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층층 쌓아올린 신묘한 보랏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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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사랑 층층 쌓아올린 신묘한 보랏빛깔
상큼한 향ㆍ우아한 자태 '가을여인'인가
가을여인의 사랑 탑(塔) '층꽃'
  • 입력 : 2017. 10.20(금) 00:00
'층꽃풀' '층꽃나무'라고도 부르는 '나무 같은 풀꽃'. 꽃에서 맑고 상큼한 향기가 있어 찾아오는 꿀벌의 향연이 장관이다.

'쪽빛하늘이 투영된 쪽빛바다에 쪽빛 닮은 보랏빛 꽃/한층 한층 신묘한 사랑을 층층이 쌓아 가는 구나/층층이 피어 오른 사랑 탑은 가을빛 가득 안고서/둥글둥글 몽글지는 꽃송이에 상큼한 향기 그윽하다/가을빛은 꽃송이에 산산이 부셔져 찬란히 일렁인데/시원한 바다 바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구나/쪽빛 정성을 모아 기도하는 가을여인의 마음을 아는지

구름 속에 숨어있던 바람이 꽃과 가슴 속에 찾아 왔네'

나무에서 피는 꽃 같은데 줄기는 가냘프다. 풀꽃 같은데 강건하다. 나무인가 풀인가 경계가 모호 하다. 쪽빛을 닮은 보랏빛에 층층이 피는 풍성한 꽃에 상큼한 향기는 고혹적인 마편초과 '층꽃'이다. 줄기는 목질화 되고 밑 부분은 나무지만 줄기가 겨울에는 말라 풀 같아서 초본(草本)과 관목(灌木)의 중간식물인 아관목(亞灌木)이라 한다. '층꽃풀' '층꽃나무'라고도 부르는데 '나무 같은 풀꽃'이라고 하겠다. 난향초(蘭香草), 야선초, 구층탑이라고도 한다. 꽃은 줄기 겨드랑이에서 양쪽으로 뭉쳐서 나오는데 한쪽이 30~35개 내외이니 70여개의 꽃송이가 둥글게 나왔다가 꽃송이가 다시 피어 암술과 수술이 나온다. 꽃에서 맑고 상큼한 향기가 있어 찾아오는 꿀벌의 향연이 장관이다. 잎은 상큼한 향기가 일품이고, 잎과 꽃송이마다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는 보이지 않으면서 느끼는 아름다움의 결정체로 가을을 장식한다.

필자는 추석 연휴기간 동안 층꽃을 만나러 통영 매물도 '해(海)품길'을 다녀왔다. 산에서 만나는 층꽃보다 배를 타고가며 바다를 보면서 감상하는 묘미는 색달랐다. 사방을 둘러봐도 각기 다른 풍광이다. 하늘은 열려 있고 바다바람은 자유롭게 다가왔다. 마음이 명징(明徵)해 자연과 어우러진 향기를 안아봤고 느꼈으며 보았다.

구름의 훼방 때문에 하늘과 바다가 하나 되는 것을 못 봤다는 아쉬움 보다 그 경계를 알 수 있어 차라리 편해졌다. 눈빛은 맑아지고 가슴은 시원해진 덕택에 자연을 품을 수 있었다. 지친 몸을 향기에 누이고 바람에 실리어 스트레스를 풀고 힐링의 세계로 다가가니 신선이 사는 봉래(蓬萊)섬에 오는 듯 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꽃의 특성을 제대로 발현 한다고 한다 사람의 DNA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러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연을 닮은 사람들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리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기쁘고 좋은 것은 선하기 때문이리라.

양지바른 바위위에서 어렵게 핀 층꽃을 만났다. 하늘과 바다의 쪽빛을 닮은 꽃이 숭고하다. 쪽빛은 햇빛에 부서지며 보랏빛으로 보이는 신묘한 빛깔이다. 키는 작지만 꽃송이는 풍성하다. 흙도, 물도 부족하고 양분도 충분하지 않다. 바람은 세고 거칠다. 이러한 험한 바닷가 거친 환경에 자리 잡은 연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았기에 이렇게 고운 꽃을 피웠을까. 찬찬히 살펴보면 살아가는 지혜가 대단함을 알 수 있다. 햇빛을 좋아하니 햇빛을 잘 보려고 큰 나무가 없는 벼랑가 바위위에 터전을 잡았다. 키가 크면 바람에 쓰러지니 키를 낮춰 옆으로 서로 잡고 엉기어 비바람을 이겨낸다. 물은 비가 오면 충분히 받아먹고, 건조하면 바위에 응결된 이슬과 잎 사이로 스쳐가는 안개의 물 알갱이를 포집해 견디고 살아간다. 겨울을 나기위해 줄기는 말라지고 밑부분 잎만 남겨서 봄을 기다린다. 대단한 생존전략으로 한낱 미물의 지혜에 감탄한다.

하늘의 찬란한 빛과 바다에 출렁이는 쪽빛을 닮은 보랏빛 꽃 속으로 들어가 봤다. 꽃송이에 머물다간 흔적, 아! 바람이 왔다가 갔구나. 바닷바람이 지나갔기에 세 가지 같은 색이 됐나보다.

