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기]고려인 4세는 여전히 국내 생활 90일이면 추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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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기]고려인 4세는 여전히 국내 생활 90일이면 추방된다
고려인, 이제 우리가 품자
3개월 단기방문비자만 허용
취업해도 비행기값 대느라 허덕
  • 입력 : 2017. 12.10(일) 00:00
우즈베키스탄 김병화 박물관 내부와 외부에 설치된 그의 흉상(아래 왼쪽). 김병화는 강제이주 후 탁월한 농업 실적을 올려 두 차례나 노동영웅 훈장을 받았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전남일보 취재진이 작성한 박물관 방명록. 배현태 기자 htbae@jnilbo.com
2주에 걸친 시베리아 횡단 대장정의 끝은 고려인의 영웅 김병화 박물관이었다. 국내에는 좀처럼 소개되지 않는 그곳을 보면서 고려인들의 저력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그들이 보여 준 맨몸의 영광은 한국인 특유의 끈질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역시 우리 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귀국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12월4일.

광주시청 로비에서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울려퍼졌다. 그 옆으로 낯선 땅의 익숙한 얼굴들이 사진으로 걸려있다.

전남일보가 주최하고 광주시와 전남도, 고려인강제이주8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사)문예교류진흥협회가 후원한 '동행열차 고려인의 길을 걷다' 사진전의 모습이다. 호남필하모니 공연과 함께 열린 이번 전시회는 지난 8월20일부터 전남일보 취재진과 동행열차 탐방단들이 80년 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던 고려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이 50여점의 사진으로 전시됐다.

시베리아 강제이주 탐방이 끝난지 벌써 몇달이 순식간에 지났다. 취재단과 탐방단은 한국으로 돌아와 저마다의 일상을 사느라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모처럼만의 조우에 저마다 들뜬 기분이었다고 참석한 배현태 사진기자가 전했다. 취재때문에 가지는 못했지만 사진만으로도 그때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그랬다. 돌고 돌아서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 왔다. 그러나 바뀐 것은 거의 없다. 여전히 고려인 4세는 90일마다 한국에서 추방되고, 중앙아시아에서는 한국어를 배울 곳이 거의 없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고려인들을 위한 안전장치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인식개선은 제자리 걸음이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3개월마다 쫓겨나야 하는 고통

광주시청 자치행정과 구승연 주무관은 최근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국민공감 생활규제 개혁 과제에 '고려인 재외동포 비자 발급 범위 확대'를 제안해 우수 사례로 선정, 행안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는 "그동안 광주시에 근무하면서 고려인 동포의 애환을 옆에서 지켜봤고, 주변에 고려인 친구들도 많이 있다. 그들은 소통의 어려움은 물론 일자리 문제, 체불 문제를 호소했다"면서 "재외동포법에 따라 최대 90일까지 체류가 가능한 단기방문비자만 발급받기 때문에 고려인 4세는 성인이 되면 한국을 떠나거나 방문 비자로 재입국해 3개월마다 양국을 오가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 주무관은 "고려인들은 방문취업비자를 받고 대부분이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으로 일자리를 얻어야만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8월에는 광주고려인 마을에 사는 고려인 3세 김알렉산드라(56ㆍ여) 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딸과 함께 안심하고 한국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5년 전 동포취업방문비자(H-2)로 국내에 들어온 김씨의 딸(22)이 지난해 초 한국에 왔다. 고려인 재외동포비자(F4)를 동포 3세까지로만 제한하는 재외동포법 시행령에 따라 김씨의 딸은 비자 갱신을 위해 3개월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국했다가 돌아오기를 벌써 6차례나 했다고 한다. 이를 면하려면 대학에 진학하거나 결혼을 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법무부가 4세대 고려인 동포에세 한시적으로 '방문동거(F-1)자격'을 부여하는 인도적 조치를 마련해 시행했다.2019년 6월30일까지다. 좋은 일이지만 이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다.

