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고려인 17만명 중앙아시아 독립국 중 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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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17만명 중앙아시아 독립국 중 최다
3부 시베리아 횡단기 ● 우즈벡 타슈켄트로
고려인 3세 우슈토베 지방의원
황무지 개간한 '노력 영웅'
윤 세르게이 대한 강한 자부심
  • 입력 : 2017. 11.17(금) 00:00
동행열차 탐방단과 고려인 2세들이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한국인 식당에서 열린 만찬 중에 손을 맞잡고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배현태 기자 htbae@jnilbo.com
바스토베 언덕의 고려인 묘역을 뒤로 하고 일행은 무거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한낮의 열기는 뜨거웠다. 중앙아시아에 오니 여름이 실감났다. 그러나 바스토베 어디에도 그늘은 없다. 눈을 돌려 보이는 모든 지점 어느 곳에도 제대로 된 나무 한그루 풀 숲 하나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사람이 살았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그저 황량한 사막과 별다름 없는 허허벌판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 바스토베의 하늘을 올려다 봤다. 눈이 시릴 정도로 하늘이 푸르렀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우슈토베 시내였다. 우슈토베는 8편에서도 잠깐 소개했지만, 알마티 주의 수도다. 허나 실제로는 전남의 한 시골 읍보다 못한 환경을 갖고 있다.

그나마 반가운 것은 이곳의 지방의원 중 한 명이 고려인이라는 점이다. 김 에드아루드(44) 의원. 그는 고려인 3세로 그의 할아버지가 우슈토베로 강제 이주된 1세대다.

김 의원은 대학 졸업 후 1997년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해 2009년 우슈토베 시장에 임명됐다. 처음에는 정부에서 임명을 받아 임기 4년의 시장을 지냈고, 2013년 선거를 거쳐 지방의원으로 선출됐다. 김 의원은 고려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이곳에 정착한 고려인은 인근 강물을 끌어다가 황무지를 개척해 논농사를 전파했고, 구 소련시절 '노력 영웅'으로 칭호를 받은 윤 세르게이(우슈토베에는 윤 세르게이의 이름을 딴 길이 있다)를 배출하는 등 지역에서도 존경받아왔다. 고려인이 이곳 시장을 맡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다만 그는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 "소비에트 정권 시절 태어났다. 당시에는 고려말(한국어)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러시아말만을 사용해야 했다" 김 시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는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고려인이기 때문에 민족어를 알아야한다.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환영인사와 탐방단의 답사가 이어지고 오찬을 나누는 시간이 됐다. 도시에서 고려인 중 가장 연장자 몇분이 초청돼 자리에 앉았다. 90세가 넘어서인지 잘 들리지도 않고 말하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왜소한 그들은 전남의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촌부들이었음에도, 강인한 인상이 주름살 뒤에 숨겨져 있는 듯 했다. 그들의 눈빛이 그러했다.

질곡의 역사를 그대로 견뎌온 고려인 2세들. 이 중에서는 우슈토베 행 강제 이주 열차에 올라탄 이들도 있었다. 살아있는 역사인 셈이다. 좀 더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워낙 고령인지라 대화가 많이 끊겼고 쉽게 지쳤다. 질문이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는 것 같아 더 이상의 취재는 보류했다. 식사를 마친 후 일행은 원동마을로 향했다. 원동마을은 이곳 우슈토베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그해 겨울을 버티고 살아남아 지역민들과 어울려 살면서 만든 곳이다. 고려인 2세들이 고향(블라디보스토크)을 그리워 만든 곳으로 행정구역은 아니고 고려인을 상징하는 마을이라고 한다. 학교가 하나 있는데 예전에는 고려인만 다녔으나 지금은 인구가 줄어 이곳 아이들도 같이 배우고 있다.

일행이 마을을 둘러 볼 동안 필자와 배현태 사진기자는 현지 마감 때문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휴대폰의 3G 안테나도 잘 안터지는 곳에서 기사를 쓰고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보내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올 수 밖에 없다.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시를 내리는 이유를 잠시 고민했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40분 남짓이었다.

원동마을을 떠나 특별도시인 알마티로 향했다. 5시간 정도가 걸렸다.

지나온 길을 간단히 정리하면 길게 굽힘 없는 도로는 끝이 없었고 왼쪽 오른쪽 모두 황량하며 광대한 벌판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5시간의 여행 동안 눈길을 끈 것은 인공호수 하나 뿐이었다. 캄차카이 호수로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크기의 호수다. 중국쪽에서 내려오는 일리강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로 호수 주변엔 휴양지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바다에 있는 리조트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곳이다.

이윽고 특별시인 알마티에 진입했다.

