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파괴하는 산업화 폐해 먹고사느라 입도 뻥긋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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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파괴하는 산업화 폐해 먹고사느라 입도 뻥긋 못해
임낙평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
들불야학 윤상원 열사 후배
20대 청춘땐 군부에 맞서다
1980년대 말부터 환경에 눈떠
  • 입력 : 2018. 06.10(일) 21:00
  • bhno@jnilbo.com
김양배 기자
들불야학 윤상원 열사 후배
20대 청춘땐 군부에 맞서다
1980년대 말부터 환경에 눈떠
광주 푸른길 만들기 힘쓰고
정부 영산강 정책에 맞서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바다로
그걸 고기들이 먹고
그 고기를 또 우리가 먹어”

“구속력 없는 환경정책 손질
다른 나라들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일회용품 줄여야



그는 19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공격하자 이에 맞서 싸우다가 총에 맞아 사망한 들불야학 윤상원 열사의 후배였다. 윤 열사의 옆에서 같이 야학을 운영하며 지원하고 도왔다.

엄혹했던 시절, 20대의 젊은 청춘이 가진 것은 열정과 분노, 그리고 지식이 전부였지만 그들을 짓누른 것은 권력과 총, 부정한 자본이었다.

그렇게 푸르던 청춘들이 꽃잎처럼 흩어져 버린 1980년 어느 날, 윤 열사의 후배였던 그가 다시금 광주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가 이번에 맞서 싸울 상대는 군부 독재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아니 신경 쓸 수 없었던 그것. 바로 환경이었다.

“80년대 광주천은 그냥 하수처리장이었어요. 이곳저곳에서 흘러온 하수들이 모여 흘러내리는 것이었죠. 냄새도 엄청났지만 거기서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죠. 그런데도 누구도 그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산업화라는 대명제가 너무 컸으니까요.”

임낙평(60)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가 남구 푸른길 공원 벤치에 앉아서 꺼낸 80년대 후반의 광주는 그야말로 비틀어진 세상이었다.

1980년 5월의 커다란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먹고 살 것조차 그리 넉넉지 않았던 광주는 차별과 멸시, 분노를 안고 그저 버텨나가고만 있었다. 총칼을 휘둘렀던 군부는 전두환에서 노태우라는 다른 이름으로 권력을 이양 중이었고, 모두가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도 가슴이 무거웠다.

그런 상황에서 ‘환경 보호’를 외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철없는 소리, 배부른 소리였을 수도 있었다. 임 대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성장하는 산업의 자본이었고, 그 속도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주가 사라져 가고 있었지만, 돌 볼 틈이 없었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것은 휴지를 줍고,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투였고 전쟁이었다. 그렇게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2000년, 2010년을 이어가며 광주에 푸른길을 만들었고, 영산강을 보호하기 위해 싸웠으며, 정부 정책에 맞서 왔다. 그가 이런 싸움을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환경은 바로 ‘인류’였기 때문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인류의 생존을 지키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플라스틱이 우리의 호흡기를 통해 폐에 가라앉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이런 플라스틱을 없애는 운동이 활발합니다. 우리는 늦은 거지요.”

실제로 프랑스 파리는 2050년까지 탄소 없는 친환경도시로의 전환을 진행 중이다.

파리시는 지난 2017년부터 ‘무탄소 시’ 전환을 위해 오는 2050년까지 적어도 80%의 탄소 배출량을 줄여 명실상부한 환경도시를 만들 예정이다.

이에 따라 368페이지에 이르는 ‘파리 시대를 전환하다Paris change d’ère'라는 보고서가 작성됐다. 보고서는 건설, 운송, 식품 및 폐기물 등을 중심으로 도시생활의 전반적인 양식 변환을 통해 친환경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신재생 에너지’가 자리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는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한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지난 6월5일부터 8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공동으로 ‘미래성장을 위한 혁신 활용’이라는 주제로 ‘아시아 클린 에너지 포럼’이 개최됐다.

