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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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가거도 연가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3. 01.11(수) 18:30
  • 최도철 기자
최도철 미디어국장
대한민국 서남쪽 맨 끄트머리 섬 가거도는 영락없는 ‘절해고도(絕海孤島)’다. 뭍에서 600리나 떨어졌으니 지도를 들여다봐도 제주도 만큼이나 한참은 멀게 보인다.

시절이 좋아져 지금은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3시간이면 닿는다고 하지만, 예전 돛단배 타고 다닐 때는 순풍이 불어와도 일주일은 꼬박 걸렸다고 한다. 어지간한 일 아니면 오고 갈 엄두조차 나지 않을 멀고도 먼 길이다.

육지에서 멀다 보니 가거도 사람들은 6.25 전쟁이 터진 것도 몰랐다고 한다. 왜 저 멀리 뭍에서 대포소리가 쿵쿵 나고, 시신들이 바닷물에 떠내려오는지 난리가 끝난 한참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전라도는 변방이다. 과장됐지만 중국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가거도는 전라도에서도 변두리다. 오죽했으면 흑산도까지는 귀양 보냈지만 가거도는 생각지도 못했을까.

조태일의 시 ‘가거도’에 육지와 인연 끊고 저 홀로 고독하게 사는 변방중의 변방 가거도가 잘 표현돼 있다.

“너무 멀고 험해서 오히려 바다같지 않는/ 거기 있는지조차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 쓸만한 인물들을 역정내며 유배 보내기 즐겼던 그때/ 높으신 분들도 이곳까지는 차마 생각 못 했던…./

가거도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몇 번이나 이름이 바뀌었다. 머나먼 변두리 섬이라 하여 ‘갓갓섬’이라 불렀다가, 수려한 풍광에 반해 가가도(嘉佳島)로 바꿨다. 근대에 들어서는 다시 ‘넉넉히 살만한 섬’이란 뜻을 가진 가거도(可居島)로 했다가, 일제때 내력없이 소흑산도로 고쳤다. 사실 흑산도 본섬과 280여 리나 떨어져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제멋대로 가져다 붙인 것이다. 지금은 이름을 되찾아 가거도로 불린다.

가거도는 눈길 머무는 곳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승경이다. 신안군에서 가장 높다는 독실산에서 바닷가까지 가파르게 흘러내리는 짙푸른 상록수림, 나라에서 명승으로 지정한 항리마을 섬등반도, 1907년 불을 밝힌 가거도 등대, 해넘이 절대 명소 몽돌해변, 국흘도 칼바위 등 뷰포인트가 넘친다.

가거도는 우리나라의 영해기점(領海基點)이다. 대한민국과 중국대륙 사이에서 두 팔을 벌리고 옹골차게 서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그냥 그 자리에 그렇게 있음으로 이 곳이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선포하고 있다. 서남쪽 끝자락에 외로이 외로이 서서 흙 한 줌, 바위 한 개라도 졸아들까 봐, 장구한 세월을 움켜잡고 있었던 것이다.

가거도가 ‘올해의 섬’으로 선정됐다. 한국섬진흥원은 최근 “신안군 가거도를 ‘2023년, 올해의 섬’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절해고도 가거도, 망망대해의 바람과 고독을 삼키며 살아온 그 섬을 꼭 한번은 가야 한다. 두 발 딛고 서서 ‘가거도 연가’라도 불러야 한다.
최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