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앞에 서면 왜 눈물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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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권의 야생화 이야기
할미꽃 앞에 서면 왜 눈물이 날까
애처로움ㆍ충신의 표상 '할미꽃'
정연권의 야생화 사랑
  • 입력 : 2018. 03.22(목) 21:00
허리를 굽힌 채 꽃을 피우고 꽃잎을 떨군 뒤에는 하얀 솜털로 뒤덮이는 바람에 억울하게도 \'할미꽃\'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양지 바른 묘지 근처에 많이 피는 탓에 보는 이들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세찬 비가 창문을 두드리며 새벽잠을 깨운다. 빗소리를 영접하고 싶다. 그러나 몸은 천근만근이다. 춘곤증 인가 나이 탓인가. 애매한 이불만 부여안고 씨름하다 부스스 일어났다. 요란한 봄비 소리에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와 빗소리를 맞이한다. 상쾌하고 시원하다. 부드럽고 감미롭다. 빗소리는 아린 정적을 깨우고 촉촉함을 안겨준다. 비는 하늘과 땅의 만남이다. 하늘과 땅의 교우이다. 땅이 하늘을 영접하는 소리에 몸도 마음도 평온하다. 이제는 완연한 봄인가 보다. 봄 속에서 노니다보다. 안도의 기점이 되는 빗소리에 새벽이 여유롭고 평화롭다. 만뢰는 빗소리로 가득하다. 어두움과 빛이 교차하는 시간이 오니 빗소리에 혼재된 새소리가 들려온다. 참 부지런 하구나. 왜 빗소리의 아련함을 깨트리는지 원망해 본다. 그러나 어찌하랴.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하는 저들의 삶을 책망할 자격이 있는가. 내 생각대로 내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나 자신을 책망해본다. 그래, 아직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이 부족 하구나….



잔잔한 섬진강 물결을 따라 온 남풍에 대지는 서서히 기지개 켜더니 겨우내 목마른 갈증을 풀고, 힘차게 자라는 토대를 마련했다. 소살소살 실개천에 물이 흐르고, 풀꽃이 소생하고 나무에는 꽃이 피고 잎이 나오고 있다. 천지가 생명으로 넘치고 있다. 생명의 흔적만 남겨진 황량한 대지에 넘치는 봄의 기운은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채색돼간다. 큰개불알풀, 광대나물, 별꽃은 꽃 잔치를 벌이며 '난 잡초가 아니랍니다'고 항변하고 있다. 산수유, 매화, 생강나무, 영춘화 등도 줄지어 피어 꽃대궐을 이루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하얀 솜털에 붉은빛을 토하는 꽃무리가 있다. 외롭고 슬프면서 애잔하며 한국적인 한(恨)과 정서를 가진 친숙한 꽃이다. 고향의 향수 속에 동심으로 이끄는 꽃 '할미꽃'이다. 미나리아재비과 다년초로 노고초(老姑草), 백두옹(白頭翁) 이라고도 한다. 늙은 시어머니 풀이고 흰머리의 노인이다. 꽃 목이 할머니 처럼 꼬부라져 피고, 꽃이 질 때 노인의 흰머리 처럼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산지는 한국으로 4종이 서식하며 특산종이다. 학명은 풀사틸라 코리아나 나카이(Pulsatilla Koreana Nakai)로 일제 흔적이 남아 있다. 명명자 나까이는 일본 식물학자로 한국 식물조사와 수탈을 자행한 자다. 우리 특산종에 일본인 이름이 있다니 분하고 통탄할 일이다. 강원도 동강에 서식하는 동강할미꽃 학명(Pulsatilla Tongkangensis Y.N.Lee &T.C.Lee)에는 동강의 지명과 이영노 박사ㆍ이택주 원장이 명명자로 돼있어 다행이다. 할미꽃은 적자색에 허리가 꼬부라진 데 반해 동강할미꽃은 동강 석회질 바위틈에서 하늘을 향해 핀다. 보라색에 노란 꽃술을 보이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점이 다르다.

