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때 지우고 사람 사는 냄새로… 구로공단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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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선진지 탐방
기름 때 지우고 사람 사는 냄새로… 구로공단 아리랑
도시재생전문가들의 선진지 탐방과 해법-사람과 장소가 있는 현장 '가리봉'을 가다
한때 공장 주거배후지 잘나가다
제조업 쇠퇴하고 뉴타운은 표류
  • 입력 : 2018. 03.22(목) 21:00
가리봉동이 주거환경 쇠퇴와 뉴타운 조성 과정 갈등을 딛고 일어선 데는 주민들이 있다. 모두가 마을일꾼을 자처하며 소통하고 연대했다.
사람과 장소의 가치를 찾아

우리 사회는 성장과 개발을 이끈 도시화 시대를 지나, 진화와 발전의 도시재생 시대를 기획하고 있다. 쇠퇴된 도시가 다시 활력을 찾아 번영을 누리게 하는 과정이 도시재생이다. 과거 급속한 산업화ㆍ도시화의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사람과 장소에 대한 가치의 회복이 핵심이다. 바로 첨단기술과 값비싼 장비로 무장한 고요한 달나라의 삶보다 어느 도시의 골목과 거리에서 우연한 만남이 있는 삶이 더 간절하다.

오늘날 저성장ㆍ고령화ㆍ다문화 사회이자 민주화의 성숙으로 높아진 삶의 질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과거 90년대까지 불량시가지에 대한 정비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불량과 양호한 시가지의 정비와 재생이 공존하는 시대였다. 최근 2010년대는 마을공동체 활성화 움직임과 함께 도시정비법개정(2012)과 도시재생법(2013), 빈집정비법(2017), 도시재생뉴딜(2017) 등으로 도시재생시대가 본격화되었다.



응답하라! 가리봉

서울은 제1의 도시로서 도시화의 혜택도 컸지만 그 폐해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세월에 장사없다고 서울은 늙어버렸다. 그 현상에 걸맞게 다양한 부문에서 재생이 필요하다. 신경제 광역중심을 육성하고, 쇠퇴ㆍ낙후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자연ㆍ역사ㆍ문화의 정체성 강화와 동시에 노후ㆍ쇠퇴 주거지의 활성화가 과제이다. 서울시는 도시재생으로 따뜻하고 경쟁력 있는 재탄생을 기획하고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가리봉 지역도 이런 재생 현장 중의 하나이다.

구로디지털산업단지, 아니 우리나라 산업화의 시작을 알린 구로공단이다. 최초의 국가산업단지인 이 곳은 공장과 사람들로 넘쳐났다. 조그만 자연부락은 1공단에 2, 3공단이 들어서면서 배후 주거지로 급성장했다. 가리봉의 주택은 작고 열악한 벌집이었지만, 이들에게 소중한 삶터였다. 또 당시 가리봉은 첨단 유행의 산실이기도, 강남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이기도 했다. 이런 가리봉이 제조업 쇠퇴와 뉴타운의 표류로 활력을 잃었다.

구로공단은 구조고도화를 통해 첨단지밸리로 재탄생하였지만, 가리봉은 그대로 남아 도시속의 섬이 되었다. 개발제한으로 노후화는 가속되고, 내국인 젊은이는 떠났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쇠퇴의 틈을 비집고 찾아든 중국동포에게는 최적의 삶터가 되었다. 지금 이 섬은 내국인과 중국동포과의 독특한 상호호혜의 관계가 살아있는 삶의 현장이다.

이런 가리봉의 켜켜히 쌓인 속살을 헤집어 보면 뉴타운의 상처와 만날 수 있다. 가리봉 뉴타운지구는 갈등과 아픔을 남기며 2014년 해제되었다. 성장기의 흔적과 주거환경 쇠퇴, 다양한 갈등 상존, 지벨리와의 단절, 중국동포 밀집이라는 현상황에 맞는 가리봉 통합 재생이 절실했다. 이제 가리봉 도시재생은 시작되었고, 지금 가리봉이 응답해야 한다.



함께하는 가리봉 재생과정

가리봉 지역의 현실을 감안하여 3단계의 재생단계를 설정했다. 다른 곳에 보지 못했던 '치유의 단계'는 10여년의 뉴타운의 표류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경청과 소통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이를 통해 신뢰회복과 공감대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 도시재생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우리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실천하는 그 자체임을 공감했다. 이런 나눔과 공유의 주체로서 가리봉 주민들은 애향심 넘치는 마을일꾼이 되었다.

다음으로 '주민사업발굴 단계'이다. 치유과정으로 형성된 신뢰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재생방향을 설정했다. 마을일꾼이 나서 재생의 목표와 비전을 설정하고, 주민 눈높이에 맞춘 재생사업을 발굴했다. 이 순간 주민 가슴 속에 간직했던 가리봉에 대한 소망은 비전을 만들고, 이를 실현하는 재생과제와 사업으로 영글어 갔다.

마지막으로 '재생사업시행 단계'이다. 이 단계는 앞서 단계를 바탕으로 재생사업을 시행한다. 재생효과 측면에서 단기ㆍ중장기로 구분하고 주민들의 참여가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현장지원센터의 역할과 주민협의체의 성숙이 중요하다. 지금 가리봉은 이 단계로 하나둘 성과를 만들며 지속가능한 가리봉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



소통으로 시작한 가리봉 만들기

먼저 소통을 위한 현장소통마당이다. 주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도시재생을 바라보는 첫걸음이다. 강력범죄사건으로 폐쇄된 마을마당에 주목했다. 가리봉 도시재생은 버려진 마을마당에 싹을 띄웠다. 이렇게 설치된 컨테이너박스는 방치된 곳을 사랑방으로 변모시켜 오늘의 현장지원센터가 되었다.

