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만에 만난 두 소녀 "이젠 소원 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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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72년만에 만난 두 소녀 "이젠 소원 풀었어요"
미쓰비시 강제 동원 근로정신대 두 할머니 상봉
나주초등학교 1년 선ㆍ후배… 재판 소식 듣고 만남
  • 입력 : 2017. 08.18(금) 00:00
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됐다 72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정신영 할머니(왼쪽)와 양금덕 할머니가 서로를 끌어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근로정신대와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가시와야 노부코? 그래, 그래! 미나리 농사지었잖아. 알고말고."(양금덕 할머니)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오메, 살아 있었구만. 이게 얼마만이요!"(정신영 할머니)

72년 세월의 벽이 일순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0대 초반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소녀들이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뜨겁게 상봉했다.

1944년 5월 당시 나주 초등학교 1년 선ㆍ후배로 일제에 강제 동원된 정신영 할머니(1930년생ㆍ나주)와 양금덕 할머니(1931년생ㆍ광주)가 지난 16일 극적으로 상봉했다.

광복 후 고향에 돌아온 지 72년 만이다.

나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정신영 할머니는 최근 광주지방법원 근로정신대 판결 소식을 듣고 이날 시민모임 문을 두드렸다.

정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나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다섯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로 끌려갔는데, 기회가 있다면 나도 소송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지진 당시의 공포와 전투기 폭격의 굉음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광복 뒤 집에 보내 달라고 했어도 한동안 보내주지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정 할머니는 "광복 후 고향에 돌아왔지만 '일본 갖다 왔다고 하면 시집을 가니 못 가니'하는 분위기 때문에, 그나마 남아있던 사진도 일부러 찢어버리고 살았다."며 지난 날의 심적인 고통을 토로했다.

정 할머니는 "가족한테는 아직까지 근로정신대에 대해 말 한마디 해 본 적 없다"면서 "오늘도 자초지종 설명 없이 딸한테 광주 사무실에만 데려다 달라고 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시민모임 주선으로 급하게 양금덕 할머니가 사무실을 찾아왔지만 세월의 간극 때문인지 한동안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실마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풀렸다. 정 할머니가 '가시와야 노부코'란 창씨개명된 이름을 말하자, 그때서야 양 할머니가 알아본 것. 제 이름 석자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했던 빼앗긴 시대, 빼앗긴 세월의 아픔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정 할머니는 "평생 호미로 땅만 파고 살다보니 전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며 "그때 그 친구들 안 죽고 누가 살아 있을까 늘 소식이 궁금했다. 이제 소원을 풀었다"며 양 할머니를 다시 힘껏 보듬었다.

양 할머니 또한 "어쩌면 동료들 중 누군가는 한번 만나지 않겠는가 했는데, 안 죽고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온다"며 "얼굴이 고왔는데 늙었지만 그 얼굴이 아직도 남아있다"며 정 할머니의 손을 꼭 붙들었다.

"이제는 100세 시대라고 하니까 서로 연락하며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삽시다"라며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두 할머니는 몸을 돌려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다.

노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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