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적이고 부당한 정치문화에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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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억압적이고 부당한 정치문화에 '일갈'
행위로 선보이는 광주퍼포먼스 미술
예술을 사회적 문제로 접근
투박하고 도전적 저항 예술
뉴미디어와 퍼포먼스 접목
  • 입력 : 2017. 09.15(금) 00:00
2016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발 김광철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정치적, 사회적, 예술적 분위기에 잠재하고 있던 삶과 예술의 거리를 없애고 창조적인 감성을 일상에 확산시키는 예술이다.

퍼포먼스 예술가들은 현실을 거부하면서 행위를 통해 예술을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한다. 백남준은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음악에서 출발하여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플럭서스 활동을 하였으며 피아노를 부수고 머리에 먹물을 묻힌 퍼포먼스를 개최한다.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등 기존 문화에 대한 저항과 공격을 담았으며 TV 등 매체 실험으로 확장시켜 미디어아트의 전개에 퍼포먼스는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한국미술에서 퍼포먼스의 시작은 1967년 12월 11일부터 16일까지 중앙 공보관 전시실에서 청년 작가 연립전시에서 <무>와 <신전> 동인들에 의해 행해진‘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다.

1970년대에 활동한 성능경, 이건용, 김구림 등의 작가를 퍼포먼스 1세대로 볼 수 있으며 관객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경향을 보였다. 1974년 성능경은 전시장 벽에 설치된 4개의 흰색 패널 위에 신문들을 걸어 놓고 한 달간 신문을 오려 신문에는 내용물들이 사라지한 이벤트는 1970년대 중반 한국 행위 예술계에 이벤트의 시작이다.

이 후 1980년대 활동한 퍼포먼스 작가를 2세대로 분류 할 수 있으며 음악, 연극, 무용의 총체적 예술을 지향한다.

1990년대 이후 활동한 퍼포먼스 작가들은 3세대로 분류되며 광주의 퍼포먼스의 예술가들은 3세대에 해당한다. 초기 광주 퍼포먼스에 있어 중요한 예술가는 박형주로 군복무를 마치고 종합예술그룹을 창립하고자 시도하여 퍼포먼스가 중심이 된 종합예술모임 노크를 결성한다.

노크의 초기 멤버는 대표 박형주를 포함하여 임순종, 김민, 전영숙, 장기욱, 전소영, 김광철 등이다. 1994년 겨울 노크의 창립전이 계림동 문예 장터에서 김광철의 주 연출로 개최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회원들이 15분 동안 행한 퍼포먼스는 난폭한 파괴를 위한 파괴로 관객이 소스라치게 놀라게 한 예술로서 폭력을 보여주었다. 극장 측에서‘이게 예술이냐’라는 거친 항의를 하였으며 2일 동안 열린 노크의 첫 발표는 서정적 예술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박형주가 이벤트를 만들고 임승렬과 김광철이 적극적인 활동을 한 노크는 1년 동안 퍼포먼스, 전시, 설치, 조각의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 8차례 발표전시를 개최하였다.

노크의 8회 전시는 서울 대학로 서경갤러리의 이벤트였다. 김광철은 물감과 종이를 사용하여 대학로 공원 바닥에서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박형주는 대학로의 대형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퍼포먼스를 하였다.

나무에 올라간 모습이 위험하게 보여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으며 김광철은 관리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업을 마쳤다. 박형주은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나무에 올라 애국가를 부르며 자신의 표현을 마치고 내려와 경찰차로 실려 갔다.

이러한 광주의 퍼포먼스는 투박하고 거칠고 도전적인 저항 예술 운동으로 기존 문화와 체제에 관한 저항하였다. 이러한 거친 퍼포먼스 예술 활동 후 노크는 임순종을 대표로 하여 임승렬, 김광철이 이끄는 3두 체제로 전환하여 발표전시를 개최 한다. 이 후 1997년 광주 예술의 거리에서 전시와 퍼포먼스를 개최하였다. 전시 작품 중 문재선의 성기가 노출된 누드사진과 김광철의 나무판에 칼을 역으로 꽂고 그 위에 여자인형을 올려놓은 작품이 문제가 되어 강제철거 당한 후 내부의견의 차이로 해체된다.

