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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떠났다가 오는사람 모두를 품어주더라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포구 풍경
선구ㆍ조선소ㆍ포구 모두
하나의 마을이자 세계
망망대해를 보며 생활하다
  • 입력 : 2017. 09.15(금) 00:00
여객선에서 바라본 목포항 전경.

포구가 하나의 세계라면

조선소 풍경은 남도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하다. 이 풍경들은 출어고사나 기공식 이후 고기잡이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포구에서 젓중선을 제조하고 나면 이 선박은 서남해 바다에 나가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포구와 바다를 가로지르는 이 풍경은 크고 작은 선박들로 바뀌었을 뿐 변함이 없다. 고장 난 배들은 다시 포구로 실려와 수리하게 된다. 절기에 따라서 고기가 어디로 먹는가(물고기들이 군집을 이루는 형태를 선원들은 이렇게 표현한다)에 따라 조선소, 수리소, 선구점이나 철물점 등의 운영이 활성화되거나 침체되거나 한다. 물고기 잡이와 포구의 민속풍경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선구점, 조선소, 포구, 모두 하나의 마을이고 하나의 세계다.



떠나고 돌아오는 고기잡이배의 풍경들

고기잡이 풍경을 대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배를 구성하는 요소들, 그물 등 어구를 구성하는 요소들,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어판장과 고기를 팔고 사는 재화들로 구성되는 조합 및 은행 등이 부가된다. 이 세 가지를 하나로 합하면 어선, 혹은 상선이나 여객선 등의 선박으로 집산된다. 하나의 선박 혹은 하나의 선구점이 작은 세계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다. 어선 하나는 포구를 관통하는 모든 일상사와 생활사가 집적되어 있는 캡슐이다. 어선 한 척에 선창의 골목골목에 산재되어 있는 모든 콘텐츠들을 종합적으로 집산해놓았기 때문이다. 수개월씩 생활하는 집이요, 마당이요, 삶의 터전이 되는 바다밭이자 바다들판이다. 고기잡이를 마친 한 척의 어선은 다시 목포의 선창으로 돌아와 골목골목에 위치한 선구점 등의 가게로 분해된다. 엔진은 엔진대로 그물은 그물대로 해당 가게로 옮겨진다. 심지어는 작은 볼트 하나까지 실핏줄 같은 가게들로 분산된다. 기력을 다한 늙은 배는 폐선 되어 일생을 마감한다. 쓸 만한 몸둥이들은 잘게 잘리고 붙여져 다른 선박에 부박되기도 한다. 새로 짓거나 고쳐진 배들은 또 다시 출항을 준비한다. 포구는 그렇게 하나의 세계가 떠나고 돌아오는 공간이다.



포구는 고기잡이 풍경을 구성해온 타임캡슐

조선소에는 완성되거나 수리되는 배가 있다. 그물을 만드는 공장이나 공간에는 새롭게 개발되거나 수리되는 그물이 있다. 관련한 각종 소품들이 있다. 배는 풍선시절의 풍선이나 닻 등의 목재 소품으로부터 근대 이후 엔진과 에프알피 등의 구성요소들로 변화되어 온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개소나 일반 가게 등지에는 선원과 선단을 구성하는 선주, 선장, 선원들이 있다. 마치 타임캡슐처럼 추적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나 할까. 그물은 무명실이나 칡줄을 사용하던 전통시대로부터 나일론실이나 납덩이를 넣어 만든 줄들로 변화되어 왔다. 다양한 어종의 고기잡이 방식이 변화되어 왔음을 그물을 통해서 추적된다. 선원 또한 사공이라 부르던 선장 및 선원들로부터 서남해 각 도서지역 어민들의 유입, 나아가서는 외국인근로자를 상용하는 형태들로 변화되어 왔다.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공간이 포구며 조선소며 선구점이다. 그물 공장이며 선원조합이다. 목포를 예로 들면 앞선창, 뒷선창, 삽진포구 등 세 군데 포구 공간이 핵심이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련의 활동들이 포구의 민속 문화를 이룬다. 내가 포구의 민속 혹은 선구점의 민속이라 이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목포 선창에 가면 보이는 것들

안강망, 유자망 등은 앞선창에 있다. 통발, 낚시, 주낙 등의 중소형 어선과 그물들은 뒷선창과 삽진 소형포구에 있다. 앞선창의 어구는 안강망과 유자망이 주류를 이룬다. 근래 이후 삼학도 풍경은 앞선창으로 옮겨 왔다. 지금은 어선들이 정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학도를 중심으로 마리나항으로 개발 중이다. 서산동에서 만호동에 이르는 앞선창과 목포 역전에 이르는 원도심의 골목골목에는 어시장은 물론 고기잡이와 관련된 가게들이 포진해 있다. 선구점이 그 중심이다. 물고기를 저장하거나 판매하는 시장들도 발달해 있다. 선창의 주요한 풍경은 바로 이 시장이다. 바다로부터 들여온 물고기들이 크게는 수협 어판장을 통해 도시의 곳곳으로 혹은 전국으로 배달된다. 작게는 곳곳의 시장을 통해 경매나 도매 및 소매된다. 생활의 풍경들이 오밀조밀 펼쳐진다. 여관, 식당, 술집, 다방들이 즐비하게 포진해 있다. 밤 문화를 향유하는 오락 휴게 공간의 풍경들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바다에서 생활하고 돌아 온 선원들이 휴식하고 향유하는 공간들이다. 선창의 중요한 풍경 중 하나다. 마리나항이 완성되면 보기 힘든 풍경들이다.