2006년부터 개최돼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이번 아시아 클린 에너지 포럼의 핵심 주제는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혁신적 아이디어였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이때까지 살아왔던 방법을 변화 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중국의 한 도시는 모든 공용버스를 친환경으로 교체했다. 수천대에 달하는 숫자였지만 과감히 바꿨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를 조례로 내걸었다.

다른 주에서는 아예 일회용품 사용을 대량으로 줄이고 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의 상당수는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 바다에서 고기들이 이것을 먹고요. 그 고기를 우리가 다시 먹습니다. 이게 바다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강, 산, 들 그 어디서고 발생하는 일입니다.”

임 대표는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할 일은 환경오염을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9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자, OECD 국가 가운데 연간 에너지 사용량 증가율이 1위입니다. 정부는 저탄소, 즉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20년까지 4%(2005년 기준)감축하고, 화석에너지의 대안으로서 신재생 에너지 보급률을 2030년 11%로 설정하고 있는데, 세계적 수준의 배출국가로서 미흡하기 이를 데 없고 또한 이마저도 달성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법적 제도적 측면에서 감축을 위한 구속력이 있는 정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임 대표는 이런 태만의 배경에는 바로 핵 에너지가 자리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대한민국의 전체 전력에너지의 36%가 바로 핵발전소 용량이다.

이런 핵 에너지를 계속 사용하게 될 경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위험을 초래한다. 실제로 지난 2016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무더운 해였다. 2014년, 2015년도에도 그 해가 가장 무더운 해였다. 해가 갈수록 기록이 경신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자들은 남극의 대륙빙하가 얼마만큼 녹아내리는지, 북극이 얼마나 더워지는지, 더불어 해수의 온도와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할 것인지 추적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의 과학자들은 온실가스 배출이 줄지 않는다면, 2100년께 되면 해수면은 기존의 예측했던 것보다 두 배인 2m 가까이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렇게 되면 여러 나라들과 도시들이 지도에서 사라지거나 침수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해안에서 내륙으로의 탈출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난민사태‘로 지구촌은 큰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는 예측도 있다.

임 대표는 “2015년 맺어진 파리협정의 핵심인 ‘섭씨 2도-1.5도’를 충족하려면 21세기 중반인 2050년까지는 지구 전역에서 80% 내외의 온실가스 배출감축과 80~100% 신재생 에너지 확대 및 화석에너지 제로를 향해야 한다”면서 “이제 더 이상 미룰수 없는 이 거대한 싸움을 몇몇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눈 깜짝할 새에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것을 알 때는 늦었고, 지금도 이미 늦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요즘 시민들의 일상의 변화를 주장한다.

“지금부터 일회용품 사용과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줄여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 탄소에너지를 줄이는 거대한 사회적 바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한쪽 발을 파괴에 들였습니다. 나머지 발을 집어 넣느냐, 다시 빼느냐의 순간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환경보호가 더욱 거대하게 진행돼야 하는 순간이지요.”

지난 3년여간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를 맡아온 그는 곧 계약기간이 만료된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서건, 어떤 자리에서건 40여년간 이어온 싸움을 멈출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싸움을 멈추는 순간, 우리 모두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20살 푸르던 날 독재에 맞서 싸웠던 것처럼 6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붉디 붉은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노병하 기자




임낙평은?
△현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
△1957년 해남 출생
△1985년 전남대학교 독문과 졸업
△1978~80년 전남대 재학시 윤상원.박관현.신영일 등과 ‘들불야학’ 운영
△1981년 신영일 등과 전남대 9.29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어 2년여의 투옥생활
△‘광주의 넋 박관현’(1987) 정리
△1989년 광주환경공해연구회 창립
△1993년 광주환경운동연합 창립.사무처장 및 상임위원장 역임
△광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역임
△전 푸른광주21협의회 공동대표
bhno@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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