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나무ㆍ돼지족발… 동어반복이 잘못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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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ㆍ돼지족발… 동어반복이 잘못됐다고?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다
민송기 저 | 도서출판 학이사 | 1만3000원
  • 입력 : 2017. 01.11(수) 00:00
책 제목이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다'이다. 제목부터 흥미롭다.

딱 봐도 우리말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도 현직 국어선생님이 쓴 우리말 이야기다. 이런 류의 책은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기 십상. 국어 선생이 쓰는 '우리말 이야기'라고 하면 표준어 규정에 대해 해설하는 글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고, 다채롭다.

책은 어떤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한지, 문학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한지에 대해서 다룬다.

저자는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깊이가 있는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재미있는 수필을 읽듯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쉽게 읽히는 이유는 먼저 독자들을 훈계하지 않고 적절한 말을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국어 관련 전공자들이 '네가 지금 쓰고 있는 말이 잘못되었으니 바른말 고운말을 쓰라'고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쓰라고 제안하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딱히 반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책은 훈계 대신 사람들이 왜 쓰지 말라는 말을 쓰는가에 대해 분석을 한다. 그 방법으로 말과 관련된 규정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실제 삶에서 근거를 찾는다.

저자 스스로도 "굳이 내가 세상에 고리타분한 책 하나를 더할 이유가 없었다. 쉽고, 가볍게 우리말에 담겨있는 삶을 '생각해'보는 책"이라고 소개한다.

책의 저자는 현재 대구 능인고 국어교사인 민송기씨다. 그는 EBS 교재 제작과 각종 시험 출제에서 팀장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필자가 만든 문제를 한 번 이상은 풀어보아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책은 한 때 '국어국립원에서 짜장면이라고 쓰지 말라고 했는데도 사람들이 짜장면이라고 쓰는 이유는 뭘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이유는 뭘까.

저자는 "말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생겨나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때문에 "그 속에는 오랫동안 말을 써 온 사람들의 삶과 더 적절한 말에 대한 감각이 녹아있다. 사라진 말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지금 남아 있는 말은 남아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강변한다.

사람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그 시대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하면서 기존의 말로 변화를 담아 낼 수 없으면 선택을 받기 어려워진다. 가령 '축음기'라고 하면 에디슨이 만든 초창기 기계를 연상하게 되는데, 이 말로 요즘 나오는 세련된 디지털 기기를 지칭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찻집이지만, 다방과 찻집, 커피숍은 느낌이 다르다. 가게의 위치, 종업원의 나이, 손님들, 흘러나오는 노래, 심지어 실내로 들어오는 햇빛의 두께와 인테리어까지 다르게 연상되고, 실제로도 다르다.

이처럼 널리 쓰이고 있는 말에는 '생동감'이 있고, 모국어 화자라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알거나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른말 고운말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이다.

국어학자나 표준어에 깐깐한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어반복이 심하다'고 지적하면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고목나무는 '고목'으로 써야 하고, 돼지족발은 '돼지발' 혹은 '돼지족', 담장은 '담'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반복을 없애는 것이 반복이 있는 말보다 훨씬 어색하게 느껴지고, 의미에도 다소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이유는 현대인들이 한자 뜻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고목'보다는 '고목나무'로 쓸 때 의미가 쉽게 와 닿기 때문이고, '담'보다는 '담장'이 운율이 있고 의미 전달이 명확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족발의 경우에는 단순히 '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지칭하는 대상이 다르다. 그는 "현재 동어반복으로 지적받는 말 중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이 많다"며 "오히려 동어반복을 통해 더 세밀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말도 많기 때문에 무작정 바로잡자고 할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홍성장 기자 sjhong@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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