을 대서특필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의 그룹들이 앞다퉈 대서양을 건너기 시작했다. 롤링 스톤즈, 홀리스, 서쳐스, 데이비 클락 파이브, 크림 등 실로 정신차릴 수 없는 미국에 대한 영국의 융단폭격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군 입대, 제리 리 루이스의 불명예 퇴진, 당시 엘비스의 군입대로 로큰롤 계에서 상당한 입지를 확보하며 인기를 구가하던 버디 홀리, 리치 발렌스, 빅 바퍼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젊은이들은 오죽하면 음악이 죽은 날이라고 애통해 했을까.

어쨌던 당시 미국은 로큰롤의 급격한 쇠퇴 이후 음악적 공백기를 겪고 있을 때였다. 영국의 침략, 이것이 그 유명한 브리티쉬 인베이전이다. 1970년대까지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던 미국은 1980년대에 들어서 마이클 잭슨이라는 팝의 황제를 앞세우고서야 겨우 기울었던 저울의 추를 다시 돌려 놓을 수 있었다.

●20세기 록 음악계 역사적 사건 1위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지난 20세기를 정리하면서 이 사건 브리티쉬 인베이전을 20세기 록 음악계의 역사적인 사건 100가지 가운데 1위에 올려 놓았다.

브리티쉬 인베이전의 선봉장인 비틀즈의 미국 점령은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미국은 비틀즈에 열광했고, 그들을 원했으며, 그들의 인기가도에 불이 붙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1964년 4월은 위대한 밴드 비틀즈가 차트상에서 미국을 완전정복한 날로 기록되고 있다.

'I want to hold your hand'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장식한 후 1964년 한해동안 무려 6장의 비틀즈 앨범이 미국에서 발매되기에 이른다. 미국 시장 데뷔앨범 'Meet me Beatles'가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고, 이후 발표곡마다 차트 1위를 정복하고 만다. 오직 비틀즈만 있었고 아무도 대적할 상대가 없었다.

●미국 팝 역사에 불멸의 대기록을 쓰다

1964년 4월 4일 마침내 그들은 이전에도, 또한 그 후 오늘까지도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을 빌보드 역사에 아로새긴다. 당시 빌보드 1위에서 5위까지의 싱글차트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도배해 버린것이다.

'Can't buy me love' 'Twist and shout' 'She loves you' 'I want to hold your hand' 'Please please me' 5곡이 1~5위까지의 곡이다.

참고로, 미국의 빌보드 차트란 싱글과 앨범으로 구분되는데, 매주 1위부터 100위까지의 순위를 매기는 형식의 차트를 말한다. 인기도, 방송횟수, 레코드 판매량 등을 주 단위로 집계해 발표한다.

우리나라의 싸이라는 가수가 2012년 7월에 내놓은 '강남스타일'이 2014년 5월 31일 유투브 최초로 조회수가 20억건을 돌파하는 진기록을 세우지만 2012년 9월 마지막 주부터 7주간 연속 2위에 머물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1위 등극을 염원했지만 뜻을 이루진 못했다.

비틀즈는 1위부터 5위까지가 자신들의 노래였으니 그들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대기록이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통기타 가수ㆍ문화공연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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