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도 무침도 구이도 어떤 걸 먹어도 맛은 천하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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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영 음식이야기
회도 무침도 구이도 어떤 걸 먹어도 맛은 천하일품
봄ㆍ여름ㆍ겨울은 찬밥 신세
9월엔 살올라 10월 맛 절정
먹는 사람 돈 생각 안해 錢魚
도내 대표 전어잡이 지역
  • 입력 : 2017. 08.18(금) 00:00
더위가 한풀 꺾이고, 잠 못 드는 열대야도 사라졌다. 밤이 되면 가을이 느껴질 만큼 선선해진 요즘, 때 이른 전어가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가는 여름이라도 여름은 여름인 것을, 제철도 아닌데 전어라니. 그래서 오늘은 철 이른 전어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전어는 가을에 먹어야 제 맛이다. 3월에서 8월 사이 산란을 마친 전어는 다시 영양을 보충해 9월부터 살이 오르고 뼈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해 10월쯤에는 고소한 맛이 절정에 이른다.

어느 여름, 죽을 날이 멀지않은 노인의 입에서 '이제 죽어도 한이 없으나, 다만 한 가지 올 가을 전어 맛을 보지 못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말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이다. 이 고소함을 아는 이들은 가을 전어를 놓치면 일 년이 내내 서운하다.

가을 전어는 산란기 전어에 비해 지방질이 3배 정도 두텁다. 고소함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산란을 마친 전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맛이 없다는데 늦여름 밥상에 오른 전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전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양식이 시작되었다. 전어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수요를 맞춰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질 급한 전어의 신선도를 확보해야하는 숙제도 있었다. 전어는 어찌나 성질이 급한지 잡히자마자 거의 죽고 만다. 활어수송차량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산지에서 내륙으로 이동하는 시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수도권과 가까운 바다에서 양식이 고려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연산과 양식을 구별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연산은 입술이 흰색이고 꼬리는 노란 빛이 강하다. 이에 비해 양식은 붉은색 입술에 꼬리는 검은색을 띤다.

전어는 6년 이상을 사는 다년생이기 때문에 자연산으로 잡히는 전어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반면 2년 이상 되어야 15센티 정도로 자라는 탓에 양식 전어는 동시에 출하되는 생선의 크기가 일정하다는 특징이 있다.

조선의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전어에 대해 "서남해에서 잡힌다. 등에는 가는 지느러미가 있어 꼬리까지 이른다"라고 소개하였다. 또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 서울에서 파는데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고 하였으며, 그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돈 '錢'자를 써서 전어(錢魚)라고 한다고 하였다.

가을 전어는 부르는 게 값이다. 사실 전어만큼 계절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생선도 드물다. 제 철이면 돈을 아끼지 않고 사 먹는 생선이지만 가을을 제외하면 전어는 완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양력으로 8월에 잡히는 전어는 돼지나 개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전어가 많이 잡히는 남도의 섬 지방에서는 강아지도 전어를 입에 물고 다니며, 잡은 전어를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해 밭에 거름으로 뿌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전어에 칼집을 넣고 굵은 소금을 무심히 뿌려 구우면 윤기 자르르 흐르는 전어구이가 완성된다. 전어 굽는 냄새가 너무 좋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이 생겼을 정도이다.

사실 전어를 굽는 가을이면 추수 걱정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오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팍팍한 시집살이지만 가족의 생계가 걸린 농사 걱정에 전어 핑계를 대고서라도 돌아온다는 해석이 이치에 맞을지도 모른다.

이 것 말고도 가을 전어와 관련된 속담은 "가을 전어는 며느리 친정 보낸 뒤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거나 "전어 한 마리가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 혹은 "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말" 등으로 다양하다.

가을 전어 맛을 최대로 끌어올려 풍미를 더하는 구이와 회는 근래에 만들어진 조리법이다. 그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전어 한 놈 머리에 깨가 세 말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얼른 감이 안 오는 분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한 말은 18리터이다. 그러니까 세 말은 54리터가 되는 셈이다. 깨가 54리터라…. 과장이 심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고소하다는 뜻일 게다.

전어는 회, 구이, 무침 등 요리 종류도 다양하다. 회나 구이로 먹을 때는 잔뼈를 함께 섭취하기 때문에 칼슘을 보충하는데 딱이다. 숙취해소는 물론 피부 미용에도 좋고, 이뇨작용이 있어 몸이 붓는 것을 예방하고 위와 장을 보하는 데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가을 전어는 썩어도 전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가지 젓갈로 저장하여 먹는다. 전어 새끼로 담근 것은 엽삭젓, 뒈미젓이라 하고 내장을 모아 담근 것을 전어 속젓이라고 한다. 내장 중에서도 위를 모아 담은 것을 전어 밤젓이라 한다.

수심 30미터 이내의 바다에 서식하다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수역에 알을 낳는다. 생태환경의 예를 들자면 광양만은 전어의 서식지로 매우 적합한 생태조건을 갖추고 있다. 외부로부터 보호되는 내만이며, 섬진강 하류가 바다와 합수되는 곳으로 산란조건에 적합하다. 해안을 따라 넓은 간석지가 형성되어 갯벌이 발달했기 때문에 전어의 성장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전남의 남쪽 바다에는 이러한 조건을 갖춘 곳이 여럿이다.

광양 망덕포구, 여수, 보성, 고흥 등 전남 남해안의 전어가 곧 제 맛을 낼 때이다. 가을 전어 떼가 몰려온다.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어 가을전어에 바쁜 젓가락질을 해보자.

백미영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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