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졌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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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버려졌던 것들
  • 입력 : 2017. 08.17(목) 00:00



"이 의자는 사용된 목재가 특별해요. 오래되거나 버려진 선박으로 만들어졌거든요. 참 신기하죠. 나무였다가 배였다가 이젠 의자였다가."

영화 뷰티풀 인사이드 중에 나온 대사다. 사람들에 의해 쓸모가 없어져 버려졌다가, 다시 사람들의 손을 거쳐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버려졌던 물건을 발견해 다시 사용해 본 적이 있는지, 평소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무의식적으로, 혹은 정말 쓸 수 없게 된 물건들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버려진다.

물건 뿐 아니라 공간도 버려진다. 학교와 집이 버려지고, 공장이 버려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다는 이유로 헌 집은 폐허가 되고, 학생들이 떠난 학교는 폐교가 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버린 것들에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다시 손을 대면 '쓸모 있는 것'이 된다. 일회용 컵은 화분이, 못쓰는 책상이 다시 의자가 되기도 하며, 옷장이 책상이 됐다가, 옷이 가방이 되는 등 기존의 모습과 또 다른 모습으로 제 기능을 다하게 된다. 공간 역시 '쓸모 있는 공간'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지난달 취재를 위해 방문한 런던에서 버려진 공간들에 대한 화려한 변신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예배를 드리던 공간은 무덤으로, 과거 말들이 머물던 공간이나 과일과 농산물을 팔던 공간은 시장이 들어서 각종 예술품과 먹거리를 파는 곳으로 변신해 떠오르는 관광지가 됐다.

한 관람객은 런던이 버려진 공간을 함부로 지워버리지 않고, 흔적을 고스란히 가져가면서도 새로운 공간으로, 때론 다른 이야기를 입혀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고 했다. 공감한다. 무조건 허물어 버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것보다 더 보기 좋았다.

물론 오래된 공간이기에 겉모습은 투박하고, 벽은 곧 쓰러질 것 같지만 과거 사람들이 머물렀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엔진이 힘차게 돌아가던 화력발전소, 말들이 머물던 마굿간들 모두 그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순 없지만 화력발전소는 다양한 현대 미술을 볼 수 있는 커다란 미술관이 됐고, 마굿간은 가지각색 예술품들을 사고 판매할 수 있는 장이 됐다. 과거 이야기를 간직한 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공간이 됐다.

버려진 것들, 그리고 버려진 공간들은 더 이상 혐오스럽거나, 흉물이 아니다. 새로 쌓은 공간보다 오히려 '특별한 공간'이 된다. 사람에 의해 버려졌다가 다시 사람에 의해 쓸모가 생긴 것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오늘 물건들을 함부로 버리진 않았는지, 한 순간의 감정으로 제 기능을 더 할 수 있는 것들을 쓰레기 취급하진 않았는지.


강송희

뉴미디어부 기자

shkang@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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