하늘을 부여안고 바다를 바라보며 층층이 쌓아올린 탑에는 고깃배를 타고 나간 어부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소원과 기도소리가 들린다.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녀,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도 같은 마음 이였으리라. 하나 둘 층층이 피는 꽃은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순리와 질서를 알게 한다. 만백성들에게 계층없는 평등한 세상과 둥글둥글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다.

필자가 층꽃을 보려고 했던 섬은 사실 무인도 '대덕도'였다. 학술답사 외엔 입도허가가 나지 않아 아쉬움에 매물도로 방향을 틀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 야생화는 어떠한 모습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은 꿈은 사라졌다. 동행한 지인은 아쉬움을 지난해 사진으로 달래 줬다. 매물도 보다 풍성하고 선명한 색채를 보니 아쉬움이 더욱 커진다. 자연 그대로의 생활에서 피어난 꽃이 더 아름답고 곱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줬다.

꽃이 지고나면 종자가 맺히니 서리가 오기 전 가지를 베어 그늘에서 말리면 종자가 떨어진다. 종자를 종이봉투에 넣어 보관 후 3월 하순께 파종하면 9월 하순부터 향기 가득한 꽃송이를 만날 수 있다. 여름에는 잎을 따서 문지르면 나는 상큼한 풀향은 덤이다. 중부권 화단에는 겨울에 동사 할 수 있으므로 화분이나 꽃 박스에 심어 베란다에서 월동시켜야 다음해 꽃을 볼 수 있다. 일년초처럼 종자를 받아 봄마다 프러그판에 파종해 본엽 4~5매에 옮겨 심으면 가을에 풍성한 꽃을 감상 할 수 있다.

꽃말은 '가을의 여인'이다. 귀족색인 보랏빛 꽃, 차분하고 상큼한 향기, 고결하고 우아한 자태는 아름다운 가을여인이 된다. 가을빛과 소슬한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꽃송이에 쪽빛과 보랏빛이 어우러진 모습이 신묘하다.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위로 피어오르며 하늘을 향해 피는 꽃. 층꽃은 사랑탑을 쌓으며 기도하며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가을의 여인'을 닮았다.


고마워서 '고마리'… 시냇가 지천으로 핀 '추억의 야생화'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루에 얼마나 할까. '감사가 넘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러할까.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에 동의 할 수 있을까.

행복의 비결은 내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 내 생각이 얼마나 집착없이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은 비움이고 여유이며 자유로움이다.

이 꽃 역시 고마움을 표시하는 말로 이름과 의미가 같아서 '고마리'다. 실개천에 자라면서 물을 깨끗하게 한다고 고마우리 고마우리 하다가 고마리가 됐다고 한다. 작은 꽃들이 고만고만 하다고 고마리, 꽃이 너무너무 많다고 이제 고만 피라 고만 피라 하다가 고마리가 됐다는 등 이름유래가 많다.

여뀌과의 일년초로 꽃은 줄기 끝에 10~15개씩 모여서 둥글게 나오다 다시 5mm정도 작은 꽃이 핀다. 꽃은 흰색, 끝이 붉은색 등이 있으며 오각형의 앙증스런 모습이다. 개울, 냇가 등지에 무리지어 피며 지금 한창 꿀벌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실개천에 무리지어 서식하므로 홍수 시 개울을 보호하고, 윗마을 개울에서 빨래와 세수 등으로 오염된 물은 아랫마을로 가면서 고마리, 물억새 등 수염뿌리에 흡착되고 산소도 들어가 깨끗한 물로 정화된다. 탁월한 수질정화식물 덕분으로 옛날엔 상하수도 설비가 완비되지 않아도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다.

어릴 적에는 '물꼬마리'라고 배웠다. 개울 물가에 잎이 연하고 많아서 깔(꼴)로 베어가니 아버님가 "이 풀은 물이 많아 소가 설사하고, 퇴비를 해도 녹아 좋지 않다"며 "다음부터는 베어오지 말라"고 하던 기억이 난다. 여름철에는 긴요하게 사용했다. 긴 뿌리가 나와 있고 서로 엉겨있기에 뚝딱 잘라 개울 돌둑 사이에 놓으면 금방 물이 가득차 '즉석 풀장'이 된다. 깨복쟁이 친구들과 멱 감으며 장난치다 보면 더위도 잊었다. 돌둑 밑에 물이 줄면 가재, 붕어도 잡고 다슬기도 줍던 어릴적 추억을 함께한 '추억의 야생화'이기도 하다.

꽃말은 '꿀의 원천'이다. 작은 꽃들이 많이 피어 모두가 꽃 천지다. 한번 핀 꽃송이가 다시 피어나니 꿀 천지요 개울가 마다 피었으니 꿀벌들이 꿀을 가져가기에 바쁘다. 가을이 깊어간다. 고마운 고마리는 그렇게 2017년의 가을을 장식하고 있었다.

'구름 살 비집은 햇살에 따라/소연한 바람이 사르르 불어오니/옹알옹알 꽃 소리 합창 하누나/스르렁 스르렁 흐르는 개울물

구름 걷고 얼굴 내민 햇살이/꽃잎에 투영되어 붉었도다.'


색향미 연구소장ㆍ경남과기대 겸임교수 정연권의 야생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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