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유순남> 인력으로는 못해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에세이·유순남> 인력으로는 못해
유순남 수필가
  • 입력 : 2023. 02.06(월) 13:13
유순남 수필가
‘농사를 지슨다는 것이 온정신으로 해야 허는 일이여. 돈부 한나도 절서를 맞촤서 숭궈야 써. 누가 갈쳐 줘서 안 것이 아녀. 땅이 갈쳐’, ‘인력으로는 못해. 해님이 해주제’, ‘우리는 요런 것을 귀하게 봐. 공력을 딜여야 나오는 것인게’, ‘이 시상 살라문 누구나 다 애써. 애쓰고 사는 것은 부끄런 것이 아니여.’ <전라도 닷컴> 남신희 편집장이 농촌 마을 고샅을 다니면서 인터뷰하여 옮긴 글이다. 들일 하는 농부들이 무심코 한 말에는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 자연의 질서와 노동에서 터득한 것들이다. 수십 년 농사지어 자식들을 키워 낸 농부들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알량한 농부지만 그래도 그들의 말에 공감은 할 수 있다.

작년에는 묵혔던 밭을 일구어 호박을 심었다. 밭 가장자리에 심어서 넝쿨을 밖으로 인도해 주고 어느 정도 클 때까지 풀을 뽑아주었다. 넝쿨은 하나만 뻗는 것이 아니어서 여기저기서 나온 넝쿨들이 밭 가운데에 심어놓은 콩 농사를 망쳤다. 매년 호박을 심었지만 여태 늙은 호박은 한 덩이도 수확하지 못했다. 그런데 노랗게 익은 호박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인력으로는 못한다. 날씨 덕이다. 처음에 익은 것은 그즈음에 있었던 모임 회원들에게 나눠주었다. 다음에 수확한 것은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나눠주었고, 마지막에 수확한 것은 남구 로컬푸드에 상품으로 냈다. 진짜 농부가 된 기분이었다.

자연과 어우러져서 농사짓고 사는 삶은 그 자체가 자연이 된다. 농사는 자연의 도움 없이 인력만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누리는 행복도 자연에서 얻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산은 언제 봐도 감동을 준다. 핏빛으로 움트는 새싹의 기대로 설레는 봄 산, 초록 초록한 여름 산, 더 말할 나위 없는 가을 산. 하지만 산이라는 자연에 눈이라는 옷을 입힌 겨울 산이야말로 최고의 걸작이다. 눈은 그 어떤 산도 모두 비경으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설산에 구름이 넘나드는 산행길에서 구름 위를 걷고, 안개 눈 속에 서 있을 때의 몽환적인 세계에서 느끼는 황홀감을 어떻게 인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지난달에 친구랑 영화<아바타 2(물의 길)>를 봤다. 기계문명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지구인과 지구에서 먼 행성인 ‘판도라’의 원주민과 얽힌 인연과 전쟁 이야기다. 아바타는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 족의 DNA에 지구 인간의 의식을 주입해서 만든 인공 육체다. 에너지 고갈 문제를 고민하던 지구인들은 대체에너지인 ‘언옵타늄’이 판도라의 지하에 엄청나게 매장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판도라의 대기에 독성이 있어서 그곳에 적응할 수 있는 아바타를 만들었다. 주인공 제이크는 아바타를 조종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나비 족이 사는 ‘숲의 나라’로 파견된다.

그는 나비 족과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그러다가 자기의 임무를 망각하고 나비 족의 족장 딸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진다. 그 때문에 지구인과 나비 족의 전쟁이 촉발되었다. 네이티리와 결혼해서 네 명의 아이까지 둔 제이크는 인간의 무모함과 무자비함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그는 나비 족을 위협하는 인간들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 ‘바다의 나라’에 의탁하여 그곳에 적응해나간다. 하지만 인간들의 공격은 계속된다. 전쟁의 어려움 속에서 그는 “가족이 요새다”며 가족의 단결을 강조한다. 목숨을 건 결투 끝에 나비 족은 고래와 물을 이용 기계문명을 파괴하고 승리한다. 미래의 지구의 운명을 보는 것 같았다. 인력으로는 자연을 이기지 못한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 듯 보이지만, 자연과 맞서 이긴 예는 없다.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는 자연을 함부로 한 벌로 멸망의 길에 들어섰다.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이상기온과 플라스틱의 위협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해 대기근이 시작됐다고 한다. 식량 해외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1위가 한국이라는데 큰일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지구에서 못살게 될 때를 대비해서 대체할 행성을 연구하고 있다. 지구의 자연 폭발로 어쩔 수 없다면 몰라도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면 우리는 환경복원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를 버리고 지구보다 못한 행성에 가서 사느니 차라리 200년 전으로 돌아가서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