조선소에 가면 보이는 것들

조선소는 앞선창, 뒷선창, 삽진 포구 쪽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개항시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앞선창의 비중이 커진다. 삼학도와 뒷선창, 해안을 둘러싼 시내 외곽으로 전통 목선을 무던 장소로부터 현재의 에프알피 조선소까지 나아가서는 현대삼호 조선소와 그에 종속된 하청업체 조선소들, 개별적인 중형 조선소들까지 풍경이 이어진다. 목선에서 철선으로 다시 에프알피 선박으로 바뀌었으므로 조선소 또한 목선 제작소에서 철재를 다루는 제작소로 변화했다. 조선소는 배를 짓기도 하지만 배를 수리하는 공간을 수반한다. 철선이라도 목재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목재나 목공소가 필요하다. 뒷선창에서 삽진 포구에 이르기까지 목공소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근자에는 순수하게 목선만을 만드는 곳은 없어졌다. 목선을 다루는 곳은 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복원하거나 삼학도 마리나에서 요트를 제작하는 정도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선원들이 만들어내는 포구의 풍경들

선원들도 포구의 중요한 민속풍경이다. 선구점이나 피복(선원들 의류), 잡화가게 등이 앞선창에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다. 이들 가게들이 선주, 선장, 선원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선원들 필수품 중에서 작업복(토시, 물옷, 비옷, 장화, 장갑 등)을 단골 가게에서 구입한다. 고무장갑, 면장갑은 선내에서 둔하다고 해서 잘 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원을 새로 채용하면 기본적으로 제공해주는 용품들이다. 선원들 담배도 필수품에 속한다. 만화가게, 담배 가게의 풍경도 포구의 한 풍경이다. 배에서 먹고 자야 하기 때문에 선원들 이불도 필수다. 고기를 잡는 시기도 매번 다르고 선단도 새롭게 꾸려지기 때문에 단기간, 장기간 등으로 나누어 노동하는 선원들이 포구에 밀집되어 있다. 잠자리와 먹거리, 놀거리 등을 위한 가게들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관이나 여인숙, 식당, 다방 등의 가게들이 운영되는 이유다. 빠질 수 없는 풍경 중의 하나는 술집이다. 목포시의 정책방향에 따르면 앞선창을 마리나 항으로 개발하고 모든 어선들은 뒷선창으로 정박하게 한다고 한다. 어딘가 이 풍경들을 잡아놓을 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물관이니 전시관이니 하는 공간을 포함한 이 풍경들이 살아 숨 쉬게 하는 그런 공간 말이다.



포구, 어머니 혹은 고향의 다른 이름

목포 포구에는 가을조기잡이 배들이 분주하다. 지금은 흑산도, 홍도, 추자도, 제주도 등지의 원해가 조기잡이의 적지다. 섣달이 되면 동중국해, 남중국해까지 내려간다. 옛날에 비해 아주 멀리 나가지는 않는다. 한번 나가면 열흘 정도 조업을 한다. 한사리를 보는 것이니 보름을 바다에서 보내는 셈이다. 풍선 시절에는 3개월이고 4개월이고 어류의 회유가 끝날 때까지 바다생활을 했다. 망망대해를 보며 생활하다 이윽고 돌아오는 공간이다. 파도와 싸우고 바람과 싸우며 때때로 죽을 고비를 넘겨 돌아온다.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다. 포구는 어머니 혹은 고향의 다른 이름이다. 언제든 떠나지만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불행이 고향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추석에 고향을 찾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포구로 돌아오는 배들을 본다. 부르터진 손을 싸안고 거처에 드는 선원들을 본다. 외국인 선원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아마도 고향으로 송금할 것이다. 우리 부모 선배들이 서울의 공장이며 중동이며 물설고 낯선 땅에 나가 그래했듯이. 포구의 풍경들이 내게 전해주는 것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바람이 차다. 오늘 저녁에는 선구점 거리로 돌아가 홍어에 탁주 한잔 기울여야겠다. 포구의 가을이 깊어간다.




남도인문학 TIP 목포 뒷선창~삽진포구까지 풍경들

뒷개라 부르는 뒷선창도 앞선창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박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고 따라서 부대용품인 그물이나 생활도구들이 달라질 뿐이다.

선박이 작고 그물이 다르니 응당 대상이 되는 어종도 다르다. 앞선창이 중형이나 대형 어선들이 있다면 뒷선창은 중형보다는 소형 어선들이 정박하는 곳이다. 선박은 크기가 비슷한 것끼리 정박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소형 선박을 앞선창에 정박시켜놓으면 큰배들의 출렁임 때문에 배가 손상되기 쉽다. 앞선창이 중형배를, 뒷선창이 소형배를 정박하는 데 유리한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선외기라 부르는 선박들이 뒷선창에 편중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삽진 산단 안쪽으로 작은 포구가 있다. 중형 조선소와 각종 어구, 어망 제작소들이 포진해 있으므로 선구들이 집중되어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새우배들이 사용하는 선구들이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공간이 있고 그물만을 전문으로 하는 제작소나 수리소 등의 공간이 있으며 기계나 철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간들도 있다. 앞선창에 도매나 소매로 시장이 발달해 있다.

삽진포구는 규모도 작고 소형어선들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낙지 직매장 등이 운영된다. 신안군 각처에서 잡아온 낙지를 경매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삼마이 그물, 낙지주낙, 외마이 그물, 통발 등의 어구를 다루는 배들이 정박한다. 중형이나 소형의 어선들은 게통발, 꽃게통발, 아나고, 새우 등을 잡는 그물과 어로도구들이 실려 있고 이들을 다루는 가게들이 빼곡하게 포진되어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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