몸과 행위로 의미를 전달하는 전위예술인 퍼포먼스는 새로운 대안미술로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부터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초기 광주비엔날레부터 기존 미술체계에 저항한 퍼포먼스가 열렸으며 광주의 퍼포먼스 미술과 연관을 맺는다.

광주의 퍼포먼스 미술은 김광철이 추진한 1995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이벤트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이벤트의 관객으로 참여한 퍼포먼스 홍오봉과 김광철의 만남을 계기로 광주의 퍼포먼스 작가들은 전국적으로 활동의 폭을 넓히게 된다.

특히 2012년 제10회 전시인‘터전을 불태우라’에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 작품이 출품된다. 이 행사에 400여 명의 일반 시민들이 작품의 일부로서 퍼포먼스에 참여한다.

그리고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달콤길, 다섯 개의 정을 주제로 한 8개의 퍼포먼스 작품이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금남로, 전남대학교 등 광주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개최되었다.

광주 퍼포먼스들은 군사정권의 잔재가 남은 권위적인 문화, 제도를 해체하여 새로운 시대를 추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 거칠고 과감하게 행위를 하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이 계승된 광주 퍼포먼스 예술가들은 억압적이고 부당한 정치와 문화 제도를 거칠게 해체하였으며 이를 재조합한 행위를 하였다.

이러한 내용의 광주의 퍼포먼스는 국내외 다른 지역과 다른 독자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에도 기존의 문화정치 제도를 해체하는 사회비판적인 성격의 큰 흐름이 계승되고 있다.

이러한 광주만이 가진 과감한 표현은 광주만의 퍼포먼스로 현재까지 지속된다. 광주의 퍼포먼스는 뉴미디어 매체와 퍼포먼스의 행위가 상호 연결되어 새로운 미디어 퍼포먼스로 진행이 된다.

1990년대 후반 진시영, 신도원 등 광주의 미디어아티스트들은 퍼포먼스를 새로운 매체와 결합하였다. 진시영은 연출가가 되어 한국 무용을 퍼포먼스로 재현하였으며 미디어 기술로 LED 옷을 입혀주고, 자체 발광하는 LED의 잔상으로 작품을 나타냈다.

미디어와 퍼포먼스의 결합은 2010년 미디어아트를 전문으로 하는‘솔라 이클립스’ 창립전부터 본격화되었다. 미디어예술가 신도원이 VJ(Video Journalist)로 음악과 디지털 영상을 제작하였으며 김광철, 펑크파마(임순종) 등 퍼포먼스들이 공연을 하였다.

광주의 대표적인 미디어 퍼포먼스 펑크파마는 기계와 인간이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인간이 만들어진다는 현대와 미래사회를 알리는 행위예술을 하였다. 그리고 김광철은 온몸에 전구 등 기계 장치를 둘러 인간의 몸과 기계가 교환과 확장을 하는 사이보그가 됨을 보여 주었다.

몸에 각종 기계장치를 결합한 사이보그 퍼포먼스에서 몸은 확장되어 새로운 매체와 결합한 포스트휴먼을 보여주었으며 2016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에서 미디어아트 퍼포먼스가 개최된다.

현재 광주에서 활발히 활동한 퍼포먼스는 김광철, 펑크파마(임순종), 나사박(박관우), 문재선, 문유미 등이다.

이들은 광주대인시장, 예술의 거리, 광주시립미술관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특히 김광철은 4대륙 23개국에서의 초청 공연을 개최한 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이다.

