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로 변신하는 도쿄 '롯본기 아트 트라이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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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문화도시로 변신하는 도쿄 '롯본기 아트 트라이앵글'
문화, 이제 경제다<13> 도쿄 아트 트라이앵글
유흥지역서 문화공간 탈바꿈
모리ㆍ산토리ㆍ신미술관 거점
문화예술특구로 점차 발전
  • 입력 : 2017. 08.28(월) 00:00
모리타워 앞의 거대한 거미 조형물 '마망'. 2010년 타계한, 세계적인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
롯본기(六本木). 도쿄에서 유동 인구가 많은 곳 중 하나다. 과거에는 네온사인이 반짝였고, 음식점과 환락가를 이루며 도쿄의 밤문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볼거리가 풍부한 문화지역으로 다시금 많은 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미술관이 있다. 일명 '롯본기 아트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세개의 미술관. 산토리 뮤지엄, 모리 미술관, 도쿄 국립 신 미술관이다.

●천상에 가장 가까운 모리 미술관

모리 미술관이 시작이다. 모리미술관은 롯폰기힐스의 중심 모리타워의 로열층(52~53층)에 자리하고 잇다. '천상에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2003년 문을 열었다. 모리 그룹 회장이 롯본기 힐즈 모리타운을 세우면서 예술의 향기를 불어넣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53층에 롯본기 모리 미술관을 개관한 것이다. '롯본기 아트 트라이앵글'의 시작이다.

모리미술관은 인간과 뚝 떨어진 고상한 문화 공간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도쿄에서 가장 세련된 패션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고 미술관의 건축적 아우라도 없고, 미술관 내 상설 전시관도 없다. 루브르의 '모나리자', 오르세의 '만종', 뉴욕현대미술관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전세계 유명 미술관에는 그 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스타' 미술품이 있게 마련인데 모리미술관에는 그 같은 최고의 걸작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모리미술관은 개관 이래 연중 최다 관객 수 기록을 갱신하며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새롭다. 모리 미술관만의 톡특한 운영의 묘다. 미술관이 입주한 모리타워 주변에는 일본의 주요 방송사 중 하나인 아사히TV 본사가 있다. 미술관은 이 아사히TV의 방송프로그램 배경으로 미술관이 자주 비춰지도록 장소를 자주 빌려줬다. 방송의 힘을 마케팅으로 활용한 것이다. 아사히TV의 아침 프로그램 진행자가 모리 미술관의 작품들을 배경으로 두고 문화계 소식을 전한다거나, 캐스터가 이슬이 촉촉히 내려앉은 모리 정원에서 날씨 예고를 전하는 방식이다. 출근 전 잠시 켜놓은 TV에서 그 모습을 본 회사원들이 그날 저녁 어김없이 모리 미술관을 찾는 현상이 반복됐다.

그렇게 몰려드는 직장인을 위해 미술관은 누구라도 늦은 밤까지 여유롭게 미술품을 감상하도록 미술관 개장시간을 오후 10시까지 늦췄다. 이 곳이 가장 붐비는 시간은 오후 7시. 퇴근한 직장인들이 하루의 스트레스를 떨쳐내기 위해, 혹은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예술의 향기 가득한 미술관을 찾아온다.

도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초고층 전망대(52층)와 미술관 입장권을 연계한 패키지 마케팅도 무시할 수 없다. 한 해 수백만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는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술관으로 관광객을 인도하는 택시 운전자와 호텔 종사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모리타워 앞의 거대한 거미 조형물 '마망'은 미술관의 소장품 중 가장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2010년 타계한, 세계적인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으로 해마다 4000만명이 다녀간다는 롯폰기힐스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공생의 철학 담긴 신 미술관

도쿄 국립 신 미술관은 모리 미술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글래스커튼 월(커튼처럼 드리워진 유리벽) 소재의 물결치는 곡선 건축이 눈을 사로잡는다. 상하좌우 볼록한 양감이 유리의 차가움을 깬다. 밤이면 실내 조명이 퍼져 도시를 밝히는 거대한 조명 같다. 거대한 유리건축인 데도 작고 정감 있는 주변과 잘 어울린다.