둘째는 주민 스스로 마을일꾼이 된 것이다. 뉴타운 추진과정에서 주민협의체와 주민대표에 대한 불신의 해소가 절실했다. 그래서 애향심으로 가리봉을 위해 봉사하고자 참여하는 주민이라는 뜻의'마을일꾼'을 모집하고, 이들이 모여 활동했다. 주민들은 이 모임을 환영하고 일꾼으로 참여했다. 한동안 마을일꾼은 인기있던 용어지만, 지금은 '주민대표'와 '주민협의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작은 변화지만 가리봉 아픔을 생각하면 큰 변화임이 틀림없다.

셋째로, 가리봉 가치의 공감이다. 주민들은 가리봉을 그저 고단한 삶터이었고, 늘 익숙한 생활환경만 알았다. 2015년 4~7월 서울역사박물관이 개최한 '가리봉 오거리'전시회는 특별했다. 주민들이 낡고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벌집이 박물관에 전시될 만큼 가치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박물관 특별전시실에 벌집의 방문과 화장실문, 난간과 배수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이 벌집에 거주하면서 만든 '가리베가스'(故 김선민 감독)가 상연되었다. 이 벌집은 리모델링되어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했다. 이제 가리봉의 벌집은 핵심 앵커시설로서 가리봉 재생의 전진기지이다.

넷째로, 한층 가까워진 가리봉과 지밸리이다. 함께 하였을 때 그 가치가 높다는 사실은 가리봉의 과거가 증언한다. 현재 지밸리 종사자는 16만명 정도데 이중 6%만 인근지역에 거주하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출퇴근하지만 변화가 목격된다. 근래 이곳에 새로운 가게들이 등장하고 재생된 벌집에 내국인 입주가 증가하고 있다. 가리봉이 과거 공단과 맺었던 관계를 다시 구축할 수 있다면 재생은 더 앞당겨질 것이다.

다섯번째로 글로벌 동네 가리봉이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중국동포들이 이곳에서 고단하지만 삶을 이어가고 있다. 뉴욕, 런던, 도쿄가 글로벌 시대 세계 도시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여러 민족과 인종이 함께 사는 글로벌 동네가 있기 때문이다. 가리봉은 글로벌 서울의 다양성 가치를 구현하는 선진지로 가치가 높다.

지밸리를 품고 더하는 마을, 가리봉

가리봉 재생이 해를 거듭하면서 갈라진 주민들 틈이 새파란 새싹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 새싹들은 다시 태어난 가리봉의 미래이다. 'G-Valley를 품고 더하는 마을, 가리봉'. 과거 구로공단의 핵심 배후지로 역할을 회복하며, 그 동안 가리봉에서 잃었던 것들을 되살리자는 뜻이다.

이러한 비전에 따라 3대 재생전략이 마련되고 핵심 컨텐츠가 발굴되었다.

먼저, '사람들 더하는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주민역량강화와 재생사업 홍보 등을 통해 공동체 및 지역활성화사업을 추진한다. 두 번째로 '공간을 더하는 생활환경 개선'으로 불량도로, 주차장 등 기반시설 개선과 쓰레기 문제 해결과 방법시설 등 안전시설을 확충한다.

세 번째로 '시간을 더하는 문화경제 재생'으로 골목경제 활성화와 앵커시설 확충 및 가리봉 역사문화 살리기사업이 전개될 것이다. 이런 내용을 포함하여 가리봉 도시재생사업은 9개의 마중물사업, 9개의 부처협력사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시 함께 만들 가리봉, 우리 동네

골목길 어귀 동네 슈퍼는 언제나 그립다. 24년전 하월곡동 골목길에서 만난 수퍼를 이 곳 가리봉에서 데자뷰처럼 보았다. 하월곡동 '슈퍼동네'와 가리봉 '동네슈퍼'는 비슷한 모습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다. 하월곡동 그 슈퍼는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가리봉동의 동네슈퍼는 여전하다.

가리봉 재생은 많은 것을 되살리고 가꾸어야 한다. 예전 농촌마을의 정겨움이 되살아나고, 공장의 여공을 대신하여 지밸리의 젊은이들이 일상이 펼쳐져야 한다. 또한 멈춰선 가리봉에 날아든 동포들의 삶도 가리봉의 한 부분으로 살아 글로벌 가리봉이 되어야 한다. 현재 가리봉은 하월곡동처럼 사라지지 않고 글로벌 동네 가리봉을 꿈꾸고 있다.

끝으로 도시재생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과 그 장소의 발전에 함께하는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공감해야 한다. 도시재생은 나와 당신이, 가리봉과 당신의 동네에서 서로 전율하여 시작하고 떠나는 즐거운 여행이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동네에서 이런 여행을 떠나시면 어떨까요? (이 글에 사용된 자료는 가리봉 도시재생의 소중한 성과입니다.)



도시재생전문가들의 선진지 탐방과 해법

배웅규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가리봉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
서울시 캠퍼스타운 총괄계획가
경기도 도시재생위원회 위원
한국도시설계학회 도시재생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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