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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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녹색 혜성
이용환 논설위원
  • 입력 : 2023. 01.31(화) 17:20
이용환 논설위원
“만약 우리가 맞다면, 이 혜성은 1758 년경에 다시 돌아 올 것이다. 그때 우리 후손들은 이 혜성이 영국인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음에 감사히 여길 것이다.” 1682년 영국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는 그 해 갑자기 나타난 별을 예사롭지 않게 지켜봤다. 지금까지 누구도 보지 못했던 별. 핼리는 즉시 옛 기록에 있는 궤도를 찾아 계산했고 1531년과 1607년의 궤도가 그해 나타난 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별이 76년을 주기로 태양계를 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핼리 혜성의 발견이었다.

2021년 개봉된 영화 ‘돈 룩 업’은 갑자기 나타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위기를 그린 영화다. 갑자기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는 직경 6~10㎞의 혜성. 그대로 충돌하면 인류의 종말이 예견되는 상황이고 남은 시간은 6개월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부나 관리들은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대중들도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충돌의 비극이 아니고 모든 것이 가볍고, 인류의 종말마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우리 사회의 허상이었다.

과거 혜성은 전쟁이나 재앙을 알리는 불길한 별이었다. 공상과학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중요한 대상이다. 46 억년 전 태양계가 탄생했을 당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 혜성은 ‘태양계의 타임캡슐’로 불린다. 얼마전에는 일부 과학자들이 원시 지구가 혜성과 충돌하면서 물과 함께 생명의 기원이 된 유기물질을 획득했다는 가설도 내놓았다. ‘혜성을 연구해 이런 물질을 발견할 경우 인류의 마지막 남은 과제인 생명의 기원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과학계의 이야기다.

새해 벽두 지구를 찾은 ‘녹색 혜성’이 매일 새벽 화려한 우주 쇼를 선보이고 있다. 5만여 년 전 네안데르탈인 시대, 지구를 지난 것으로 보이는 이 혜성은 지난 달 12일 태양의 최근접 지점을 지났고 2일에는 지구의 최근접 지점에 도달한다. 2월까지는 북극성 근처에서 이른 새벽 육안으로도 관측할 수 있다. 혜성은 태양계와 생명의 신비를 품은 희망의 상징이다. 5 만년을 주기로 태양계를 돈다는 것도 경이롭다. 이번 지구로의 여행이 끝나면 앞으로 5 만년 후 다시 오거나, 안올 수도 있다는 혜성. 우주에는 이런 혜성이 과연 몇 개나 존재할까. 겸손하고 또 겸손해지는 우주의 신비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