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84-1> 화정동 아파트 붕괴참사 1년… 아물지 않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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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84-1> 화정동 아파트 붕괴참사 1년… 아물지 않은 상처
유가족 “더 이상 이런 일 없어야”
상인들 “비산피해에 손님도 ‘뚝’”
입주자 “사고 없는 철거 진행을”
지자체 “안전 검토·사고 방지 최선”
  • 입력 : 2023. 01.08(일) 18:49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8일 붕괴 현장에는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올해는 안전 사고 재발 방지와 책임자 처벌, 철거 및 재건공사 등이 차질없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나건호 기자
지난해 1월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짓던 신축 아파트 외벽이 무너졌다. 건물에 매몰된 6명의 희생자들은 차디찬 사고 현장에서 29일이 지난 후에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사건 수사를 통해 ‘화정동 붕괴 사고는 인재’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사고 관련자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등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한순간에 가족·일터·집을 잃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그 사이 타는 듯한 괴로움을 견뎌내야 했다.

● 지속되는 인재…아픔 잊히지 않아

“여수산단 폭발·안산 물류창고 붕괴·이태원 참사·광산 매몰·방음터널 화재… 붕괴 사건 이후로도 줄곧 사고 소식이 들려와요. 아픔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는 거죠. 계속 생각나게 되니까요.”

화정동 참사 유가족 안정호(46) 씨는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한자리에 멈춰 선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애써봤지만, 이따금 마주하는 ‘현실’에 포기하곤 했다고 토로했다.

안씨는 “‘그날’의 기억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더라. 사고 소식을 들을 때면 당시의 트라우마가 재발하곤 했다”며 “특히 지난해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유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남겨진 이들이 받는 외로움은 처절하기 그지없다”고 애달픈 심정을 전했다.

안씨는 지난해 화정동 참사에서 매형을 잃었다. 당시 매형은 붕괴 현장에서 소방 설비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안씨와 매형은 과거 전통 무예 체육사업을 함께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다.

안씨는 "얼마 전 조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형부를 대신해 축하를 건네긴 했지만, 괜스레 미안했다. 형부의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며 "다른 유가족들도 다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모두가 그저 삭히고 살고 있을 뿐"이라고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고는 수습이 됐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다시는 ‘사회적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과 시스템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며 “화정동 붕괴 현장의 경우, 1년간 변화된 게 아무것도 없다. 중대재해법 외에는 징계 기준도 없어, 마땅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도입해 시공사의 부담을 늘리는 방법들이 고안돼야 한다”고 안전 사회 시스템 구축을 주문했다.

유가족들은 오는 11일 오후 2시 참사 현장인 201동 앞에서 ‘1주기 추모식’을 개최한다. 추모식에 앞서 이날 오전 9시에는 현장 분향소가 설치된다.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 30일째가 되던 지난해 2월9일. 현장 인근 상가 건물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무너져있다. 정성현 기자
● 손님 끊긴 상가·미뤄진 내 집 마련

붕괴 참사의 여파는 유가족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다. 현장 인근 상인들은 폐허가 된 곳에서 삶을 다시 일궈내야 했고, 수십 년 간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계약한 입주 예정자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야 했다.

1년째 제대로 된 장사를 하지 못한 상인들은 ‘신학기를 앞두고 더욱 고심이 커진다’고 토로했다.

홍석선 상가피해대책위원장은 “지난해 참사 이후 잔해 제거 등을 하면서 엄청 고생했다. 비산 먼지나 시멘트 가루를 들이마셔 치료를 받은 사람도 있다”며 “그런데 아직까지도 공사장 주변에 분진가루들이 날아다닌다. 잠시 주차하거나 물품을 밖에 내놓기라도 하면 어느 순간 (먼지 가루가) 수북히 쌓여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곧 새 학기지 않나. 우리로서는 '영업 특수'인데 판매를 진행할 수 없다. 아이들을 상대로 이런 곳에 오라고 할 수 없지는 않은가. 종종 학부모와 함께 온 학생들을 볼 때면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씁쓸해했다.

현산은 붕괴 잔해가 쏟아져 내리는 등 직접 피해를 본 문구도매상가 입주 상인 42명 중 14명과 보상 협의를 마쳤다. 나머지 28명은 추후 협의에 들어갈 계획이다.

홍 위원장은 “직접 피해를 본 입주 상인들은 ‘보상’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많은 상인들에게 이곳은 ‘삶의 터전’이다. 수 십 년간 일궈온 터전을 지킬 수 있도록 현산과 지자체에서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내 집 마련’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있던 847세대 5000여 명의 입주 예정자들은 한순간에 집을 잃고 당장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어수선한 한 해를 보냈다.

다행히 지난해 10월 현산과 계약금과 중도금을 보상으로 책정하는 ‘입주지원 보상금’을 받아 큰 어려움은 면했지만, 재완공 될 아파트 입주까지 58개월(약 5년)이란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승엽 화정동 신축 아파트 입주예정자 대표는 “입주 예정자들은 지원받은 대출금에 웃돈까지 얹어 다른 집을 매입하거나 전·월세 집을 다시 구해 살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건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것이다. 현산과 지자체는 철거와 시공에 있어 모든 경우의 수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안전사고에 각별히 유의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붕괴 현장을 관리·감독하는 서구 관계자는 “또다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사고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분진 등과 관련해서는 현재 관련과에서 채취가 완료된 상태다. 전문가 분석을 통해 문제가 없는지 상세히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