2012년 김광철이 총감독으로 궁동예술극장, 광주비엔날레, 대인예술시장 등 광주 각지에서 16개국 50여명의 작가가 참여한 국제미디어 퍼포먼스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김광철은 2015년 대인예술시장에서 세월호의 아픔을 표현하였으며 2016년‘한국·대만현대미술전서 퍼포먼스와 영상을 결합한 인간의 욕망과 허무한 삶에 관한 퍼포먼스를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보여주었다.

전위예술 퍼포먼스가 전개된 광주에서 기존 문화에 대한 반발이자 삶으로 예술을 가져오고자 한 전위예술의 상징 존 케이지의 음악연주회와 존 케이지, 백남준을 추모하는 퍼포먼스가 개최된다.

2012월 7월 20일 백남준 생일날 플럭서스 운동을 전개한 음악가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 미술가 백남준 탄생 80주년을 맞아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퍼포먼스가 홍신자의 기획으로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

홍신자는 존 케이지, 백남준과 함께 예술을 생활 속에 가져다 놓은 플럭서스 운동을 전개한 세계적인 무용가이다.

음악 공연은 홍신자가 존 케이지가 작곡한 <4분 33초>의 악보를 적고 그대로 재현한 음악공연, 존 케이지와 백남준을 추모하는 퍼포먼스, 400여명의 관객과 함께 하는 행위예술로 진행되었다. <4분 33초> 연주는 파리 앙상블 오푸스 상임지휘자 박지용이 지휘를 하였으며 전남대학교 음악학과 문현옥 교수가 피아노 연주를 하였다. <4분 33초>의 1악장은 33초, 2악장은 2분 40초, 3악장은 1분 20초의 시간 동안 피아노의 뚜껑을 열고 침묵을 지키다 다시 뚜껑을 닫는 행위가 전부였다.

악보는‘조용히(TACET)’라는 악상만이 쓰여 있으며 관객은 음악 대신 자신들이 내는 소음, 의자 소리만을 들었다.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온갖 소음마저 음악이 된다는 음악의 범주를 생활로 넓힌 연주회였다.

이 후 일상에서 보이는 의미 없는 돌을 미술관에 온 400여명의 관객들이 두드려 존 케이지와 백남준의 예술세계에 대해 경의를 보이고 추모하였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2012년 7월 20일 예향, 의향 광주에서 새로운 예술적 혁신을 이룬 대가의 공연과 이를 추모하는 퍼포먼스가 열렸다.


대중과 소통 + 예술의 조화 '플란서스 운동'

플럭서스 운동은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기존의 미술에 반발한 국제적인 미술 운동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삶과 예술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플럭서스는 음악과 시각예술, 무대예술, 시 등 다양한 예술 형식을 융합한 통합 예술 개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개념미술(Conceptual Art), 행위예술(Performance) 등 현대 예술 사조를 직접 탄생시키거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플럭서스 운동을 주도한 서양 전위음악의 선구자 존 케이지는 “예술가란 혁명적 유산의 선구자로 기술자(과학자)들과 혁명적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기술자들과 협력을 통해 산업사회의 기술 노예적 요소에 저항하여 사회질서의 변화에 기여하였다.”고 예술과 기술의 협력을 통한 새로운 혁명을 꿈꿨다. 그리고 “인류에게 전쟁의 파괴와 환경오염 등으로 나타나는 해로운 기술을 예술가들은 인식하고 이를 반대하였다.”고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를 주장한다.

플럭서스 예술가 요셉 보이스는 예술품이 복제되어 여러 사람에게 보여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보이스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 주장하고 사회적 활동으로 조각이 대중에게 선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남준은 1958년 독일에서 존 케이지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선(禪)불교, 신(新)음악에 관한 관심을 전위미술로 나타냈다. 백남준은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플럭서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존 케이지가 백남준에게 새롭고 혁신적인 상상력을 주었으며 백남준에 의해 전개된 새로운 예술 형식이 가능하게 한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언급한다.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사ㆍ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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