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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재회
  • 입력 : 2017. 07.27(목) 00:00




대학시절 나에게 프로포즈를 했던 남자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사귀어본 사람은 없다. 그들의 프로포즈를 거절했던 것은 단순히 그 때는 이성 교제가 흔치 않아서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우리 아이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열 명 정도는 사귀어보고 결혼해라!" 할 정도로 아쉬웠다. 그래서 가끔씩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들을 가져보지 못한데 대한 회한에 잠기곤 했다.

그런데 다시 서게 된 교단에서 나를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동창생을 만났다. 먼 기억속의 낭만적인 캠퍼스에서의 장면들이 되살아나면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다. 겉으로는 '남자사람친구' 처럼 스스럼없이 대했다. 하지만 나의 서툰 거절로 인하여 한동안 상대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을 상처를 생각하면 사과라도 하고 싶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재회는 젊은 날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들과의 재회다. 나이는 서너 살 정도의 차이가 나지만 오랜만에 만나니 남녀 구별 없이 친구처럼 반가웠다. 여럿이 함께 만나기 때문에 부담도 없고 해서 일 년에 두 번씩 만나는 정규 모임을 갖고 있다.

세 번째 재회는 여중 친구들이다. 원래는 '사총사'인데, 성인이 된 후 미혼인 한명의 친구하고만 연락이 이어졌고 나머지 두 명의 친구들과는 결혼 후 소식이 끊겼다. 그러다가 30여년 만에 또 한명의 친구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셋은 모두 광주에 살기 때문에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데, 그 때마다 서울로 시집간 윤희를 그리다가 헤어지곤 했다.

윤희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던 중 유난히 기억력이 없는 내가 불현듯 중학교 때 편지를 주고받던 고흥 나로도의 윤희 주소를 지번까지 정확하게 생각해냈다. 한시가 급했다. 네비게이션에 주소검색을 하고 달려가 우여곡절 끝에 윤희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우리는 쪽빛 파도가 넘실대는 윤희의 고향 고흥 나로도 바닷가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수십 년이 지나서 만나도 매일 만났던 것처럼 스스럼없고 좋은 것이 친구인 것 같다. 요즈음은 넷이서 생일도 서로 챙겨주고 등산이나 여행도 함께한다.

마지막 재회는 금년 봄 직장 여자동료들 중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의 재회다. 나이는 최고 세 살 차이가 나지만, 늙어가는 삶에서 세 살의 나이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시는 모두 같은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이었는데, 지금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유치원 교육 특성화에 관한 코칭을 하는 친구,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친구, 그리고 활발한 성격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현모양처 생활을 하는 친구.

가장 늦게 헤어져서인지 생활의 갭이 적다. 그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엔돌핀이 저절로 나오는 것 같다. 우리는 1박2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여름방학 때는 남자들만의 수다여행인 '알쓸신잡 여행'을 흉내내보기 위해 통영을 가기로 했다. 격의가 없어서일까? 이제는 네 모습이 내 모습이고, 너의 삶이 나의 삶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녀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싶고, 나도 그들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사실 나는 젊어서는 여자들만의 모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화의 폭이 좁고 화제가 시시하게 느껴져서 언제부턴가 여자 친구들은 개인적으로 만나고 모임은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동성친구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동성친구가 많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마음의 안정감을 얻고, 자아 정체감을 느낄 수 있다. 마음에 맞는 동성 친구가 부모나 형제, 배우자나 자식보다도 좋은 것은 서로 공감하는 폭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노년의 행복의 조건 몇 가지 중에서 친구라는 가장 중요한 준비는 된 것 같다. 그들과 오랜 동안 함께하기 위해 마음공부도 해야겠다. 우선 급한 준비로는 방학 때 가게 될 '알쓸신잡여행'때 많이 웃을 것을 대비해서 미리 눈가에 맛사지라도 해두어야겠다.


유순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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