'일본의 건축거장'인 구로카와 기쇼의 작품이다.

'공생의 철학'이 건축은 물론 미술관 운영방식에까지 담겼다. 소장품 없는 미술관을 표방했다. 소장 규모로 미술관의 위용을 과시하는 대신, 시민과 예술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기획전ㆍ공모전 중심이며, 유료 전시회 외에는 입장료도 없다. 문턱을 낮춘 '열린 미술관'의 현장답게 도서관ㆍ카페ㆍ아트숍을 무료로 이용하는 이들이 붐빈다. 안팎이 소통하는 유리 소재가 '공생'과 '개방' 철학에 잘 맞는다.

물결치는 수평 건축물에 수직으로 내려꽂은 원추형 입구가 포인트다. 입구로 들어서면 또다시 두 개의 거대한 역원뿔 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말이 기둥이지 아래는 화장실, 위에는 카페가 있는 콘크리트 빌딩이다. 수직의 콘크리트 빌딩을 품고 있는 수평의 유리 건축이라는 반전의 쾌감이 즐겁다.

●일본 전통 문화 중심 산토리 미술관

산토리 미술관은 가장 늦게 이곳에 자리했다.

주류회사 산토리가 운영한다. 첫 개관은 1961년이다. 지난 2007년 롯본기 내 미드타운으로 이전했다. 이 곳은 기업 이익의 1/3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취지로 미술관 외에 박물관, 음악재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산토리 미술관은 일본 전통 예술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정적이 흐르는 다다미방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분위기다. 전통의상ㆍ회화ㆍ도자기ㆍ장신구 등이 솜씨 좋게 전시돼 있다. 전시품 수가 많진 않지만 컬렉션의 수준은 뛰어나다. 3∼6개월에 한 번씩 전시내용이 바뀐다. 산토리미술관은 회화, 도자기, 칠기공예, 유리공예, 직물염색 등 다양한 기획전을 선보이며 일본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을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아트 도쿄'를 만든 아트 트라이앵글

2003년 모리미술관에 이어 2007년 국립 신 도쿄미술관과 산토리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아트 트라이앵글이 만들어졌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문화예술 특구다.

처음에는 모리미술관을 중심으로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국립신미술관, 산토리 미술관 등 3곳을 예술거점으로 삼아 도쿄를 예술특구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은 도쿄도가 나서 대표적 문화특구로 만들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들 세 미술관은 도보로 10분 정도에 위치해 있지만 제대로 둘러 보려면 최소한 이틀 정도 투자해야 할 만큼 콘텐츠와 컬렉션이 풍부하다. 한 곳의 미술관 티켓으로 나머지 2곳의 미술관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아트로 세이빙(ATRo Saving)'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세곳의 미술관은 2007년부터 해마다 롯본기 아트 트라이앵글을 소개하는 지도를 제작해 관람객의 편의를 돕고 있다. 6개월마다 세곳의 미술관 전시를 안내하는 등의 관람객을 위한 작은 안내서다.

'아트로(ATRo)는 'Art Triangle Roppongi'에서 따왔다. 롯본기 아트 트라이앵글을 대표하는 캐릭터의 이름이기도 하다.

세곳의 미술관은 또 해마다 '롯본기 아트 나이트' 행사를 열고 있다. 2009년부터다. 롯본기 전역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로, 지난해에는 60만명이 넘게 찾는 등 도쿄의 대표적 문화행사로 자리잡았다.

모리아트센터 타키 나오미씨는 "아트 트라이앵글은 세 미술관이 자연스럽게 롯본기에 자리잡으면서 형성된 문화특구이지만, 지금은 도쿄도나 문화청이 결합해 '아트도쿄'라는 새로운 도시의 이미지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ㆍ사진=도쿄 홍성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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