산업화되기 전까지도 양지바른 야산에 할미꽃이 지천이었다. 친구들과 놀 때 꽃을 꺾어 놀았고, 하얀 솜털을 불기도 하는 장난감이었다. 묘지에 더더욱 많았다. 왜 그럴까. 할미꽃 특성을 알면 이해가 된다. 할미꽃은 햇볕을 좋아하는 양지성식물이다. 햇빛을 잘 비추는 곳에 벌초를 한, 잘 정리된 묘지가 제격이다. 중성토양(PH6~7)에서 생육하는데 묘지에는 석회를 사용 해 중성토양에 가깝다. 기후변화로 할미꽃이 개체수가 줄었다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예전에는 퇴비용으로 풀이 자라기만 하면 베어가니 할미꽃 종자가 날아와 발아되고 성장했다. 요즘은 호광성인 종자가 발아돼도 장마기간 풀이 많아 그 속에서 자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뿌리삽목과 종자로 번식한다. 종자번식은 발아율이 높아 대량 번식돼 경제적이다. 필자가 1997년 '월간 새농민'에서 실시한 영농창안 개발상 공모분야에서 '동상'을 받은 기술을 소개한다. 꽃이 진후 솜털이 약간 타는 시점인 5월초에 꽃대를 채취한 뒤 가위로 솜털을 제거하면 둥그런 공 모양이 된다. 가는모래나 미세한 흙을 넣고 세차게 문지르면 씨앗이 분리돼 한 송이에서 300개의 씨앗을 얻는다. 프러그판에 원예용 상토를 채우고 씨앗을 구멍 당 3~4개씩 파종해 건조하지 않도록 물을 주면 15~20일 사이에 싹이 나온다. 잎이 4~5매 나오고 셜(구멍)에 뿌리가 엉겨 잘 뽑아지는 8월 중순 14폿트나 화단에 심으면 100% 활착된다. 꽃은 이듬해 피지만 뿌리가 약해 꽃은 작다. 2년차 꽃이 가장 크게 핀다.

할미꽃은 화단, 정원, 화분용으로 적합하다, 암석정원에 군식하면 아름다움이 배가되는데 동강할미꽃이 제격이다. 꽃과 색채가 우아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분화용으로 좋은데 토분이 좋다. 할미꽃은 직근이 깊고 잔뿌리가 적어 옮겨 심은 후 활착이 어려워 고사하므로 폿트묘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꽃송이에 독이 있다는 것과 묘 주위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화분용이나 정원에 심는것을 기피하기도 하지만 고향의 정겨운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생약명은 '백두옹(白頭翁)'으로 뿌리가 독초다. 만성위염, 이질, 두통 등에 사용한다. 충남대 안병준 교수 등이 할미꽃 뿌리에서 사포닌D를 추출해 개발한 천연항암제 'SB주사제'가 폐암ㆍ간암의 암세포를 죽이는 효과가 입증돼 주목 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건부 허가를 받았고 유럽에서 임상실험을 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전설이 슬프다. 할머니가 어렵게 세 손녀를 키워서 시집을 보냈다. 시집간 세 손녀집을 번갈아 다니면서 살던 할머니가 눈치가 보여 부담주기 싫은 마음에 방황하다 길에서 돌아가셨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이야기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당당하고 멋진 이야기도 있다. 꽃을 의인화 해 현실을 풍자한 설화로 신라 31대 선문왕 때 설총이 지은 '화왕계(花王戒)'가 있다. 화왕(花王)으로 꽃 중의 왕인 모란에게 간신인 장미가 미모와 요염함으로 아첨하자 모란왕은 장미를 총애했다. 할미꽃인 백두옹은 대도의 호연지기와 능력으로 충언하며 모란왕의 잘못을 깨우치게 했다는 이야기다. 요염한 장미와 호연지기 할미꽃을 잘 비교했고 특성을 파악해 잘 비교했다. 간사하고 아첨하는 간신을 멀리하고 정직하고 사심없는 충신을 가까이 하라는 요지인데 요즘 정치인들이 새겨야할 대목이다. 아첨꾼은 '입으로는 꿀처럼 달콤한 말을 하면서 뱃속 마음으로는 칼을 품고 해치려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다. 국가보다 사심이 우선이기에 국정농단으로 이어져 나라가 시끄럽지 않았던가.

꽃말이 '슬픈 추억' '사랑의 굴레'다. 할머니 모습으로 피는 꽃을 보며 늙는다는 것이 서럽고 아쉬워 슬픈 추억이 됐나 보다. "어찌 하오. 구부러진 꽃송이에 하얀 솜털을 안으신 당신의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소 이다/어찌 하오리오. 흰머리의 애처로운 풍상과 세월의 무상함을 원망해도 소용이 없소 이다."