2019년이 지나면 다시 또 고려인 4세들은 국내에서 태어났더라도 19세에 외국인으로 분류돼 본국으로 떠나야 하거나 3개월마다 관광비자를 갱신해야 한다. 고려인 동포 4000여 명이 살고 있는 광주에만 고려인 4세 자녀들이 400여 명에 달하고, 성인이 돼 당장 체류 자격에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도 1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울러 이들은 1년에 4번 타는 비행기 왕복티켓 값을 벌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결국은 법적인 제도를 마련해 이런 비극을 끊어야 한다.

문 주무관은 "고려인들을 안정적으로 조국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론 우리 사회가 '동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한시적인 규제 완화가 아닌 고려인특별법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한다"면서 "저 또한 앞으로도 고려인 동포들의 안정적 정착을 돕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언어 소통과 의료지원 절실

고려인들을 위한 커뮤니티 활성화도 절실하다. 고려인들이 낯선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지원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현재 광주 고려인마을에는 '고려인 커뮤니티'가 있다. 대표적인 국내 커뮤니티다. 광주에는 한국에 있는 고려인 4만여 명 중 4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1만여 명)에 이어 두번째로 큰 고려인 집결지인 셈이다. 특히 광주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모여든 안산 등지와는 달리 실제 거주를 위해 가족과 함께 정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은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지역아동센터와 어린이집, 청소년문화센터, 상담소, 쉼터 등이 고려인들의 한국 생활을 돕고 있다. 또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난 뒤 중도입국한 자녀들을 위한 다문화학교인 '새날학교'와 자원봉사, 협동조합, 미디어센터 등도 활성화돼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말과 글'이다.

같은 민족이지만 한국말이 서툴러 한국에서의 삶이 녹녹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주 고려인마을에 거주하는 상당수의 고려인이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 한다. 그 탓에 이들이 근무할수 있는 직종은 매우 제한된다. 실제로 광주 고려인마을의 경우 성인 3500여 명 가운데 51%(1780여 명)가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45%(1600여 명)가 일용직이다.

지난 8월에 떠난 동행열차 탐방단에 참가했던 고려인 3세 김울리아나씨는 "한국에서 한국말을 못하면 살기가 힘들다. 그런데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도 많지 않고 있어도 돈이 들어가는 곳이 대부분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소설사 김블라디미르(71)씨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 가려고 마음 먹은 젊은 고려인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언어다. 말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같은 민족이겠느냐"면서 "이런 부분에 한국의 관심도 필요하다.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에 대한 의료 지원 강화도 절실하다. 고려인들은 국내 체류기간이 90일이 넘어야만 건강보험 가입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입국 후 3개월 내에 병이 날 경우 병원비를 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재외동포연구원 원장인 임채완(66)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재외동포법상 고려인 4~5세대들은 같은 동포인데도 '외국인'취급을 받고 있다"며 "다양한 언어 교육을 통해 고려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장기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비자(F4)나 영주권을 주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

문제는 쌓여있지만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탐방단에 참가했던 조선대학교 김명은(4년ㆍ여)씨는 "이번 탐방을 통해 신명나게만 들렸던 아리랑에서 이제는 즐거움 속에 있는 슬픔처럼 들린다. 고려인들의 가슴 시린 역사를 만나고 와서 그렇다"면서 "한 줄기 빛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오직 서로에게만 의지한 채 달려온 열차 안의 시간과 아무 연고도, 생명력도 없는 황량한 땅 우슈토베에 정착하기까지 겪었을 고통을 이제 우리가 보듬어줘야 할 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탐방단의 많은 참가자들이 마음 속의 한마디를 전달했는데, 공통점은 '문제점을 마주보고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해결하자'는 것이다.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를 떠난지 80년이다. 곧 있으면 81년이 된다. 그러나 2018년을 고려인이 돌아오는 첫 1년으로 바꿀 수도 있다.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노병하 기자 bhro@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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