만찬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예향'이라는 식당에서 진행됐다. 이곳 사장은 광주 방림동 출신이다. 타지에서 한국인, 그것도 동향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식당 주인이니 그 맛은 고향의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실제로도 만찬에 나온 음식은 불고기, 생선찜, 배추김치, 전, 가지나물, 겉절이 무침 등 남도 음식들이 주를 이뤘다.

이날 저녁 만찬자리에는 고려인 2세들이 참석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모아서 할 예정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만찬이 끝나고 숙소인 호텔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음날이면 일행들은 한국으로 돌아간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만큼 이번 출장은 고되고 피곤했다. 심신 모두 상당히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은 돌아갈 수가 없다. 우리는 고려인의 과거만을 보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한 것은 고려인의 과거와 오늘, 그것을 바탕으로 한 미래였다. 이런저런 생각 중에 어느새 기절하듯 잠에 떨어졌다.

아침이 밝자 부산해졌다. 10여일 동안 고락을 같이했던 일행들과 작별을 하고 공항으로 달렸다. 알마티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까지는 2시간이 채 안걸렸다. 짧은 거리였지만 무례한 중국 승객 때문에 괴로운 시간이었다. 비행기 여행 중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영화를 보는 것 까지는 좋은데, 이어폰을 끼지 않고 볼륨을 크게 올려 놓은 것이다. 더 짜증이 치밀었던 것은 그 와중에 그는 자고 있었다. 승무원이 주의를 줄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지나쳤다.

고통스러운 비행이 끝나고 공항에 내려섰다. 시간은 오후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햇볕이 강렬했다. 한국과 시차는 4시간. 이곳이 더 늦다. 한국은 오후 6시께일 것이다.

사전에 이야기가 된 통역 겸 가이드와 운전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역의 이름은 샤샤, 운전사는 이넘이었다. 둘다 남자였고 샤샤는 올해 40살이며 이넘은 30살이었지만 둘은 친구라고 했다.

샤샤는 "우즈벡에 이제 고려인이 많이 없어서 같은 나이대의 친구는 없어요. 그리고 친구 사이에 무슨 나이가 필요하나요"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타슈켄트 시내 전경을 바라본다.

타슈켄트, 시(市)의 정확한 역사는 불분명하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1~2세기라고 한다. 7~8세기에는 투르크계 문화와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으며 10세기에는 사만왕조가 지배했다. 뒤에 몽골의 지배로 바뀌어 차가타이 한과 티무르의 지배를 받았다. 16세기부터 남하하는 우즈베크인의 셰이바니 왕조 치하에 들어갔다. 1865년 러시아군이 점령해 1867년부터 투르키스탄 총독부가 설치됐다. 그 후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지배의 중심지가 됐다. 1917년 중앙아시아 최초의 혁명 소비에트 자치공화국의 건국이 선언됐다.

우즈베크어(語)로는 토슈켄트(Toshkent)라고 불린다. 톈산 산맥에 있는 오아시스에 위치하고 시르다르야강(江)의 지류에 접한다. 아시하바드 철도ㆍ오렌부르그 철도와 그 밖에 두 지선(支線) 철도가 집결되며 톈산 산맥으로 가는 자동차 도로의 기점이기도 하다. 또한 모스크바ㆍ트빌리시ㆍ바쿠ㆍ알마타ㆍ부하라ㆍ뉴델리 등지로 가는 공로(空路)가 있다.

중앙아시아 최대의 공업도시로서 시(市)의 남동쪽에 러시아 최대의 면직물 콤비나트와 '타슈켄트 농기(農機)' 외에 볼베어링ㆍ케이블ㆍ컴프레서ㆍ가스산업용 기계ㆍ약품ㆍ향료ㆍ과일ㆍ식육가공 등의 공장이 있다. 문화시설로는 공화국 과학아카데미ㆍ레닌대학(1920년 창설) 등 20개의 교육ㆍ연구기관과 알셸나보이 기념극장(민족극이나 민족무용 등을 상연)ㆍ하므자 극장ㆍ민족역사박물관이 있고 교외에는 국민경제 박람회(상설)ㆍ지진관측소 등이 있다.

그리고 이곳 타슈켄트의 주민 40%가 우즈베크인, 30%가 러시아인, 그 밖에 카자흐인ㆍ타타르인ㆍ티지크인이며 고려인도 3% 가량을 차지한다. 우스베키스탄 전체에서 고려인의 인구는 1%인 17만5000명 정도다. 이는 중앙아시아 독립국을 통 틀어 가장 많은 숫자다. 아울러 광주에 있는 고려인마을에 거주하는 4000여명의 고려인 중 3000여명이 이곳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다.

즉,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고려인들의 삶이야 말로 그들의 현주소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10편에서 계속)

노병하 기자 bhro@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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