피어나는 꽃송이를 보면 허리가 굽어진 어머니 생각이 난다. 평생을 논밭으로 뛰어 다니며 허리를 구부리고 일한 대가였다. 피땀과 고통의 짐이었다. 허리 한번 편하게 못펴고 밤낮으로 일했다. "아이고, 허리야~ "를 입에 달고 살았다. 덕분에 굶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 그 덕택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는가. 감사한 은혜를 이제는 갚을 길이 없어 죄스럽고 슬프다. 가슴이 메어지고 아린다. 지식과 정보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슬기로운 지혜와 빛나는 예지는 없다. 노인에게 지혜를 배워 지혜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 당당하고 사심 없는 충신의 표상을 세우자.




연보랏빛 꽃대롱, 비밀스런 보물주머니 닮았네

우아한 종달새 아가씨 현호색


복수초에서 발화된 노란 꽃이 구례 산동으로 들불처럼 번져 마침내 황금꽃 바다를 이뤘다. 어디를 둘러봐도 황금빛이다. 황금빛 천지아래 귀여운 자태와 우아한 몸짓으로 피는 꽃이 있다. 봄빛 소리에 종알 대며 대지를 뒤덮는, 봄비에 옹알이 하듯 피는 꽃 현호색과 '현호색(玄胡索)'이다.

종알종알 소소한 소리와 재잘재잘 아가씨들 수다에 종달새 합창이 어우러져 들녘에 울려 퍼진다. 현호색은 중국 이름을 일본 식물학자가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검을 현(玄), 오랑캐 이름 호(胡), 새끼 꼬다 색(索)으로 '검은색 뿌리를 가진 매듭모양'이다. 새싹이 돋는 북쪽식물이라는 뜻과 현은 하늘이고 호는 드리우다는 의미로 새싹이 꼬이면서 올라오는 하늘빛 같은 꽃이라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두 번째 유래가 식물특성에 가깝다. 뿌리에 감자같은 작은 덩이줄기가 있는데 노란색이고 모양도 감자조림용 크기인 지름1㎝다. 검은색 뿌리는 아닌 것 같고 하늘빛은 푸른색이 아닌가. 푸른색이 진하면 검게 보인다는 의미인 듯하다. 속명 코리달리스(Corydalis)는 그리스어 종달새라는 어원이다. 풀어보면 꽃모양이 종달새 머리 깃과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봄 한 달쯤 나타났다가 홀연히 지는 꽃, 잎줄기도 흔적없이 사라져 여름ㆍ가을ㆍ겨울은 땅속에서 잠만 잔다. "무엇이 그리도 바쁘실까. 너무나 빨리 가시네" 그 연유가 궁금하다. 현호색과 식물은 숲이 우거지기 전 꽃이 피고 열매 맺은 뒤 번식을 마쳐야 한다. 나뭇잎이 나오면 햇빛을 보기 어려우니 그 이전 모든 일을 마무리 한 뒤 편히 쉰다.

꽃이 진 뒤 덩이뿌리를 옮겨 심으면 이듬해 멋지고 우아한 꽃을 볼 수 있다. 화분에 심으려면 꽃이 진 뒤 옮겨야 한다. 덩이뿌리에는 복통, 치통과 피의 흐름을 좋게 하고 타박상에도 효과가 있다. 주목할 점은 현호색이 함유된 '활명수'다. 생명을 살리는 신비한 물이라는 활명수는 1897년 궁중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왕이 마시던 생약비법에 서양의학을 접목시켜 만든 한국 최초 양약이다. 120년 역사가 있는 소화제다.

꽃말이 '보물주머니' '비밀' 이다. 꽃송이마다 보물주머니가 가득하다. 잎은 벌어져 있지만 꽃이 긴 모양이라 비밀이 많게 보였을까. 한달 있다가 홀연히 사라지니 비밀이 많다고 생각해서인가. 새 봄 숲속에 옹기종기 피어 보물을 담은 '비밀 주머니꽃'요 '종달새의 보물주머니'다.



경남 과기대 겸임교수 한국야생화 사회적협동조합 본부장 전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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